마라톤 기행

2 굽이굽이 살아 있는 삶의 노랫길, 문경(聞慶) 새재

힘날세상 2009. 7. 28. 14:52

마라톤 기행 2

 

굽이굽이 살아 있는 삶의 노랫길, 문경(聞慶) 새재

 

Y형!

길은 숲 속으로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시적인 모습까지는 못되더라도, 오늘 아침 이 숲길은 인간들의 속(俗)한 마음을 씻어내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정갈한 마음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붉은 꽃잎에 영롱한 이슬을 매달고 군락을 이루고 있는 하늘말나리는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과거길에 나선 남편의 금의환향(錦衣還鄕)을 기다리던 아낙네의 마음인 양 조금은 수줍은 자태로 새벽의 고요를 품고 있습니다.

온통 초록으로 물들은 숲은 우리들의 발길을 휘감아 도는가 싶더니 온 몸을 에워싸고, 이내 마음 속에까지 진한 초록물을 칠해 버립니다. 그렇게 우리는 초록의 맑은 향기에 젖어 가고 있을 뿐, 달리기로 인하여 조금도 숨이 차거나 발길이 무거워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Y형!

문경도자기 박물관이 있는 새재 들머리에서 오늘의 달리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2차선으로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는 도로를 따라 새벽의 첫머리를 밟으며 달리는 기분은 늘 그렇듯이 여유가 있어서 좋습니다. 앞을 다투어 내달리는 마라톤 대회 출발 장면에서는 떠올려 볼 수도 없는, 이 느릿함의 발길이 가져다 주는 희열(喜悅)의 전율감 같은 것이 솟아나 한결 편안한 마음입니다.

왼쪽 옆구리를 간지럽히며 조잘거리는 조령천을 거슬러 올라 ‘문경새재도립공원’ 매표소를 통과하는데 매표원이 우리를 불러 세웁니다.

“ 입장권을 사셔야 하는데요.”

“ 아, 그렇군요. 그런데 보시는 것처럼 운동중이라서 입장료를 가져 오지 못했는데......”

매표원은 곤란한 표정을 짓습니다.

아침 훈련시에 단체로 경내로 달려 들어갈 때 손을 흔들어 주던 금산사 매표소 아저씨가 생각났습니다.

‘문경 새재를 달려보려는 일념으로 전주에서 왔다, 어젯밤 늦게 도착하여 잠도 제대로 못자고 허둥지둥 나오는 바람에 입장료는 생각지도 못했다, 다시 돌아가서 입장료를 가져올 수도 없지 않은가, 운동 후에 아침 식사를 하러 오는 길에 가져 오면 안되겠느냐’ 우리들의 통사정을 들은 매표원 아저씨는 갑자기 표정이 부드러워지더니

“정말로 달리기하러 여기까지 왔능교?” 하며 길을 열어 줍니다.

Y형!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이라는 현판이 도도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제1관문 주흘관(主屹關) 앞에 섰습니다. 양옆으로 이어진 성(城)은 ‘초곡성(草谷城)’입니다. ‘태조 왕건’드라마 촬영시 대부분의 성벽 전투 장면을 찍었다는 곳입니다. 주흘관 앞의 넓은 마당에는 그 때 사용하였던 온갖 병기가 널려 있었고, 여기 저기 군막(軍幕)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고려군들이 함성으로 지르며 달려나올 것 같은 느낌입니다. 성벽을 기어오르다가 불화살에 맞아 비명소리와 함께 스러져간 수많은 병사들은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얻으려고 피나는 전투에 참여했을까요? 인간의 역사가 전쟁으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그것이 다 인간들의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결국 우리들은 우리들의 마음에서 솟아나는 욕심 때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쓰러져 가는 것이겠군요.

기록에 대한 욕심과 지나친 훈련으로 인해서 부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심적인 고통에 쓰러져 버린 나 자신을 생각하며 성문의 홍예(虹霓)를 지나 2관문을 향하여 달립니다.

‘영남대로(嶺南大路, 고려대 최영준 교수가 명명(命名))’가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절대적인 통로인 새재의 아침은 고요의 바다였습니다. 장맛비로 인해 계곡물이 제법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으나, 이내 고요의 수렁에 빠져 들어가고 맙니다. 문경새재박물관과 ‘태조 왕건’ 촬영장이 과거의 역사를 되돌리려는 듯한 모습으로 제법 위용을 갖추고 서있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는 장원급제의 큰 뜻을 품고 과거길에 나선 선비처럼 문경 새재 옛길을 더듬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Y형!

새재는 퍽 재미있는 이름입니다.

새들도 넘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험하다는 고개, 억새가 많이 우거진 고개, 이유릿재(이화령)와 하늘재(계립령) 사이로 난 고개, 하늘재를 두고 새롭게 낸 고개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그 시비(是非)를 따지는 것보다는 그러한 모든 정서를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고개로 마음에 새겨두고 싶습니다.

과거시험을 위하여 한양으로 올라가는 영남 유생(儒生)들의 발걸음에 담겨 있을 애환(哀歡)의 노랫가락을 떠올려 봅니다. 관료가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통로가 과거제도였다면, 문경 새재는 바로 그 통로에 들어서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필연적인 과정이었던 셈입니다. 나라를 이끌어갈 핵심 엘리트가 되기 위해 선비들이 흘렸을 땀방울을 생각하면, 부드럽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흙길을 달리는 나는 그저 즐거움이나 따라다니는 미미하고 가벼운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Y형

계곡으로 빠져 들어가 푸르디 푸른 몸부림으로 일어서는 숲을 따라 달리는 발걸음에 취해 내가 달리는 것인지 숲이 달리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즈음에 제2관문 조곡관에 다달았습니다. 새재의 관문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웠으며 중성(中城)이라고도 불리는 조곡관 앞을 흐르는 시냇물은 고갯길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목을 축여 주며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새벽부터 새재를 넘어오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새재는 유생(儒生)들만의 고개는 아니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수없이 많은 보부상들이 큰 돈을 벌어보겠다는 다짐으로 넘어가기도 했으며, 새로운 세상, 인간답게 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눈물로 넘어갔던 고개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신경림 시인은 <새재>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1,057행이나 되는 장편시를 통해, 이 고갯길을 지주와 탐관오리들의 발길질과 괴롭힘의 아픔을 벗어버리고 더 나은 삶을 이루어 낼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길목으로 묘사하면서 ‘돌배’라는 힘없는 백성의 눈물을 통해 당시 새재를 넘던 사람들의 아픔을 노래하기도 하였습니다.

신경림의 시에 나타난 민중의 아픔은 80년대 운동권에서 <새재>라는 투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노래와, <돌아가리라>는 어느 정도의 낭만적 감정을 담은 노래로 불리워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새재 고갯길이 출세나 금의환향(錦衣還鄕)을 꿈꾸며 넘었던 양반들의 고개라기보다는, 어쩐지 베잠방이에 두건을 질끈 동여매고 눈물로 아픈 가슴 쓸어내리며 넘어가던 민중들의 고개라는 생각에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Y형!

이제 길은 서서히 오르막의 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부드럽게 덮인 흙길을 감싸고 있는 새벽의 맑은 기운과, 굽이마다 살아 있는 민초(民草)들의 노랫가락은 자꾸만 발걸음을 붙잡아 땀방울이나 흘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고갯길을 넘었던 사람들의 발끝에 쌓였을 눈물과 한숨, 그리고 고개 너머에 펼쳐 질 것으로 믿었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이 아직도 숲 속을 휘감고 있는 새벽의 고요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Y형!

언제나 그렇듯이 달리기는 사고(思考)의 깊이를 더해 줍니다. 자기응시의 시간들로만 이어지는 달리기보다는 오늘은 고갯길에 묻혀 있는 선인(先人)들의 발길을 따라 보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눈길을 밖으로 돌리는데 벌써 제3관문 조령관이 팔을 벌리고 맞아 줍니다. 흐르는 땀을 닦을 겨를도 없이 조령성(鳥嶺城) 성벽에 올라섰습니다.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 장군이 자신이 버린 여인의 저주를 받아 천하의 요새인 이곳 조령관을 버리고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가 통한의 패배를 당하였다는 이야기는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랑의 비정(非情)함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Y형!

한 가닥의 희미한 고갯길이었지만 낙동강유역의 문화를 한강유역까지 이어 주었으며,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한반도의 생명선과 다름없는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해내었던 새재를 따라 달리면서 고갯길이 가지는 의미와 고개 너머의 세상을 그리워했을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길을 따라서 인간들의 삶은 이어지고,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달리는 발걸음 속에서 우리는 무수한 인간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또 우리들의 내면에서 익어가고 있는 이야기를 길가에 갈무리해 두는 것도 길을 따라 이어가는 마라톤 기행의 한 단면(斷面)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Y형!

이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갑니다. 올라오면서 품었던 생각을 이어보려고 하지만, 곁에서 달리고 있는 아내의 말대로 숲을 달리다가 그대로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도록 아름다운 숲길만 초록색의 소실점(消失點)으로 멀어지고 있을 뿐, 내 시야(視野)와 가슴 속에는 어느덧 숲 속으로 파고 들어 조령산의 깊은 속살을 헤집고 있는 햇살 줄기만이 발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재의 고갯길은 영원히 내 가슴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힘날세상 200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