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기행

1 화개동천(花開洞川)의 사랑 이야기

힘날세상 2009. 7. 28. 14:51

마라톤 기행 1

 

화개동천(花開洞川)의 사랑 이야기

 

 

Y형!

낯선 곳에서 하루를 묵으며 만들어 가는 시간은 늘 그렇듯이 잔잔한 물결마냥 가슴을 떨리게 합니다.그냥 스쳐 가는 바람에서도 나그네의 정서가 묻어나고, 고요한 발걸음으로 덮어오는 어둠의 자락도 유난히 짙은 객창감(客窓感)으로 다가섭니다. 그래서 여행은 희미한 두려움 같은 것으로 시작하는 마라톤과 같다는 생각입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지독할 정도로 길고 길었던 부상의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부상은 달리기를 멈추게 하였고, 그래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달리는 것보다 더 큰 것을 남겨 주기도 하였습니다. 부상은 달리면서는 보지 못했고, 느낄 수 없었던, 아주 아주 소중한 상념(想念)들을 곱디 고운 포장지로 꼭꼭 싸서 내 마음 깊은 곳에 갈무리해 주었습니다.

그 동안에도 작고 가벼운 통증으로 달리기를 멈춘 적이 더러 있었지만, 발바닥 뒤쪽을 짓눌러대던 족저근막염이라는 이 녀석은 정말 끈질기게도 나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회복과 재발이 반복되면서 나의 달리기 일지에는 ‘가슴저림’, ‘서글픔의 연속선’, ‘눈물을 닦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늦은 밤의 유리창’, ‘가슴을 쥐어 뜯어내는 인고(忍苦)의 발길질’ 등 아픔과 고통의 단어들만이 점령군의 기세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달리기의 진수(眞髓)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달리기도 전에 나는 그렇게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눈물짓고 있었습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과 내가 늘 달리던 중인리 앞 너른 들녘을 달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저 조용히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Y형!

이제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나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빛깔로 마라톤의 세계를 채색해 보려고 합니다. 여기저기 복잡한 대회에 참석하는 것보다는 아침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 달리며, 내 삶의 동심원(同心圓) 위에 펼쳐지는 그 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젖어, 진정한 달리기의 맛을 느껴보려고 합니다. 대회 참가하여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눈은 감아버리고, 오직 달리기 그 자체에 사로잡혀 시간에 얽매어 버리는, 조금은 딱딱한 달리기에서 벗어나고픈 심사(心思)인 것입니다.

달리기 속에 녹아 있는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은 까닭이지요.

그래서 정령치를 달려 올라가며 의식의 심층부(深層部)에 가라앉아 있는 뜨거운 의지를 일으켜 보고싶기도 하고, 청학동 깊은 골짜기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세속(世俗)의 탁한 바람 속에 쓰러지는 순수(純粹)의 아픔을 가슴에 담아보기도 하고, 회문산 자락을 돌아 동계까지 달리며 섬진강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속으로 흐르는 이야기도 들어 보고 싶습니다. 또한 가을이면 호남 들녘에 출렁이는 황금물결 위에서 풍성한 파도타기도 즐겨 보렵니다.

 

Y형!

나는 이것을 마라톤 기행이라고 이름 붙여 보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우리 산하(山河)를 발목이 시도록 밟아, 흐르는 땀으로 속(俗)한 마음을 씻고 넘치는 인정을 채워 가는 것, 그것을 이름지어 마라톤 기행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화개골의 한 여관에서 하룻밤 묵었습니다.

대성계곡 삼정마을 위쪽으로만 솟아나는 벽소령의 맑은 기운을 한아름 받고 싶은 까닭이기도 하였지요. 비가 와서 안개라도 어슴프레 덮인다면 신선의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새벽이면 어느 곳이든지 잠에서 깬 말간 얼굴이기에, 화장하지 않은 청순한 소녀처럼 약간의 수줍음까지 담고 있을 것이기에 달리기는 천상의 세계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가교(架橋)가 될 것이라는 탐욕한 마음으로 어젯밤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화개동천을 따라 흐르고 있는 것은 아직도 화개골에 비련(悲戀)의 아픔으로 남아 있는 ‘계연(契姸)’과 ‘성기(性騏)’의 지순한 사랑뿐이었습니다.

 

Y형!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벚나무 터널은 새뜻한 바람을 품에 안고 새벽 하늘과 만나 함초롬하고 단정한 자세로 늘어서서 우리들의 발걸음을 세고 있고, 지리산 맑은 기운을 담아 흐르는 화개동천은 제법 목소리를 높여 경쾌한 행진곡풍의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열고 있습니다.

쌍계사까지 5km 정도 이어지는 벚나무의 두터운 터널을 달리면서 아내는 소녀처럼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달리면서 어젯밤 ‘옥화 주막’ 아주머니가 풀어 놓던 ‘성기’와 ‘계연’의 사랑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들이 아름답고도 정갈한 사랑의 마음을 나누어 가졌던 곳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찾아 눈길을 보내다가 갑자기 <역마>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성기는 몸을 일으켜 계연의 그 둥그스름한 어깨와 목덜미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입술이 포개졌다. 그녀의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에서는 한나절 먹은 딸기, 오디, 산복숭아, 으름 들의 달짝지근한 풋내와 함께, 황토흙을 찌는 듯한 향긋하고 고소한 고기 냄새가 느껴졌다.

 

아내와 나는 나란히 달렸습니다. 내가 부상으로 일년 반 정도를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동안 아내의 달리는 속도는 제법 빨라져 버렸습니다. 쌍계사를 지나면서 허벅지의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는 이미 100여 미터 앞으로 달려나가 버렸습니다. 짙푸른 녹음이 우거져 내린 산자락을 밟아가는 아내의 빨간 상의가 산뜻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계연’의 모습이 다가왔습니다. 사랑의 감정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 ‘계연’에게 화개골을 떠나야 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계연의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은, 옥화와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 듯이 성기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으나, 버드나무에 몸을 기대인 성기의 두 눈엔 다만 불꽃이 활활 타오를 뿐, 아무런 새로운 명령도 기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계연’은 그렇게 거의 울음이 다 된 목소리로 ‘오빠 편히 사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습니다.

신흥 마을 화개초등학교 왕성 분교 교문 앞. 35미터의 높은 눈으로 탐욕과 공명에 찌든 우리들의 발걸음을 내려다보는 푸조나무 밑에서 포카리 한 잔씩 나누어 마시고는, 천 년 전에 지리산으로 들어가 버린 최치원 선생의 심사(心思)를 헤아려 볼 틈도 없이 아내는 오던 길을 되돌아 섰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매서운 발걸음을 옮겨 총총 멀어져 갔습니다. 마치 ‘성기’를 두고 떠나가는 ‘계연’의 발걸음처럼 말입니다.

점점 멀어져 가는 아내의 뒤를 따라 달리면서 ‘성기’가 느꼈을 허탈감을 헤아리다가 문득 내 마음의 절반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 아내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어렵고 힘든 고비를 넘을 때마다 아내는 늘 내 곁에 있어 주었기에, 지금까지 아내는 당연히 내 곁에 있어야 하는 당위성의 존재로만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계연’이 자신의 이복 이모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성기’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세상을 체념한 채, 자신의 운명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성기’는 ‘계연’을 통하여 자신을 휘감고 있는 운명적 자아를 만나게 된 것이지요.

나는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화개동천의 장단에 맞추어 달립니다. 주변의 경치와 어울어진 몇 가지 상념들이 발길을 붙잡는 탓에 나는 길을 아껴가며 달렸습니다. 물안개가 피어 오르던 옥정호의 새벽, 장태산의 숲 속에서 보랏빛 시간으로 부서지던 안개, 처음으로 달린 춘천 마라톤 결승선을 밟으며 흘렸던 그 진한 눈물의 의미를 엮어 가다가 분에 넘치게도 runner's high를 맛보았습니다.

나는 화개동천을 따라 흘러 가고 있는 하얀 벚꽃을 밟으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화개동천 맑은 물에 세속의 때를 씻어 내고 있는 최치원 선생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드리워져 있는 커다랗고 아주 선명한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면적 자아가 부르는 낮으막한 노래 소리도 들었습니다.

 

Y형!

형이 말했던 것처럼 마라톤은 정말 정직한 운동입니다. 내 마음을 그렇게도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던 부상으로 인해 숱하게 흘렸던 눈물이 가져다 준 것은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성기’가 울면서 떠나간 ‘계연’에게서 자신의 일면(一面)을 발견했듯이, 오늘의 달리기는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눈을 뜰 수가 있었습니다.

 

화개동천에 살아있는 지리산의 말간 기운 속으로 달려들어갔던 아내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지리산 깊은 숲 속으로 표연히 걸어 들어가는 최치원 선생의 발길을 따라 정갈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화개골의 넓은 품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의 마라톤 기행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힘날세상 200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