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斷想)

잠 못드는 밤에

힘날세상 2019. 1. 2. 11:10






잠을 놓치고 말았다.

눈두덩이는 자야한다고 투덜대는데

머릿속은 굳은 표정으로 거칠게 나를 끌고 다닌다.

둥지를 떠나버린 자식들의 삶의 시공간에 가두어 버리기도하고,

너무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데려가

"풍수지탄"을 절감하며 죄책감에 빠지게 한다.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그동안 올라다녔던 산등성이를 그려보기도하고,

10년 정도 달렸던 마라톤 풀코스를 달려보기도 하고.

강제윤 작가의 "섬을 걷다"라는 책갈피를 따라 몇 개의 섬을 걸어도 나는 잠을 붙잡을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참 마음이 스산하다.

해야할 일을 마치지 못한 것 마냥 마음이 묵직하다.

의기소침이라고 할까,

자신감 상실이라고 할까.

어느 방송에서 방영하는 "나는 자연이다"에 출연하는 사람처럼 살아볼까 하는 마음이 자꾸만 솟구친다.

인생이라는 것이 어디 내 뜻대로 되는 것인가마는 나 자신에, 내가 처한 상황에 맞서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난다. 어떤 이는 나더러 웃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인생이 자기가 마음먹은대로 된다면 무미건조할 뿐이라고 말이다. 자기 생각대로 안되어야 삶의 맛이 나는 거라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도 지금 나는 힘들다.

늙은 탓일까.

자식들에 대한 걱정 때문일까.

여생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한 탓일까.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버킷리스트에 대해 말하는 영화를 감동적으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작성해놓은 내용에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고 있다.

어느 순간 마음을 들여다보니 노파심으로 가득하다. 노파심은 참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은 4%밖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분명 버려야 하는데 버려지지가 않는다.

날이 밝았다. 방안에 가득하던 어둠이 물러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본다. 두텁게 자리잡고 요지부동하고 있는 어둠은 자기가 쫓겨 가는 줄도 모르고 무너져 내린다. 아침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어둠의 밑바닥으로 파고 든다. 그리고 순식간에 주변을 밝혀 버린다.

지금 나를 누르고 있는 이 무거움도 그렇게 벗겨 줄 수 있을까. 나의 무거운 마음을 걷어내 줄 아침은 어디선가 오고 있을까.

밥을 먹어야겠다. 덩달아 잃어버린 밥맛이지만 어떻게든 밥을 먹어야겠다. 그리고 기다려야겠다. 나의 아침을, 나의 생활을, 나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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