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설 때쯤,
바람이라도 나뭇가지 흔들릴 정도로 부는 날이면,
하늘까지 눈시릴 만큼 파란 날이면
아이들 방문을 열다가
이유도 없이 슬퍼진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허전함에 짓눌리게 된다.
가을에,
모든 것이 풍성해지는 가을날에.
유년시절
하굣길을 기다리고 있는 포플러나무가 있었다.
누구를 위한 그리움인가
하늘로만 솟아오르던 포플러나무
나는
그 나무를 멀대나무라고 불렀다.
멀대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어른들이 키 큰 사람을 멀대같다고 하는 것을 흉내낸 것이다.
그때 나는
그 멀대나무가 하늘까지 닿을거라고 믿었다.
그 멀대나무가 세상에서 제일 높은 나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 멀대나무에 기대어
마음속에 품었던 소녀를 그리워했다.
그 소녀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다.
1갑자의 삶을 살아버린 지금
도둑처럼
그 멀대나무 밑에 기대어 서보지만
나는 멀대나무에 기대어 서지 못한다.
하나의 늙어버린 포플러 나무에 기댈 뿐이다.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던 소녀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세월과 함께 낡아버렸다.
멀대나무가 아닌 포플러 나무아래서
허전함의 실체는 세월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날갯짓으로 서울로 가고난 후
두 아이의 방을 하나로 합하면서
아이들의 물질적인 흔적을
조금이라도 가려보려고 했다.
그러나 문득
깊은 밤 잠에서 깨어
아내 몰래 아이들 방문을 열었을 때
먼저 들어와 우두커니 앉아 있는 아내를 보았을 때
우리는 그때
허전함의 실체를 보았다.
그때부터였다.
세월은,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난 후의 세월은
견뎌내기 어려운 무게로 쌓여갔다.
그러나
견뎌내야 했다.
견뎌내야 했기에 미친 듯이 산으로 파고들었다.
높은 산,
깊은 산,
멀리 있는 산,
가까운 산
가리지 않고 올랐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도 올라다니고 있다.
하루에 두 개의 산꼭대기에 오르기도 하였다.
속도 모르고 아이들은
건강 생각해서 무리하지 마시라고 쪼아대지만,
나는 산행을 멈출 수 없다.
가을 하늘빛으로
덥혀진 가을 햇살을
산꼭대기에 앉아
등으로 받아들이다가
울어버린 날
지리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고운 최치원 선생을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 골짜기를
고운동계곡이라고 부르며
최치원 선생을 그리워하고 있다.
아이들 방을 하나로 합하고
아이들의 물질적 흔적을 가린다고
근본적인 허전함이 덜어지는 것인가.
산은,
가을 산은
참 무섭다.
견딜 수 없는 외로움
여럿이서 걸어도 떨쳐내지 못한다.
지리산 둘레길 위태 마을에서 만난
김종운 할아버지는
둘레길 생기고 사람들이 찾아와 사람사는 것 같다며
손을 잡아 주었다.
그 할아버지의 말라비틀어진 손바닥에서
진한 외로움을 맛보았다.
애써 웃어보이는
그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무거운 세월의 두께가 만져졌다.
외로움은 허전함으로 갈무리된다는 것이 갈수록 분명하게 받아들여진다.
가을은 그래서 무섭다.
가을은 그래서 슬픈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모든 것이 풍성해지는 가을에
난 비어버린 아이들의 둥지를 바라보기나 하고 있다.
10월의 마지막 날,
하늘이 푸르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 만큼 부는
가을 어떤 날에
슬픈 노래를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