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다.
따라서 커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내 스스로 카페에 가는 일은 거의 없고 누군가에 이끌려서 가게된다.
여럿이서 이끌어낸 수다를 섞어 마시는 커피는 별 느낌이 없다. 산등성이나 시원하게 펼쳐진 들녘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마신다면 그 분위기로 한 잔 마실 수는 있을 것이다.
혼자서 마시는 커피는 커피가 아니어도 좋으리라. 아메리카노면 어떻고 양촌리면 어떻겠는가. 어느 산을 가느냐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산에 들어서느냐가 의미가 있듯
오늘 즐겁게 한 잔의 커피를 마셨다.
라떼라고 했다.
시도때도 없이 산으로 들어서는 산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라떼 한 잔은 그 달달함보다 더 묵직한 느낌으로 밤시간을 다독여주었다.
한 잔의 커피는 지리산 치밭목 산장으로, 남덕유 꼭대기로, 한신계곡, 피아골 골짜기, 설악의 공룡능선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었고, 백두대간을 넘어 중국의 5악으로 발길을 내딛게 했다. 생생한 조망과 선명한 추억들을 새록새록 불러내 주었다.
산에서 토닥거린 시간들을 반추하게 해주었던 라떼 한 잔은 좀 오랫동안 남아 있을 듯하다.
한 잔의 커피가, 아니 정확하게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산등성이에서 땀을 훑어내며 마시는 맥주 한 잔 이상의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