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밤인데
3월 첫 시험 문제를 들고
해설 강의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외로워졌다.
외로워졌다는 것을 느끼는 감각이 더 두렵다.
혼자 있는 밤은
야누스이다.
외롭긴하지만
그 외로움에 의미를 얹어놓았던 젊은 날이 있었다.
어쩌면 그때는 외로움 속으로 일부러 걸음했었다.
정말 혼자 있고 싶었던 그때,
간절하게 가지고 싶었던 것은
나 혼자 살아보는 시간이었다.
혼자서 차지해보는 작은 방이었다. 낯선 곳에서 웅크려 앉아 조금 희미한 불빛을 보듬고
끓어오르는 감성을 다독여보고 싶었다.
그것은 정말 간절한 바람이었다.
마음도 몸도 낡아버린
지금, 아이들 생각이 부쩍 난다.
나만 그럴까.
내가 도달하지 못했던 높이에 아이들이 올라서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래서 무엇인지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은,
대학생이 되면서
서울로 간 아들은 정말 빠르게 자신의 시공간을 다져놓았다.
나는 아들이 나하고는 다른 색깔을 들어 자신의 삶을 그려나가기를 바랐었다.
노래를 잘 부르고, 멋을 잔뜩 부릴 줄도 알고,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도 잘 만들어 먹지만,
가슴을 쥐어뜯을 만큼 아프면서도 하늘을 날아오르는 청명한 연애도 하는 영화같은 삶의 이야기를 흘려내기를 바랐었다.
소설같은 세상을 열어가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아들의 방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를 나는 듣지 못한다.
시집간 딸이 문득 그립다.
노오란 황금빛으로 채워져야했을 딸아이의 방을 나는 만들어주지 못했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지하철에 시달리면서도,
친구들은 한참 유쾌함의 한복판으로 들어설 때에
장학숙 통금시간을 걱정하며
돌아서야 하는 아픔에 짓눌리면서도
딸아이는 온새미로 4년을 움켜 쥐었다.
왜 학교 앞에 방 한칸 마련해 주지 못했을까.
무엇 때문에 자신만의 공간을
지어주지 못했을까.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자신만을 위해서는 숨소리 하나 내지도 못하는 희생인지 헌신인지의 걸음을 걷고 있는 딸아이가 지금 내 곁으로 파고든다.
학교 다닐 때 한번도 돈 달라고 안하던 딸이 늦은 밤을 같이 걷는데 자꾸만 눈에 걸린다.
아이들은 그래도 잘 커줬고 한 번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다. 감사한 일이다. 그저 복에 겨운 일이다.
아들 녀석은 소위 '워라밸'을 누리고 있는 것같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심한 경쟁에 내몰리지도 않고 자신의 시간도 다독이며 서울을 호흡하고 있기는 하다. 그래서 좋다. 넉넉한 지갑을 갖지는 못해도 심신의 여유는 궁글리고 있으니 나도 마음이 편하기는 하다.
그런데 그런 아들을 맞이하는 것은 어둠이다. 누군가 불을 밝혀 둥지를 따뜻하게 덥혀놓고 기다리고 있지 않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것은 부모로서 허전한 일이다. 무엇인가 놓쳐버린 듯하고, 움켜줜 오래가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이어가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들이 그어가는 삶의 그래프를 바라보며 그 굴곡이 바른 파형을 이루는 그때를 응원해야 한다. 아들의 캔버스에는 아들의 그림을 그려야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힘들어도 좋은 사위와 더불어 보기좋은 구도의 그림을 그려가는 딸의 마음에 박수를 더하고 싶다. 지금 힘들어도 웃음 잃지 않고 서로를 윗쪽으로 세우려하는 딸과 사위가 있어 자꾸만 무뎌져가는 감성과 곤두박질치는 자신감과 낡아가는 사고방식과 두께를 더해가는 노파심에 맞설 수 있다.
'너보다 자식들이 더 생각난다면 그것이 바로 늙었다는 것이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눈밭을 헤치고 산수유를 구해왔던 김종길 성탄제의 아버지처럼 당신도 감기로 힘들어 하면서도 눈길을 헤치고 한 시간 반을 걸어 가족들의 감기약을 사오셨던 아버지가 불현듯 생각난다. 무서워서 한번도 무릎에 앉아보지 못했던 아버지가 보고싶은 것은 아직도 내 핏줄기 속에 그때의 감기약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자식들이 자꾸 생각나는 것을 보면 분명 늙은 것이다. 그래서 생각에 힘이 없어지고 그럴 때마다 자식들 생각이 나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갑자기 아들이 끓여주는 우육면이 확 당기는 것은 아버지가 보고 싶은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