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자연박물관에서
마주한 바람은
자꾸만 옷깃을 여미게 하는데
그래도 햇살은 튼실하게 이어지고 있다.
길가에 늘어선
그 커다랗고 묵직한 노거수들은
주름진 몸을 일으켜
세월에 맞서고 있다.
호텔에서 차려낸 아침 밥상은
간소하지만
깔끔했고
특히 시리얼과 우유가 있어서 좋았다.
실컷, 그리고 맛있게 먹었기에
점심 때가 되었으나
식당으로 눈이 가지 않는다.
생체전시관이던가
2층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은
맥도널드였다.
우리 맥도널드 한 번 먹어봅시다.
맥도널드를 먹다니!
우리가 무슨 아귀라는 말인가.
주문하는 줄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고
앉아야 할 의자는 없는데
어이 처자 이를 어째야 옳아?
여직원분을 향하여 던진 구원의 눈길
2층을 가리키며 뭐라고 한다.
응? 2층에 자리 있다고 하는거지?
아내는 자리를 잡고 난 주문하는 줄끝에 몸을 밀어 넣었기는 했는데.
내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맥도널드를 사는 입장이고 보니
은은슬쩍 걱정이 된다.
직원은 주문서를 들고
줄서있는 사람들로부터
주문을 받고
사람들은 직원과 이마를 맞대고
히히낙낙
잘도 주문을 해댄다.
그런데 햄버거를 난생 처음으로 사는 1인은
긴장감에 가슴이 쿵쾅거린다
어떻거 하지.
햄버거 종류가 뭔지도 모르는데.
판매대 위에 행버거 사진이 찍혀있고
가격도 써있다.
폰으로 찍어와 나름 구매할 품목을
찜해놓고 순서를 기다린다.
그래, 저것 쇠고기와 닭고기 넣은 것
두개 사는거야.
그래서 하나씩 나눠먹어 보는거야.
2번과 10번
좋아.
뭘 사야지.
어 저기 있네
일단 촬영하고
우린 콜라, 감자 튀김 안좋아 하니까.
오홋. 나머지 하나씩 사면 되겠네.
어? 근데 이건 아이스크림.
뭐야, 궁원안과 것도 안 먹었는데.
그냥 음료만 사야지.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여직원이 주문표를 들고 다가온다.
당황하지 않고
주문표에서 2번과 10번을 지정해주니
하오 하면서 해당칸에 한 획을 긋는다.
좋아 그럼 음료수다.
자신있게 콜라가 아닌 두 개를 지정했는데
이 여자분이 말이 길어진다.
햄버거는 그냥 적더니
이건 왜 말이 많은거야.
이 아가씨야. 여기 음료수만 줘.
미들 오어 라쥐?
아 사이즈 물어보는 것이었어.
그럼 진즉 얘기하지.
미들.
하오 하고 돌아간다.
차례가 와서 계산하려는데
예상보다 값이 비싸네.
너 지금 늙었다고 날 무시하는거야?
그러면 안되지.
나는 우리말로
직원은 중국말로
서로 잘했다고 맞서고 있는데
다른 직원이 내가 주문한 것을 쟁반에 담아오며
set menu라고 종이에 써준다.
내가 찍은사진을 잘보니 그렇네.
내가 세트 메뉴를 시켰다는.
아 쪽팔려.
내가 언제 맥도날드를 사먹어봤어야지.
세트메뉴가 있다니.
오호 통재라.
전하! 억울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직원은 388번이라 적힌 번호표를 주며
번호 부르면 받아가란다.
내가 중국어를 알아들었냐고?
천만에 콩떡이요
만만에 찰떡이다.
앞에 사람이 하는 걸 보고
알아챈 것이다.
다른 남자 직원이 부른다.
싼빠빠!
알았어.그만 좀 불러.
가면 될거 아냐.
갔는데
제일 중요한 햄버거는 빼고
감자튀김 두 봉지,
아이스크림 두 컵,
20리터는 되어보이는 음료 두 컵을
주고 가져가란다.
울고 싶은데 뺨때리더라고
너 잘 걸렸다.
왜 햄버거는 안주는건데
너 내가 햄버거 두개 시킨 것 몰라.
자슥이 뭔 소리냐는듯 쳐다본다.
햄버거가 중국어로 뭐라하는거지?
아이고 답답해.
중국어 모른다고
늙은이라고 무시하는거냐.
내가 햄버거 한 번도 사보지 않았다는 걸 알아챈거냐.
에라 모르겠다.
투 햄버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옆에서 계산업무를 하는 여직원이 돌아보더니
그 남자 직원에게 뭐라고
쏼라쏼라 하니까
그제서야 햄버거 두개를 준다.
엎지러진 물이고
빨대 꼽은 요구르트이며
열차 떠나버린 차표가 아니더냐.
내가 받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내는 늙은게 잘못이라며
햄버거를 한 번도 안사먹은 우리가
잘못이라며 웃는다.
햄버거는 참 맛있었고
음료는 홍차와 레몬 쥬스였다는
기가막힌 이야기.
나이드신 분들
이제 우리도 햄버거 사먹어 보시고
이런 낭패를 보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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