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대만 자유 여행기

[60대 부부 9박 10일 대만 자유 여행기] 21 타이중ㅡ유천수안보도 산책과 심원춘의 사오롱빠오

힘날세상 2018. 2. 16. 16:57


2018. 01. 25


도화6예 문화관을 나와
구글맵을 켜본다.
어? 유천수안보도?
이거 내가 정말 도움을 받았던
RyolO님이 추천했던 곳이 가까이 있잖아.
우리는 어둠이 치마자락을 슬슬 내리고 있는
낯선 거리를 슬렁슬렁 걷는다.
불빛 세상이 펼쳐진다는
작은 강변은
밤에 걸어야 제맛이라는 것은
지나가는 강아지도 알아챌 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1보 전진에 2보 후퇴하는 느낌으로
시간을 죽이며 걷는데
그 작은 강변을 만났다.

아, 어찌 이런 곳을 그렇게 찬양했단 말야.
휑하니 바람만 몰려다니는
그냥 수더분한 작은 개울에 지나지 않는다.
바람좋고
조용하니까 느린 걸음 걷기 좋다는 것이겠지.
아내가 토를 단다.
그것은 우리같은 노털들 생각이고
RyolO님은
20대 피가 끓는 젊은 여자분인데
이런 분위기를 칭찬할 수가 없는 거지.

그랬다.
정말 이길은 불꺼진 창이고
앙꼬 없는 찐빵이다.

그래도 우리가
이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는 여보
인애병원까지 걸어가서 대만대도를 따라가다가
심원춘에서 저녁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야.
심원춘?
메뉴가 뭔데?
아내가 입맛을 다지며 들이댄다.
샤오릉빠오의 육즙이
천국으로 인도한다는거야.
그리고 새우볶음밥도
어디에 적어둘 만하다는데.

그랬다.
RyolO님은
심원춘을 향해 엄지손가락
두 개를 들어올렸었다.

바람이 부는
지극히 평범하고
볼품없는 개울가를 걷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질렀고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와아아아아아
어머머머머머
이럴 수가 있는가
정말 이래도 되는가.

빛의 세상이었다.
빛의 천국이었다.
이런걸 별천지라고 하는건가.





우리가
탄성을 금치 못하고 있는 때에
27일에 34개월 된 손녀를 데리고
타이페이로 들어와
모녀간의 여행을 즐기겠다는
딸이 전화를 했다.
몇 가지 정보를 확인한 후
통화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내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분이
똑딱이 디카를 내민다
엇! 똑딱이 디카 오랜만.
반가워.
디카를 내밀었다는 건
뻔하지.
사진 찍어달라는 거지.
찍어주지. 돈드는 것도 아니잖아.
카메라를 돌려주는데
씨예씨예 한다.
나라고 가만있을 수는 없잖아.
나도 썌쎼 하면서
카메라를 돌려주는데
이 분이
재패니스? 한다.
이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일본인으로 보이는가 보다.
나 일본 사람아니거든.
부스 르벤넌, 스한궈런.
나 일본 사람 아냐. 한국인이야.
일부러 큰 소리로 했더니
뒈이부치 한다.
뭐 미안하다고?
그러니까 앞으로는
한국사람 제대로 알아보세요..
그분은 느닷없이 엄지를 들어보이더니 씩 웃고 돌아선다.

이제 강변은 빛의 나라이다.
모두가 판티지스럽고
곁에서 불쑥 요정이라도 나타날 각이다
역시 밤은 마법의 세계다.
밤은 사람은 눈을 멀게하고
판단을 흐릿하게 하고


불쑥 청마 유치환이 생각났다.
정운 이영도를 향한
청마의 사랑.
그 애절하고 간절했던 청마를
정운은 2년만에 받아들였던가.
5,000통이 넘는 사랑의 변지는
정운에게 하루에도 몇통씩 날아갔건만
꿈쩍도 않는 정운을 향해
청마는 절규한다.

어쩌란 말이냐
어쩌란 말이냐
님은 꿈쩍도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ㅡ 유치환, <파도>에서

사랑은 아픔인가.
그래도 사랑은 가장 가치있는 것이지 않은가.
최백호는
이 나이에 실연의 아픔이야 있겠냐만은 이라고
불러대지만
늙어도 사랑은,
사랑의 마음은 남아 있지 않을까.

나란히 걷고 있는 아내는
자신의 얼굴을 감아오는 주름도 잊었는지
갑자기 소녀가 되어
탄성을 터트리고

그래,
그렇게 살자.
주름 좀 있으면 별건가.
내 마음에 젊음을 담고 있으면 그만이지.
그렇지 여보.
내가 청마같은 사랑은 못했을지라도
그래도 정성은 다했으니까
투박한 마음이나마
지금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받아주길 바란다오.

나비를 날리고
장미와 튜울립을 피워놓았던
불빛은 이제
어둠에 짓눌리기 시작하고
우리의 몽환은 깨어나는데
그래서
아내에게 쥐어주었던 내 마음도
갑작스런 현실 세계에 부딪혀
민낯이 되어
심한 부끄러움에 빠진다.

아까 한 말은 불빛에 취한 것 때문은 아니지요?

아내는 확인하고
나는 그만큼 부끄러웠다.





인애병원 앞에서 대만대도를 따라 걷는다.
이 길로 곧장 가면
심윈춘을 거쳐
호텔 앞으로 가게 된다.
어떻게 아냐고?
신에게는 구글지도가 있사옵나이다.





심원춘은
상하이레스토랑이다.
현지 분들이 가족단위로 많이 찾아오는.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다 준다.
주저없이 샤오롱빠오와 새우볶음밥, 그리고 갈비면을 주문했다.
옆 탁자에 앉은 분들을 보니
여러가지 요리와 공기밥을 시킨다.






샤오롱빠오!
오랫만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타이페이 딘타이펑과
시먼 세운식품에서 만난게
2012년 2월이었으니까.

샤오롱빠오를
살짝 꼬집으니
얼굴을 찌푸리며
노오란 육즙을 흘려낸다.
육즙!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혀끝에서
얼마나 많은
황홀한 춤사위를 선보였던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그 실낱같은 가느다란 향을 흘리며
뭇사람들의 코끝을 빼앗고,
그 부드러운 날개옷을 휘감아
뭇사람들의 눈을 멀게 해놓고
숨겨둔 속살을 드러내
뭇사람들의 혀끝을 마비시키고
의식의 심층부까지
너를 가득히 채워버린
너는
샤오롱빠오!

난 이제 오직 샤오롱빠오의 세계에 빠져버렸고,
혀를 잃어버렸다.

새우볶음밥을
한 입 씹는다.
정말 이건 배고파서 이런 맛을 느끼는 건 분명 아니었다.
이럴 때 서두르는 건 아냐.
혀로 감아 올려
지긋이 눌러주고
윗니 아랫니 토닥여주고
부드럽게 껴안아 주면
입안에서
새우가 살아나고
은은한 향이 침몰해 있는
밥의 존재를 받이들이게 된다.



이젠 가야할 것같아.
심춘원.

그냥 가려고?
아니지. 계산은 하자고.
카운터에서
뭐라고 하더니 594NT를 내놓으란다.
무슨 소리야.
540NT잖아
나도 너희 나라 온 지 며칠 됐어.왜이래.
이럴때 어떻게?
당근이지. 따져야지.
차이딴. 메뉴판 했다.
거기에 가격이 적혀있었으니까.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져왔다.

봐, 분명히 540 맞지?
여주인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메뉴판 한 면에 기록되어 있는
봉사료 10%라는 걸 가리킨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냐?
내가 한국인이라는게 부끄럽다
가만, 이들은 내가 일본인인 줄로 알겠지.
아무말도 하지 말고 나가자.

나오면서 보니
줄이 엄청 길다.
나름 동네 맛집인 모양이다.
다음에 가시는 분들은
봉사료 10% 잊지 마시고
또 하나
메뉴 잘 보시고 채소 같은 반찬도
시켜드세요.

타이페이에서 만난 딸과
아직 관광객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8색 샤오롱빠오를 먹을 때
보니까 공심채라는
채소볶음을 시켜 먹더라고요.



2018. 01. 29
비내리는 타이페이에서 힘날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