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1.23
타프롬이었을까.
그것은
정녕 타프롬이었을까.
타이난 안평수옥에서
캄보디아의
앙코르를 떠올리는 건
아직
앙코르의 감성이 남아 있는걸까.
스쳐가는 바람이나
그 거대한 석조건물,
무겁게 내려 앉은 파릇한 이끼에서나
그 가슴저리는 폐허에서
나는
나를 잃었다.
시간을 놓아버렸고
작고 낡은 창문을 통해서
내 마음으로 들어서는
그 놀라움에
그 거대한 나무 뿌리에 감긴 무력한 세월 앞에서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감동이라기보다는
무거움이었고
감탄이라기보다는
침묵이었다.
- 2013년 타프롬 앞에서
그때
앙코르에서
아니 정확히
타프롬에서
나는
나를 잃었다.
그리고
오늘
또 한 번
나를 잃어야 할 것 같다.
여행은
낯섦이라고 나는 마음에 새겨 놓고 있다.
객창감이랄까.
외로움이랄까.
그 묘한 기분에 젖어가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
이것은 타프롬의 축소판에 불과하다.
이미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익숙한 그림이다.
그러나
왜
안평수옥에서
나는
진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세월은
어떻게 흘러가든
이 나무 뿌리의 살을 찌울 것이고
무너질 듯 가냘픈 벽은
더욱
강인한 흡입력으로
나무뿌리를 끌어안을 것이고
그들은 그렇게 상장해 갈 것이다.
타프롬의 거대함은 아닐지라도
오늘
안평수옥은
자신의 그림을 분명하게 그리고 있지 않은가.
누구도 손대지 못할
그 아름다운 구도를
안평수옥은
자신만의 틀로 짜맞추어 놓았지 않은가 말이다.
뿌리가 줄기이고
줄기가 뿌리인
이 이율배반 앞에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타프롬을 밀어내고 있었다.
거대함보다는
조밀함일까,
이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에서
의식의 심층부가
쿵쾅거리는 것일까.
오늘
나는
안평수옥에서
나를 잃었다.
그러나
나를
잃는다는 것,
그것은
또 다른 나를
만난다는 것이다.
저 작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이
낡아버린 벽돌벽들을 끌어안고
다지고 다진 세월의 두께는
안평수옥의
독창적인 삶일테니까
타프롬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이야기일 것이니까.
나는
안평수옥의 조용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나뭇가지가 뿌리가 되고
뿌리가 나뭇가지가 되는
이 특별한 이야기는
어디에 적어두어야 할 고귀함이 아닐까.
공중도로를 따라가
멀리서 바라보는 안평수옥이나
지붕 위까지 올라가
끌어안을 듯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안평수옥이나
한 나그네의 가녀린 마음을 흔들어 대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충격파를 쏘아대고 있었다.
세월은
어떻게든
흐를 것이다.
하늘이 파랗든
비가 세차게 쏟아지든
별빛이 뭉텅이로 떨어져 내리든
바람이 불든
안평수옥은 자랄 것이고
나뭇가지들은 몸을 불릴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이 안평수옥 앞에 다시 섰을 때
나는
그때
무엇을 말할 것인가.
안평수옥이 들려주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
가느다란 나뭇가지 하나를 손에 쥐어본다.
거친 듯
부드러운 나무 껍질 안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의 외침을
나는 어떤 모습을 담아 두어야 할까.
그 분명하고 똑똑한
살아 있는 안평수옥을,
이제
안평수옥의 손을 놓아야 한다.
더 이상 머물 수 없는데
마음은 이곳에 남아 있고 싶은데
살아 있는 이야기에 젖어들고 싶은데
걸음을 걸어
등을 돌려야 한다.
뿌리는 집안에 두었으나
몸은 밖으로 나와버린 이 작은 나뭇가지는
어쩌면
그 옛날
안평수옥의 시작이었을까.
아직은 햇살로 곱게 단장한
화장이 잘 먹은 이 이쁜 건물도
어느날
나뭇가지를 부등켜 안고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줄까.
뿌리가 가지가 되고
가지가 뿌리가 되어버린
그 애잔한 삶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둘까.
나를 놓아버린 힘날세상
'2018 대만 자유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60대 부부 9박 10일 대만 자유 여행기]14 타이난 - 오징어국수 & 선농지에 &츠칸러우 (0) | 2018.02.10 |
---|---|
[60대 부부 9박 10일 대만 자유 여행기 ]13 타이난 - 안평고보와 천태궁 (0) | 2018.02.10 |
[60대 부부 9박 10일 대만 자유 여행기]11 타이난 - 주구영 기념관, 덕기양행 (0) | 2018.02.10 |
[60대 부부 9박 10일 대만 자유 여행기] 10. 가오슝에서 타이난 열차로 가기 (0) | 2018.02.10 |
[60대 부부 9박 10일 대만 자유여행기] 9. 까오슝 - 항원우육면 & 아이허강 (0) | 2018.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