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일 게로 - 나고야(10월 4일)
어둠을 벗고 드러난 바람의 실체는 실로 대단했다. 어젯밤을 새워 나뭇가지들을 할퀴기도 하고, 창문을 매섭게 흔들어대기도 하더니 아침에도 바람은 화를 참지 못하는지 나뭇가지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댄다. 그러나 바람은 바람일 뿐이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내려 앉는 바람은 어쩌지 못했다. 햇살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제 저 햇살은 바람의 광폭함을 진압하고 세상의 평화를 선언하리라.
3층 온천탕 미끈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받아들이는 게로시의 하늘. 그 파아란 하늘은 내가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놓으라고 한다. 놓을까. 놓을 수 있을까. 여행이 이끌어가는 시간은, 내가 걷는 길은, 내가 눈길을 주고 있는 사물들은 모두 놓으라고, 놓아버리라고 하는데, 나는 바람을 이유로 움켜 쥔 손을 펼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무엇인가. 여행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어지는 것이기에 나를 버리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놓아야 한다. 놓아버려야 한다. 여행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 일상과의 단절이어야 한다. 그것은 지는 여행이다. 어디 이기고 지는게 있을까만은 우리는 대부분 이기는 여행을 하려 한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내 폰은 비행기탑승 모드이다. 세상과의 단절을 위해서다. 구글맵을 이용해야 하는 까닭에 완전히 꺼놀 수는 없지만, 외부로 나가는 통로를 막아버리면서도 구글맵이나 사진 촬영은 할 수 있는 비행기탑승모드. 정말 좋은 기능이다.
우리가 타고 가는 열차는 13시 20분 차이다. 12시 체크아웃을 하고 로비에 앉아 있었다. 아들과 아내는 편의점으로 점심 도시락을 사러 갔고 나는 로비에 앉아서 여행을 정리하고 있었다.
호텔 직원이 와서 묻는다. 호텔에서 기차역으로 출발하는 12시 30분행 셔틀버스 시간이 되었는데 이용하지 않을 거냐고 묻는 것이다. 괜찮다고 했더니 영어로 말하는데 셔틀버스를 이용하려면 아무때나 말하라고 하는 것 같다. 아들과 아내가 돌아와서 13시에 일어났더니 직원이 셔틀버스까지 안내한다. 아마도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게로역에 왔다. 사람이 별로 없다. 우리가 산 열차표는 지정석이므로 느긋하게 열차를 기다리면 된다.
게로역에는 승객들이 별로 없었다. 플랫폼에 나가서 사진도 찍으며 기다린다. 한적한 시골역에 내리는 햇살이 참 아름답다. 어젯밤 몰아치던 광품을 잠재운 것치고는 참 부드러운 햇살이다. 햇살은 한적할 때라야 빛을 발한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의 햇살은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2013년 설날, 대만 핑시 천등축제 때 사람으로 가득 찬 핑시역에 내리던 햇살은 따스하기는 했지만 감동적이지 않았다. 내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밀려가는 듯한 그 혼잡스런 시골역에 내리던 햇살은 살아있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한적한 시골역에 내리는 햇살은 부드럽고 달콤하다. 햇살은 이럴 때 제대로 맑고 투명하며 정이 실려 있다.
나고야역을 나모면 만나는 조형물
오후 3시가 조금 지나서 나고야역에 내렸다. 공항에서 처음에 들어섰던 그것 이상으로 혼잡스럽고 복잡했다. 밀려든 그 엄청난 인파에 놀랐다. 나고야역을 빠져나와 숙소로 간다. 시간이 어중간하여 체크인을 하고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횡단보도을 건너서 좌측으로 가는데 드럭그스토어가 있다. 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으니 바로 숙소이다.
오늘의 숙소 몽블랑 호텔
체크인을 하고 3인실을 배정받았다. 사전에 예약하고 사이트에서 출력해온 바우처만 내밀면되므로 체크인하면서 말이 필요 없다.
짐을 풀어 놓고 나와 나고야 역으로 갔다. 지하에 있는 식당가에 갔는데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으로 올라갔다. 전체가 식당가이다. 돌아다녀보는데 적당한 메뉴를 발견하지 못했다. 13층으로 올라갔다. 이러지러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음식점이다. 식당을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입구에 진열해 놓은 음식 모형물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들. 나름 이곳은 유명한 돈가스집이었다. 값도 적당하고 음식도 맛이 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내려오면서 보니까 아래층은 쇼핑몰이다. 슬슬 돌아다니며 몇가지 물건을 샀다. 건물을 나와 길을 건너 조금 전에 보아 두었던 드러그스토어에 갔다. 돋ㄴ키호테 같은 곳인데 주로 약품과 목욕 용품 중심이다. 우리 돈으로 5만원 이상을 구입하면 8%의 세금을 면세해 준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들어 와있다. 필요한 것들 몇 가지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2017년 10월 4일 힘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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