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3 눈 내리는 날

힘날세상 2009. 7. 28. 13:54

눈 내리는 날

작성일 2002-01-08 오후 7:31:40

 

눈이 참 많이 내렸네요.

어떤 분은 애들마냥 좋아할 것이고, 또 어떤 분은 심난하게 여길지도 모르는 눈이 내린단 말입니다.

여러분은 눈이 내리면 어떤 느낌입니까?

우리 눈오던 날의 추억을 하나씩 올려 보기로 하지요.

 

저는 생각도 하기 싫은 아름다운 추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 그럼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이야기는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겨울 방학에 우리는 신나게 보충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방학이라고 놀아야 되는데 말이 그렇지

토요일도 없이 하루에 7시간씩 오후 4시까지 공부를 시키니까 아이들이 삐쳐가지고 말도 잘 안하더군요..

그렇게 20일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마지막날 토요일이었지요.

 

갑자기 귀여운 우리 딸이 애교를 부려서 같이 좀 놀아주고 조금 후에 다시 올리죠.

딸의 아양에 통닭 한 마리 바치고, 다시 씁니다.

 

보충수업 마지막날 2교시 수업은 우리반 옆반인 2학년 9반이었습니다. 교무실에서 쏟아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교문쪽으로 몇 명이 달아났다는 미확인 첩보가 날아들었습니다.

"대체 누구 반이여, 담임을 얼마나 못했으면 애들이 도망가 도망가기를.---- 교장실에 들어가서 시말서 써야겠구면."

여유있게 농담까지 하다가 교실로 들어갔죠.

중간에 10반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반만 남아 있는거 있죠?

" 야 이놈들아 바로 너희반이 도망간 반이지? 너희 담임은 이제 혼났다."

그리고 9반 교실에 들어갔는데 칠판에 써있기를

" 선생님 8반 아이들은 어디에 있나요?" 라고 써있는데 글씨가 꼭 나를 약올리는 것 같더군요.

 

순간 머리를 스치는 불길한 예감이 있었습니다.

'아니 이놈들이 기어이-------'

나는 즉시 우리반 교실문을 열어 젖혔습니다.

그랬습니다.

아이들은 단 한 명이 남아있을 뿐,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1등짜리도 없었습니다.

2등짜리도 없었습니다.

꼴등짜리도 없었습니다.

 

단 한 명 남은 녀석은 눈때문에 늦게 와서 어리둥절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칠판에는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선생님, 모악산으로 갑니다. 꼭 오실 것으로 믿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집단행동이라고 하며, 휴가중인 학생부장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때 문득 출근하다가 교문에서 10반인 학생회장이 막 뛰어나가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녀석의 그 의미심장한 웃음을 알아채지 못한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녀석은 우리반 아이들과 함께 도망치고 있었던 마지막 꼬리였던 것이었습니다.

 

교감선생님은 10반 선생님과 구이로 차를 몰았고,

난 집에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다시 차를 끌고 중인리로 달렸죠. 차를 가지고 출근을 못할 정도로 눈이 많이 왔었습니다. 정말 20cm는 넘었을 것입니다. 도중에 미끄러질 뻔 한 것이 두번이었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죠.

모든 것이 내 탓이었습니다.

시말서에 뭐라고 써야 할 것인가?

드런 놈들, 그런다고 정말로 도망가냐?

 

사건은 바로 그 전날 금요일 마지막 시간 수업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이었죠.

수업이 거의 끝날 무렵 가느다란 눈송이가 하나씩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괜히 기분에 묻혀

'" 야들아, 낼 눈이 삼십센치 이상 오면 학교 오지말고 모두 모악산으로 가라. 알겠-----냐."

모두가 이 주둥이 잘못 놀린 탓 아니겠습니까?

아니 꼭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2교시에 영어 단어 시험만 본다고 안했어도 그런일이 있었겠습니까?

 

중인리 종점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게에 가서 물어보려고 문을 열었습니다.

두놈이 컵라면을 먹으면서 날 보더니 얼굴에 웃음이 가득찹니다.

" 선생님 오실 줄 알았습니다. 역시 선생님은 우리와 통합니다."

정말 미치고 댄스하겠더군요.(이런 말 써도 되는지 몰라.)

속된말로 뚜껑 열리더군요.

 

녀석들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러 산으로 향했습니다.

지금 주차장이 있는 다리 근처에 아이들이 모여서 있다가 날 보더니

인간이 나타낼 수 있는 최대의 즐거운 표정 짓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떤 아이들은 그ㅡ 단계를 넘어서 무표정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세상을 통달한 달관의 경지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녀석들이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정- 광 - 모 -" 정 - 광 - 모,

마치 대통령 후보가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잔머리를 굴렸습니다.

일단 최대의 화난 얼굴을 하자. 그리고 아이들을 교실로 데리고 가야한다. 교장선생님은 집단행동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집단행동, 그것은 학생들에게 큰 벌이 내리게 되어있다.

아이들은 막무가네로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남자가 칼을 뺐으면 손톱이라도 깎아야 한다고 했잖아요?"

" 남자가 무슨 일을 하다가 도중에서 포기하고 그만 두려면 뭘 떼어버리라고 했잖아요?"

" 겨울에는 설경에 젖어 있는 금산사의 적막을 꼭 감상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 눈길을 밟고 모악산을 넘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녀석과는 절대 사귀지 말라고 했잖아요?"

" 겨울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눈 덮인 세상이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젊음을 확인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녀석들은 그동안 틈틈이 내가 해 준 말들을 용케도 기억하고 있다가 한꺼번에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들은 잊지 않는지 몰라. 이 나쁜 녀석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정말 멋있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정말 그 옛날의 한니발 장군처럼 눈덮인 모악산을 확 넘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무지막지하게 큰무게로 어깨를 내리 누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낡아빠진 사고방식을 가진 기성세대가 아닌가?

그리고 소위 선생이 아닌가?

교장선생님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냉정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아이들을 설득해서 겨우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이 다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선생의 권위도, 자존심도 다 눈 속에 파 묻어 버렸습니다.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남아 있던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하고 선생님들오 한 마디씩 하는 것이었습니다.

" 야! 니들 왜 돌아왔냐? 모악을 넘어버리지."

" 자식들 그래도 문과라고. 정말 멋있다."

" 이것은 어디 너희 8반 아니면 누가 하겠냐?"

선생님들은 초죽음이 되어있는 나는 아랑곳 없이 마구 퍼붓어 댔습니다.

 

교장실에 끌려간 학급 간부학생들은 끝까지 순간적인 충동으로 그랬다고 했고, 결국은 개학 후에 일주일 간 근신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물론 개학후 모든 것은 없었던 일로 되었죠.

 

문제는 2월 한달 동안 아이들이 칼자루를 쥐게 된 것이었습니다.

내가 좀 뭐라고 혼낼라치면

" 선생님 우리는 교장선생님 앞에서 근신 처벌을 당하면서까지 선생님을 보호했습니다. 우리가 확 불었더라면----. 아! 불쌍한 우리 선생님."

" 선생님이 모악산으로 도망가라고 했다고 한마디만 했어도----."

" 지금이라도 교장실로 갈까요?"

 

악당들!!!!!!!!!

놈들은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래도 사법고시 합격하여 판검사도 나왔고, 행정고시 합격하여 사무관도 나왔고, 신문 기자, 은행원, 회사원, 군인, 그리고 선생이 되어 어디선가 아이들 앞에서 내가 당한 그 이상으로 당하고 있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녀석들 중에 아직 마라토너는 없는 것 같아 아쉽네요.

 

내일 학교 가기가 두렵습니다. 올해 2학년 4반 아이들이 이글을 보면 자기들도 모악산으로 가버린다고 협박할지 몰라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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