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세상이 재밌겠느냐고.
힘이 불끈불끈 솟고
화사한 봄기운에
산자락을 타고 도는 바람에 젖어
팔베개라도 하고
하늘에 마음을 실어보아야 할
젊은 청년 3학년
아이들이 모의고사를 보는데
점수로
오직 점수만으로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는데
어쩌다가 우리반에 감독 들어가
시험지 나누어 주고
한 녀석씩
한 녀석씩
파리한 얼굴을 만져 알량한 정(情)을 풀어 보는데
우리반 실장님 하시는 말씀
"샘, 두 문제만 풀어주세요."
"얌마, 내가 답을 알아야 풀어주지."
"으으으응, 그래도 풀어주셈..."
문제지를 들춰보는데
좋은 시인지
안좋은 시인지 눈에 들어온다.
신록
서정주
어이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제 꽃잎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번 나-ㄹ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나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나려
신라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가시내의 머리털 같은
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나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세상 참 지랄같다.
두꺼운 겨울을 뚫고 고개를 내미는 새싹마냥
새록한 시를
엄마의 품에서 포근한 잠을 자고 일어난
발그레한 아기의 얼굴마냥
아름답고 새뽀얀
시들을
찢어서 발기고
뒤집고 두드려서
시험문제로 내놓느냐고.
어느 녀석 하나 있어
시험지 꾸겨 들고
휑한 바람만 부는 다가산으로 달려가
오는 봄 부여안고 눈물흘려주기를 바랐건만.
신라가시내의 숨결을 기다리며
머리라도 쥐어 뜯어 주기를 바랐건만
드런 놈들
고개를 처박고 시험문제에 빠진 기계가 되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내팽개치고
이렇게 가녀린 그리움도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정답이 무엇이냐고 눈을 들입다 뜨고 있으니
어찌 세상이 재밌겠느냐고.
어찌 학교가 학교이겠느냐고.
2006. 3.9
힘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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