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1. 학교는 학교이어야 한다.

힘날세상 2009. 4. 18. 11:12

1. 학교는 학교이어야 한다.

 

 

올 겨울 방학부터 보충수업을 선택제로 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이 과목을 설강해 놓으면

학생들이 자기가 받고 싶은 과목을 골라서 듣는 방식입니다.

말하자면 학원과 똑같은 방법입니다.

이런 방식을 도입하게 되는 이유는

효율적인 학습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지만

학교가 학원보다 못하다는

여론에 맞서보기 위한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의 이름을 밝혀 놓고 학생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는 완전한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국어과목이라고 하더라고

현대문학, 고전문학, 기출문제 풀이 등으로 세분화시켜 놓고

자신이 취약한 부분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기에

무엇인가 새로운 분위기인 것은 사실입니다.

 

얼마 전 TV에서도 방영이 되었지만

이러한 제도를 온전히 시행하고 있는 부산 지역의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은

아주 만족해하면서 속된 말로 좋아 죽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두말할 것도 없는 교원평가이니까요.

실력 있는 선생에게는 아이들이 몰려들고

실력 없는 선생의 강의실은 텅 비어 있을 것이니까요.

 

어쨌든

명실공히 전주시 중학생들이 진학하고 싶은 고등학교 순위에서

최정상에 서 있는 우리 학교에서도

이 선택제 보충수업제도를 도입해보자고

어느 가을 교무회의에서 결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걱정이 앞을 가리더군요.

이제 잘못하면

설 땅이 없어지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리는데

정말이지 죽을 맛이더라고요.

 

그렇다면 무슨 내용을 수업할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수능 시험을 대비하는 가장 좋은 문제는

기출문제를 풀어보면서

문제의 유형을 익혀가는 것이라는 판단에

교재 제작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꼬박 두 달을 작업하여 교재를 완성하여

어제, 즉 1월 11일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기출문제 풀이반이 3 개 반이 개설되었는데

그 중에서 나한테 배우게 된 아이들이 인상이나 쓰고 있으면

얼마나 창피하겠습니까?

애들 말로

참 쪽팔리더라고요.

모르는 척하고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1학년 때 우리반이었던 한 녀석이

제법 수염발이 잡힌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샘, 반가워요.’하며 웃고 있는데

대체 이것이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되더군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는데

이 길로 25년이 다되어가는데도

어제같이 사리 판단이 안 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래 이놈들아. 니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는 나의 역량을 다해서 수업할 것이다.’하고

1,2,3,4교시 연거푸 4시간을 강의하는데

정말 풀코스 달리는 것만큼이나 힘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학교가 학교의 본분을 버리고

학원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수단을 위해서

목적을 버리는 결과가 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교(敎)라는 글자에는 회초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말입니다.

따라서 교육(敎育)은 때려서 가르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교육학 시간에 배웠습니다.

매에 관하여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됨을 가르치는 것인데도

무슨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해대는데

이렇게 말하시는 분들의 시각이

오직 지식전달에만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정말로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교사들은 이제 단순히 학교라는 하나의 과정을 밟아가려는 아이들에게

조금 심하게 말하면 상급학교 가는데 필요한 졸업장을 받기 위해서

억지로 다니는 아주 단순한 과정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교단에서는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학교가 아닙니다.

학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 일본에서는 정규수업이 끝나고

학원 강사들이 학교 교실에서 진학을 위한 수업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왜 교직이 그렇게 인기가 높은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젠가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

과연 학교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서 다가산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투덜거리고 있는 나 자신이

전 시간에 3학년 교실에서 가르친 것은 인간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오직 수능시험을 안 틀리고 풀 수 있는 요령이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많은 올곧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위해서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는 학원이 아니라 학교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006. 01.11

  힘날세상

'교단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 봄은 왔건만  (0) 2012.03.15
4 폭포와 분수  (0) 2009.07.28
3 눈 내리는 날  (0) 2009.07.28
2. 어디 세상이 재밌겠느냐고  (0) 2009.04.18
0. 교단일기를 시작하며   (0) 2009.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