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문학

[수필] 꼴찌론

힘날세상 2009. 7. 28. 13:52

꼴찌론

 

작성일 2002-11-01 오전 10:49:57

 

 

꼴찌의 사전적 의미는 맨 끝 차례라는 뜻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꼴찌를 무시하고 천대한다.

어쩌면 자기 스스로도 꼴찌라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창피하게 생각한다.

어느 집단이나 순서가 있게 마련이고 순서를 생각하다 보면 꼴찌는 나오게 마련이다.

이 꼴찌를 가지고 이름 좀 날린 분이 소설가 '박완서'님이다.

그분이 슨 '꼴찌에게 보내는 박수'라는 책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으면서 한 때 사회 일각에서 꼴찌를 사랑해야 한다는 운동이 힘을 얻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 여파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마라톤대회에서도 정말로 맨 꼴찌로 들어오는 사람은 박수를 받고 엄청난 축하를 받는다.

심지어는 신문에 보도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가 꼴찌를 사랑하는가?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가 꼴찌를 아껴 주는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우리 언론들은 무슨 대회에서 금메달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은메달을 따도 통곡을 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학교에서도 꼴찌는 늘 뒷쪽으로 밀려난다.

엊그제 야누님이 '수우미양가'에 대한 좋은 글을 올려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또 옛날을 떠올려 보게 하였지만 정말 우리가 '양', '가' 를 '良', '可'로 보아 줄까?

아들녀석의 시험 점수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고 인생에 대한 가치관까지 왔다갔다하는 것이 현재의 우리들이다.

아이가 1등이면 부모까지 우쭐대고 아이가 꼴찌이면 부모까지 꼴찌부모가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누구나 꼴찌가 아니기를 희망한다.

마라톤에서도 우리는 꼴찌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소위 기록 향상이라는 거창한 내용을 목표를 내걸고 인터벌이니 언덕훈련이니 파틀랙이니 템포런이니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는 훈련을 하는 것도 다 기록 향상에 대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꼴찌를 추구하려고 한다.

쫄다구의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마라톤에서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즐겁게 달리려고 한다.

절대로 시계를 차지 않고 남을 추월하는 것을 재미로 삼지 않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농담으로 하는 말이 있다.

학교 다니면서 성적에 대해 포기만 할 수 있다면 학창시절같이 재미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고.

그렇다.

마라톤도 기록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고 그저 즐겁게 달릴 수 있다면, 그래서 달리는 시간 동안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고, 잊혀진 사람들을 떠올려보고, 흘러간 세월들을 반추할 수 있다면, 마라톤은 정말 아름답고도 내용이 가득찬 결실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익산클럽에 최병춘님이 있다.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분은 솔직히 마라톤을 할 몸매는 아니다.

그러나 그분을 마라톤을 사랑한다.

마라톤을 즐겨한다.

그분의 발걸음은 한 발 한 발 정이 있고, 사모님과 같이 달릴라치면 사랑도 넘쳐난다.

달리면서도 절대 입이 쉬는 법이 없다.

처음에 나는 그 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렇게 늦게 들어오면서 뭐 하려고 마라톤을 한다고 하는지....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분을 이해한다.

아니 나의 사부로 삼으려고 한다.

지난 번 원평을 돌아오는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뒤에 자리잡은 여성분들과 달리면서 어쩌다가 어느 여성분(김두홍 평화팀장님 사모님)과 같이 달리게 되었다.

5km 정도 같이 달리면서 마음 속으로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참고서 같이 달렸다.

그러면서 그분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드리기 위해 여러가지 말을 했다.

5km에서 차를 타고 말았지만, 지금 이정희 여사님은 하프를 거뜬히 달린다.

그날 팀의 맨 뒤에서 달리면서 느낀 것은 어느 한 사람을 마라톤의 세계로 인도하는 즐거움도 기록 경신 못지 않다는것을 알았다.

아마 그것이 천천히 달리는 매력이 아닐까?

이제 꼴찌로 달리려고 한다.

훈련에서 낙오하거나 처음으로 나오신 분들과 같이 달리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얻으려는 것이다.

꼴찌보다는 꼴찌 정신이 더 중요할 것이다.

쫄다구보다는 쫄다구 정신이 더 중요할 것이다.

꼴찌는 한 명이지만 꼴찌 정신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쫄다구는 한명이지만 쫄다구 정신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꼴찌!

쫄다구!

엄밀히 말해서 이 두 단어가 똑같은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공통 분모를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최경호님이 기가막힌 정의를 해놓았다.

'쫄다구는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한다.'

그렇다.

그런 마음이 바로 쫄다구 정신이다

바로 꼴찌를 지향하면서 필요한 것이 쫄다구의 마음일 것이다.

꼴찌!

꼴찌를 사랑하자.

쫄다구 정신을 사랑하자

 

 

꼴찌에서 달리고 싶은 힘날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