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잃어버린 시간을 위하여
새벽 4시가 막 지났는데 아내가 부시럭거리는 바람에 잠이 깨었다. 일단 일어나서 늘 하던 대로 물부터 한잔 마셨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시원한 기분은 언제나 새뜻한 느낌이다.
잠이 완전히 달아나 버려 거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스트레칭을 한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쭉 뻗어 보기도 하고, 앞으로 굽혀 바닥에 손을 집고 뒷다리 근육을 쭉쭉 늘리기도 해본다. 밤새 잠들어 있던 근육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미 하루가 시작하고 있었다.
새벽에 맛보는 분위기가 참으로 좋아 주섬주섬 옷을 찾아 입었다. 겨울 동안 달리는 내 몸을 감싸준 검은 색의 파워스트레치를 입으면서 거금을 들여 옷을 준비해 준 아내의 얼굴을 얼른 꺼내 펼쳐 본다. 언제나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데 오늘은 고단한 모양이다. 내가 이 정도로 부산하게 움직였으면 벌써 알아챘으련만, 아내는 아직 한밤중이다.
두꺼운 어둠을 두르고 있었지만, 새벽은 팔팔하게 살아 있다. 여기저기서 이미 새벽을 더듬으며 삶의 흔적을 만들어 놓은 사람들이 많다. 현관의 신문은 아마 4시 이전에 갖다 놓았을 것이고, 우유를 배달해 주는 아주머니의 부지런이야 말할 것도 없다. 벌써 쓰레기를 다 정리 해놓은 아파트 청소원 아저씨는 목에 두른 거무데데한 수건을 풀어 옷에 묻은 먼지를 훌훌 털어 내고 있다.
그렇게 새벽은 살아있었다.
나는 제법 일찍 일어났다고 우쭐해 하던 마음을 조용히 접었다. 그리고 삼천(三川)으로 내려가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다. 고즈넉하게 가라앉아 있던 지난밤의 시간들이 내 발자국을 따라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중인리 벌판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아무런 생각도 가지지 않은, 그야말로 무아지경(無我之境)을 꿈꾸며 내가 가진 모든 상념들을 떨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버린 생각들이 발자국을 따라 올까봐 달리는 속도를 높여 보기도 했고, 보이는 것이 머릿속을 짓누를까 봐 두 눈을 꼭 감고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머리 속은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의식의 심층부(深層部)에 깊이 잠재해 있던 케케묵은 생각들까지 깨어나 나보다 빠른 속도로, 또는 느린 속도로 나를 에워싸 버리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친구들의 얼굴, 고향 마을의 희미한 들길, 어렵게 결혼한 형수를 떠나보내고 술에 젖어 살다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 형님, 마라톤에 도전하겠다고 부부가 큰소리치다가 이틀 달리고 포기해 버린 종환이 형, 일주일 간격으로 부모를 잃고 M16 소총으로 생을 마감해 버린 전우…….
갑자기 복잡해져 버린 생각들을 가닥가닥 간추려 놓고 있는데, 아침마다 우유를 배달해 주는 아주머니가 슬며시 떠오른다.
두꺼운 안경을 끼고 우유를 배달하는 그 아주머니는 고3인 딸과 둘이서 산다. 수금하러 온 아주머니와 차 한 잔 나누었다는 아내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의 생활은 상당히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는 언제나 밝은 얼굴이었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살아가고 있었다. 부족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삶을 살아가는 아주머니를 생각하면, 항상 모든 면에서 부족한 삶이라고 투덜대던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이 새벽에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새벽에 어쩌다가 일찍 일어났다고 우쭐대며, 마라톤 풀코스를 달렸다는 별 것도 아닌 사실을 내세워 교만한 마음만 키워 가고 있지나 않았는지 자꾸만 마음속으로 눈길이 간다. 기껏해야 풀코스 몇 번 달렸다고 초보자들 앞에서 기록이나 자랑하고, 조금 빨리 달린다고 폼이나 잡지 않았는가? 기록이 조금 빠르다고 풀코스 완주 횟수가 조금 많다고 우쭐해 하거나 거드름을 피우지나 않았는가? 우유배달 아주머니를 만나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인사를 해야겠다.
이제 마라톤을 시작한 지 4년이 된다. 풀코스를 몇 번 달리고 난 후 갑자기 허탈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될 즈음에서 부상을 입었다. 부상은 주로(走路)에서 한 발 떨어져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마음으로 마라톤을 바라보는 계기를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분명히 ‘터닝 포인트(turnning point)'였다. 초보시절부터 온통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기록 단축에 대한 집념과 도전, 또 그것을 위해 신체적인 무리를 감수하면서까지 강도를 높여왔던 피나는 훈련들이 모두 다 허무한 메아리가 되어서 가슴을 파고 들었다.
매일 같이 생활하면서도 한 번도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었던 마라톤. 도대체 ‘나에게 있어서 마라톤은 무엇인가?’하는 일념(一念)으로 부상의 깊은 터널 속을 헤매고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마라톤의 실체를 들여다 보지 못했다. 산이 있으므로 올라간다는 어느 누구처럼 그냥 달리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시덥지 않은 얼굴을 내보이는 아내의 말에도 분명히 깊은 의미가 있기는 하다. 아내는 달리기를 하면서 온 몸을 짓누르고 있는 복잡한 심사(心事)를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에 달리는 것이라며, 달리기에서 무슨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달리면서 늘 힘나는 일들을 만난다.
새벽 하늘 말간 공기를 마시며 금산사 고갯길을 달리든지, 내 마라톤의 고향인 중인리 벌판을 달리든지 머릿속에 화두(話頭)로 삼고 있는 것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바닷바람을 가르고 외롭게 달릴 때에도 나는 늘 즐거움이 솟아난다. 지나간 시절들에 대한 그리움이 거대한 화산처럼 폭발하기도 하고, 거의 잊고 있었던 얼굴들이 옹달샘처럼 조용히 솟아나기도 한다. 마라톤을 하면서 나는 잊어버린 많은 것들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라톤은 즐거움이며, 새로운 삶을 원천이다.
달리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하여 늘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지난 시절을 되새기면서 더 나은 생활을 꿈꿀 수 있기에 나는 이 새벽에 달리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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