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문학

[수필] 들녘같은 클럽을 위하여

힘날세상 2009. 7. 28. 14:00

들녘같은 클럽을 위하여

2003-06-02 13:52:04, 조회 : 111, 추천 : 0

 

교무실 창 밖으로 보이는 다가산의 푸르름이 너무 좋아

고개를 내밀었는데

교사 앞 잔디밭에서

커다란 밀짚모자를 눌러쓰고도

다시 수건으로 온통을 얼굴을 가린

아주머니 두 분이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풀을 매고 있다.

 

뙤약볕에 앉아

풀을 매는 그 분들의 바구니에는

노랗게 피었다가

뿌리채 뽑혀 금새 말라버린 노오란 들꽃이 가득하다.

 

아주머니들이 매어나갈

잔디밭에는

이제 곧 죽어야 할 노오란 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푸른 잔디 위에

노랗게 핀 들꽃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들꽃의 군무(群舞)를

사정없이 흩어버리려 한다.

오직 잔디만이 살아남아야 한다며

우리들은

잔디밭에서 한 발만 비켜 있으면

그렇게도 아름답다고

칭찬해 쌓을 들꽃의 향기를

한 줌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잔디밭은 잔인하다.

밟아서도 안되고

잔디가 아니면 누구도 들어서지 못하기에

잔디밭은 언제나 우리의 왕이다.

 

 

 

서로 다른 개성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어야

참다운 질서를 이룩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클럽도

수없이 많은 개성들이 모여

획일적이지 않고

클럽이 있는 듯 없는 듯 흘러가기에

우리 클럽이 좋다.

 

일사분란이나

행동 통일이 아니라

여유있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즐겁게 달리고

떠들고 웃어대며

사람들의 정을 이어가는 우리클럽이

오늘

잔디밭 위에 피어 있는 노오란 들꽃처럼 좋다.

여럿이서 같이 운동하면서도

개인의 모든 것이 인정되는

마라톤이 좋다.

 

힘날의 넓은 잔디밭에는

그냥 클로바도 놓아두고

질경이도 자라게 하자.

그것이 자유이고

그것이 활발한 교류인것을.

어제

경기장에서

모두들 천막 밑에서

한잔의 술을 들면서

흥을 이어가고 있을 때

우리 힘날들 모두

말없이 갈 곳으로 흩어져 갔어도

그것이 어디 단순한 흩어짐이었던가

곧바로 황혼녘에

삼천에 54명이나 모였던 것을.

 

마라톤은 즐겁게 하자.

아니 마라톤을 통해서 짓누르는 삶의 압박감을 털어내 버리자.

자신의 저울에 따라

덜어내고

또 어깨에 더 올려 놓아보기도 하고.

 

마라톤!

분명이 뭔가 있는 운동이다.

마라톤은 분명 눈요깃감의 잔디밭이 아니다.

거칠고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들녘의 풀밭이리라.

그래서

꼿꼿이 일어서는

온갖 잡풀이 섞여서

아름다움을 토해내는

산자락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