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문학

[수필] 고요와 화평

힘날세상 2009. 7. 28. 12:56

고요와 화평(和平)

 

 

귀신사(歸信寺)는 거기 없었다. 아니, 귀신사는 거기 있었지만 내가 찾은 귀신사는 거기 없었다.(중략) 아마도 볕에 바래지 않은 누런 광목이 주는 상가집 분위기 탓이겠지만, 거기에는 신이 지친 몸을 쉬기 위해 돌아오는 자리가 아니라 이제는 병들어 옴쭉달싹도 못하는 신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위해 돌아오는 음산한 자리라고나 해야 맞을 것 같았다 - 양귀자, <숨은 꽃>에서

 

일요일 아침, 정말 어처구니없는 늦잠으로 클럽 훈련을 참석하지 못한 탓에 오후 달리기에 나섰다. 오후 2시 해성학교를 출발하여 동적골을 지나 터널을 지나 도로 끝까지 달려 볼 생각으로 가볍게 발걸음을 옮긴다. 허리에 찬 물통에는 매실즙을 담고, 마음에는 ‘고요와 화평’이라는 화두(話頭)를 품었다. 오늘은 달리는 내내 외부로 향한 통로를 닫고서 달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든 문을 닫고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과, 혼자만의 공간을 밟아 그야말로 ‘고요와 화평’에 젖어 보고 싶었다.

가볍게 허리를 휘감아 도는 바람에서는 이미 봄내음이 솔솔 풍겨 나오고 있었고, 길섶에서는 새싹들이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겨울 심하게 내린 몇 차례의 폭설 속에서도 봄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남아 또 다른 생명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봄은 땅 속으로 온다.

혼자서 달리는 홀가분하고도 자유스러운 마음은 발걸음을 재촉하였으나, 봄의 여신에 홀려 버린 마음은 늘어질 대로 늘어져 모든 것이 여유가 넘친다. 중인리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갑자기 예정을 바꾸어 금산사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동적골 쪽으로 달리려고 마음먹었는데, 나도 모르게 발길은 금산사길로 이어져 버린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달려 보는 길이다. 1999년 춘천마라톤대회 풀코스에 도전장을 던지고 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달렸던 이후부터 숱한 애환을 품고 넘나들었던 고갯길이다. 이 고갯길을 넘어 다니며 마라톤의 진정한 존재 이유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생각하였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봄기운을 너울거리던 날에는 자연이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것을 눈으로 바라다보기도 하였다.

황소리를 지나자 길은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길이 오르막인 꼭 그만큼 나의 발걸음도 무거워진다. 그러나 호흡만은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모악산에서 흘러 내린 산자락이 부드럽게 이어지면서 만들어 놓은 1.7km의 고갯길을 올라가는데,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너무나도 정답게 걸어가고 있다. 소곤소곤 나누는 이야기는 아마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의 사랑이야기거나, 아니면 곱게 곱게 길어 놓았더니 훌쩍 시집 가버린 딸아이를 그리워하는 이야기임에 틀림없으리라.

정말 좋은 느낌의 부부였다. 걸으면서 쌓아가는 부부의 정도 마라톤 이상의 참 맛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을 뒤로하고 고갯길을 힘차게 오른다. 양쪽으로 도로를 감싸고 있는 산자락의 나뭇가지에는 벌써 성질 급한 봄바람이 걸터앉아 흔들거리고 있다. 봄날처럼 포근한 날씨에 땀방울이 흘러 내려 선글라스를 벗어 버렸다. 눈앞에 훤해진다. 발걸음에 힘을 실어 본다. 언덕을 오르는 기분이 정말 상쾌했다. 혼자서 이 고갯길을 여러 번 넘어 봤지만 오늘 같은 기분을 느낀 것은 많지 않았다.

어느덧 청도리 마을 회관 앞이다. 이제 낮은 고개 하나만 넘으면 금산사 3거리이다. 불과 10여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런데 청심수퍼 앞에 서 있는 ‘귀신사(歸信寺)’라는 안내판을 본 순간, 정말 느닷없이 양귀자의 <숨은 꽃>이라는 소설의 한 구절이 갑자기 떠올라 예정에도 없이 귀신사로 발걸음을 돌려 대적광전(大寂光殿) 앞에 섰다.

오늘 달리기에 나서면서 품었던 화두(話頭)는 ‘고요와 화평’이었다. 혼자서 달리는 때에는 늘 한 곳으로 생각을 모으곤 하는데, 그것은 늘 의식의 심층부를 관통해 가느다란 희열을 가져다주곤 하였다. 그래서 달리기는 짙은 인생의 맛을 풍겨 내고 있는 것이다.

귀신사는 정말 조그만 절이다. 여느 절과 같이 요란한 산문(山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청도리라는 동네 끝자락에 동그마니 앉아 있다. 그러나 청도리 마을 회관에서 귀신사까지 달려가는 동안, 물론 몇 걸음 되지도 않는 거리였지만, 단 한 사람도, 단 하나의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렇게 귀신사는 속세에 내려 와 있으면서도, 속세를 떠나 있는 것이다.

소설가 양귀자님의 표현대로 ‘신이 지친 몸을 쉬기 위해 돌아오는 자리가 아니라 이제는 병들어 옴쭉달싹도 못하는 신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위해 돌아오는 음산한 자리’와 같은 느낌을 받기에 충분한 적막에 싸여 몇 집 되지도 않는 청도리 마을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었다.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華嚴十刹)로 한 때 이름을 떨친 대가람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대적광전과 명부전(冥府殿), 그리고 그 사이에 만들어진 아주 적절한 마당 하나. 이것이 귀신사가 갖고 있는 전부였다. 귀신사가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적막(寂寞)’ 하나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적광전 앞마당에 가득 고여 있는 고요와 적막은 비구니의 가느다란 숨결만 스쳐도 금새 흩어져 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대적(大寂)’이라는 것이 부처님이 만들어내는 고요라는데 생각이 미치는 순간, 문득 부처님의 가르침은 절 앞마당에 쌓여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귀신사의 부처님은 대적광전(大寂光殿) 앞마당에 무슨 가르침을 베풀어 놓았다는 말인가? ‘염화시중의 미소’라고 부처님은 무언(無言)으로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인가?

대적광전 뒤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3층 석탑을 등지고 앉아 대적광전 앞마당에 직육면체로 정갈하게 쌓아놓은 부처님의 고요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어리석게도 마라톤하고만 연결하여 생각의 가닥을 간추려 보았으나 단 한가지도 매듭을 지을 수가 없었다.

전주까지 돌아갈 일을 생각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대적광전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명부전을 옆을 돌아오던 어린 아이의 투정 소리가 고즈넉하게 가라앉아 있던 고요를 흔들어댔다.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던 나의 생각도 심할 만큼 부서지고 말았다. ‘부처의 가르침도 별 것이 아니구나’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대적광전 앞에 쌓아 두었던 부처의 고요는 흔적도 없이 복원되어 있지 않은가.

귀신사를 나와서 돌아오는 길은 오르막이다. 점점 가팔라지는 오르막을 따라 달리면서 귀신사에서 맛보았던 고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비록 귀신사는 초라한 모습으로 업드려 있었어도 대적 광전 앞마당에 쌓여 있는 직육면체의 고요는 육중한 무게로 존재하고 있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숱한 문제들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거대한 바람에 우뚝 선체로 맞서는 거목(巨木)처럼, 조금 더 대범하고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부처님은 귀신사까지 찾아 와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요함으로 화평(和平)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고갯길을 오르는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대적광전 앞마당에 직육면체로 쌓여 있던 고요를 한동안은 가슴속에 보듬고 달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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