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문학

[꽁트] 아버지의 손바닥

힘날세상 2009. 7. 28. 12:50

꽁트

 

아버지의 손바닥

 

 

20km 지점을 지났을 때부터 바람이 거세어지기 시작하더니, 잔뜩 찌푸린 하늘은 가는 눈을 쏘아대기 시작하였다. 시골 동네의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야 하므로 바람에 대한 대비로 파워스트레치 원단의 옷을 입기는 하였지만 정면으로 달려드는 눈보라는 어쩔 수 없었다. 안경을 쓰고 오기 잘했다고 생각하며, 모자를 다시 한 번 고쳐 쓰고 이를 악물어 본다. 한 시간쯤 전에 갓길에 놓여 있는 이온 음료를 발견하고 그저 잘됐다는 마음으로 마시기는 했지만 갈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풀코스를 완주하면서부터 늘상 가지고 있던 유일한 소망은 아내를 마라톤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1년여의 시간을 투자하여 아내가 풀코스를 완주하게 되자, 아버지 묘소까지 달려가서 성묘를 하고 돌아오자는 욕심이 슬금슬금 머리를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풀코스를 몇 번 완주해 보기는 했지만 60km가 다 되는 거리를 혼자서 달린다는 것은 여간 단단히 마음먹지 않고서는 나서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몇 백 킬로를 달리는 사람들의 거대한 발걸음에 힘입어 이번 아버지 기일을 맞아 실행하기로 작정을 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다. 아내와 같이 동반주를 할까도 생각해 봤으나 오직 혼자서 달려보고 싶었다.

일요일 아침,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 오늘이 아버님 기일인데……. 오늘도 달릴 거예요?”

아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 50km LSD 한 번 해보려고.”

아버지 묘소까지 달려서 갔다 오겠다는 말은 입에서만 맴돌 뿐, 웬일인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 부상에서 회복된 지도 얼마 안 되는데 괜찮겠어요?”

“ 그래서 한 번 달려 보려는 거지.”

“ 조심해요. 조금만 이상하면 바로 멈추고 돌아오세요.”

그러나 웬일인지 아내는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았다.

‘그렇다. 나는 혼자서 달린다. 풀코스까지는 경험으로 달리고 나머지 15km는 불효에 대한 형벌이라고 생각하면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 비장한 마음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나는 현관을 나섰다.

 

낮으막한 산자락을 따라 추레한 지붕들이 머리를 맞대고 늘어서 있는 고향 마을이 보일 때쯤 해서는, 가을걷이가 끝난 널찍한 들판 가득 눈송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왠지 묵직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루고 도망치듯 떠나와 버린 고향에는 이제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낡아버린 의복처럼 후즐그레한 모습으로 드러 누워 있는 동네를 바라보던 눈길을 거두어 저 멀리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철길로 내던졌다. 어린 시절 철길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늘 서울로 가는 꿈을 얘기하던 내 친구 ‘중원’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떠나간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세월은 그리움만 가득 쌓아놓는다’는 싯구절이 떠올랐다.

‘중원’이와 나는 등하교길을 늘 같이 붙어 다녔는데, 우리들은 늘 뛰어 다니기 일쑤였다. 언젠가는 학교가 파하고 집에까지 달려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는 힘껏 달리다가 지칠만하면 속도를 줄이고 또 다시는 달리는 방법으로 2km 정도 떨어진 아이들을 따라 잡고는 스스로 대견해 하던 일이 불쑥 떠오른다. 생각하면 그것은 바로 ‘파틀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 나는 기록을 단축하려는 훈련은 하지 않는다. ‘파틀랙’이니 ‘인터벌’이니 하는 것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며 자신에 몰입하기 위해 달리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40여년 전에 뛰어 놀았던 그 들판을 누구도 없이 혼자서 달리는 기분은 정말이지 견딜 수 없는 괴로움 그 자체였다. 부상으로 인하여 달리지 못하는 아픔이야말로 마라토너들에게는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고 흔히들 얘기하지만,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는 고향의 하늘 밑에서 지난날의 가장자리만 밟고 달린다는 것은 아무리 추억의 반추(反芻)라고 하더라도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아픔이었다.

이 넓은 들판을 뛰어 놀았던 우리들의 발걸음마다 쌓인 추억의 두께는 쉽게 걷어 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금 이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두께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풍성하고 기름진 들판을 터전으로 아버지는 당신의 삶을 일구어 나갔다. 그러나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것도 없는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 보면, 늘 부족한 생활이 가져다주는 무거운 한숨과, 온통 가슴저림으로만 덮여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읽어 본 때묻은 당신의 노트에 비틀거리는 듯한 글씨로 남아 있는 아버지의 일념(一念)은 가족에 대한 짙은 관심이었다. 펴지지 않는 허리를 투박한 손으로 두드리며 떨어지는 해를 향해 아버지가 당신의 가슴에 새겨 두고 있었던 것은 여느 아버지들이 다 그런 것처럼 자식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사랑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은 우리들에게 근엄하다 못해 무서운 느낌까지 줄 정도로 언제나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운동회에서 우리반은 자기가 뽑은 쪽지에 써 있는 대로 달리는 경기를 하였는데, 내가 뽑은 것은 ‘아버지 손잡고 달리기’였다. 나는 정말 걱정이 되었다. 한 번도 나는 아버지와 손잡고 돌아다녀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디를 같이 가더라도 아버지는 나를 앞에 세울 뿐 내 손을 잡아주지는 않았다.

쪽지를 펴들고 힘차게 달려가는 다른 아이들만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서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마치 쪽지에 써 있는 내용을 다 알고 있는 듯이 내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손을 잡고 같이 달렸다는 사실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때 내 손을 덥썩 잡은 아버지의 까칠한 손바닥의 감촉과 생각보다 따뜻했던 느낌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중학교 다니던 아들녀석의 손을 잡고 달려 본 적이 있었다. 5km 대회였는데 나는 끝까지 아들녀석의 손을 꼭 잡고 달렸다.

“아빠, 불편하게 왜 손을 잡고 뛰어요?”

‘자식...... 너는 내 마음 몰라 임마.’

슬며시 흘러내리는 눈물을 고개를 돌려 닦으면서도 나는 아들 녀석의 손을 꼭 잡고 달렸다.

이제 아들녀석은 고등학생이 되어 나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다. 어느 날 불쑥 ‘아빠, 포켓볼 한 번 치러 가요.’ 하면서 수염발이 제법 잡힌 입언지리에 넉살 좋은 웃음을 흘리면서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에게 어리광을 부리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나 미웠다.

 

당신의 내면세계까지 파고드는 병마(病魔)를 움켜 쥐고도 아버지는 편안한 얼굴이었다. 어차피 한 번 가야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너무 그렇게 호들갑을 떨 것이 없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병색으로 초췌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아버지의 심신을 파고 드는 고통을 향해 어머니는 수없이 눈물을 쏟아 부었으나, 나는 특별한 아픔을 느끼지 못하였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밤을 세워 기도로 매달리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아픔을 뼛속 깊이 받아 들이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져 온 아버지에 대한 무서움으로 인해 나는 나도 모르게 아버지와 거리감을 두고 살아 왔던 것이다.

아버지는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던 여름날 당신의 모든 것을 그대로 놓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상을 치루면서 아버지에 대한 통한의 눈물을 흘렸으나, 가슴 깊이 쌓여 있는 죄책감을 떨쳐 버리지는 못했다.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게 되면서 살갗을 파고 들어오는 고통을 통해, 나는 아버지가 병마와 싸우면서 속으로 흘렸을 눈물의 의미를 희미하게나마 느껴 볼 수 있었다.

 

눈발이 더욱 거세게 몰아친다. 이제 낮은 구릉을 돌아서면 아버지 묘소이다. 아버지 묘소에 엎드려 가슴 속 깊이 자리잡은 통한의 울음을 실컷 울고 난 후, 달려온 길을 다시 달려갈 것이다. 돌아갈 때는 내 몸이 부서지는 혹독한 고통이 어깨를 짓누르고, 가슴을 쥐어 뜯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께 속죄할 수만 있다면, 나는 사정없이 부서지고 싶었다. 정말이지 철저하게 부서지고 싶었다.

내가 부서지는 만큼 아버지는 언제나 까칠한 손바닥의 감촉과 생각보다 따뜻했던 느낌으로 내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사실 그 까칠한 손바닥의 감촉은 늘 내 삶의 밑바탕이 되어 왔고, 생각보다 따뜻했던 느낌은 내 아들 녀석을 향한 나의 마음의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서야 비로소 내 앞에 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니 나는 이제서야 아버지를 제대로 보게 되었던 것이다.

낮은 산자락을 돌아 묘소로 향하던 나는 걸음을 멈추어 버렸다. 아버님 묘소에 아내가 서 있는 것이었다.

“ 여보, 힘드셨죠? 돌아가는 길은 나랑 같이 달려요.”

“ 아니 당신이 어떻게 …….”

“ 당신의 훈련일지에서 오늘의 계획을 봤죠. 당신을 따라 나서고 싶었지만, 아버님과 당신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큰 아가씨에게 부탁을 해서 먼저 왔죠. 달리는 길에 이온 음료를 두고 왔는데…….”

눈발이 가득한 아버님 묘소에 무릎을 꿇고 아내와 손을 잡았다. 문득 아내의 손바닥에서 아버님의 까칠한 감촉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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