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문학

[응모] 그래서 마라톤은 해볼만한 거야

힘날세상 2009. 7. 28. 12:58

그래서 마라톤은 해볼만한 거야.

 

                                                                                              MBC 지금은 라디오 시대 투고작

 

 

이종환 최유라씨 안녕하십니까?

 

저는 올해 47세로 1999년 5월에 마라톤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풀코스 7회와 하프코스 12회를 완주하였고 한 달이면 200km 정도를 달리고 있지만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아마추어입니다. 그래도 마라톤이 좋아 열심히 달리고 있으며, 가정의 화목과 부부의 돈독한 금슬을 위해서 아내를 마라톤의 세계로 인도하여 지난 3월 3일 서울마라톤대회에서 아내와 손에 손잡고 42.195km를 완주하는 기쁨도 맛보았습니다만제 아내와 같이 마라톤을 하면서 받은 상처뿐인 영광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5월 19일 대전에서 열리는 MBC 대전 마라톤 축제로 인하여 그렇지 않아도 달아오른 마라톤에 대한 열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는 것은 두 분이 더 잘 아실 겁니다. 이 마라톤을 가리켜 남들은 신이 내린 보약이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니 하고 칭찬의 말들을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마라톤은 여자하기 나름입니다.

 

아내에게 마라톤의 맛을 보여 주기 위하여 제가 들인 노력을 어찌 필설로 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에 많고 많은 운동 중에서 하필이면 마라톤이냐고 콧방귀도 안 뀌던 아내가 초등학교 운동장 두어 바퀴 돌고서 무슨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던 날, 군소리 한 마디 없이 땀에 젖은 운동복 빨래는 물론 집안 일이란 일은 모두 다하며 그야말로 공주처럼 떠받들었고, 오직 아내를 위하여 제 운동은 모두 접어 놓고 아내의 스케줄에 맞춰 모든 훈련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지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달쯤 지났을 때 아내는 처음으로 5km 대회에 참가하여 전남 광양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끝까지 달리더니, 그때부터 이 여자 독기를 품고 연습을 하는 겁니다. 10km 정도는 가볍게 달릴 수 있게 되자 한 술 더 떠 대회에 참석하겠다는 겁니다. 저는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니냐며 말리고 말렸지만, 아내의 우격다짐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2000년 4월 29일 전남 함평 대회 10km에 참가한 아내는 여자부 40대 3위를 하였는데, 주최측은 얄밉게도 초호화 금박으로 꾸며진 상장을 고급 액자에까지 넣어서 보내왔습니다. 상장을 받자마자 아내는 닦고 닦아서 거실에서도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놓고는

" 마라톤 일찍 시작하면 뭐해? 상을 받아야지."

이렇게 아주 도도한 목소리로 콧대를 세우며 비웃는 겁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아내를 추켜 세우며 아내의 기분을 딱딱 맞추어 주었지요.

"그래 역시 당신은 대단해. 어쩌면 천부적인 소질을 갖고 태어났나 봐. 나 같은 것은 정말이지 족탈불급이야."

그러나 문제는 그 때부터였습니다. 아내가 피나는 연습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삼천천 변에 나가 매일 한 시간씩 뛰는 것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저는 족저근막염의 증세가 있어 달리기를 쉬고 있었고 2주 정도 지나서 회복이 될 무렵에는 어깨에 통증을 느껴 이럭저럭 한 달 가량을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저의 아픔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열심히 뛰는 밤달녀가 되었을뿐더러 어디서 들었는지 근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가 출근하자마자 헬스클럽에 나가서 웨이튼가 뭔가 하는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말도 않고 훈련만 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내는 꼭 한마디씩 하며 남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연습 때 흘리는 땀과 성적은 비례한다며?"

한편으로 좋기도 하였지만 은근히 약이 오르기도 하데요. 만일 제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이 그랬다면 정말 한 대 쥐어박고 말았을 겁니다.

2001년 9월 2일 ‘2010년 무주전주 동계올림픽유치 추진위원회’라는 이름도 긴 단체에서 느닷없이 도민 건강마라톤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50위까지 시상을 한다고 써 있는 팜플릿을 제 코에다 바짝 들이대며

" 적어도 이 상품 중에 한 가지는 틀림없이 내 것인데.... 어느 것을 받을까? 당신 뭐가 좋아. 비디오? TV? 아니 솔직히 그것은 어려울 것 같고 10위 안에 들어 트로피는 받아야겠지. 그래서 찬란한 트로피 높이 들고 멋진 사진 한 장 찍어 놓아야겠지?"이러며 저를 짓눌러대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미칠 것 같더군요. 세상에 자기 아내가 잘한다는데 격려해주고 도와줄 생각보다 시기와 질투가 앞을 가리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십시오. 그게 바로 접니다.

그런데 그날 아내는 그 무더운 날씨에도 죽기 살기로 달리더니 정말 10위를 해서 트로피와 부상으로 마라톤화를 받아버렸고, 클럽 회원들은 축하한다고 악수를 청하고 사진을 찍어대고 야단 법석을 떠는 겁니다.

정말이지 야코가 팍 죽더군요. 괜히 힘이 빠지고 어깨가 내려 앉는 겁니다.

트로피를 집에 가져다 놓고 나서 의기양양하는 아내의 표정을 두 분이 보셨다면 그때의 제 심정을 아셨을 것이고, 틀림없이 저를 위로하며 어쩌면 격려금까지 쥐어 주었을 겁니다.

 

아내의 훈련 강도는 더 세어졌습니다.

“ 여보 삼천천은 사람이 많아 스피드를 낼 수 없어서 안되겠어. 해성고에 가서 좀 세게 달릴건데 나 따라가서 좀 달려보는게 어때? ”

그 말하는 입이 얄미워 죽겠더군요. 그래도 야밤에 아내 혼자 보낼 수 없어서 같이 따라 나섰죠. 사실 그 다음 주에 있는 변산 대회를 위해서 저도 연습을 해야 했었거든요. 부상 때문에 8월 한 달간 겨우 46km 달린 것이 전부이고 보면 언덕이 가파르기로 유명한 변산 코스가 슬며시 겁이 나기도 하였지요. 우리는 매일 밤 연습을 하였지만 제 실력으로는 어떠한 대회에서도 입상을 할 수 없다는 잘 알고 있기에 별로 기분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9월 9일 변산대회에서 저는 초반의 오버페이스와 연습부족으로(연습은 안한 것이 꼭 의욕만 앞서 가지고 오버를 하는 겁니다) 후반 10km에서 초죽음이 되었고 17km지점에서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유니폼 앞뒤에 붙어 있는 "전주마라톤클럽"이라는 글자 때문에 죽을 힘을 다하여 제 기록보다 17분이나 늦게 결승점에 들어왔습니다. 거의 초죽음이 되어 들어오는 저에게 이미 10km를 다 뛴 아내가 한 말은 "힘들었냐, 고생했다, 괜찮냐'하는 말이 아니라 “나 또 상 받았다." 하는 거였습니다. 이것은 정말 고통이었습니다.(나중에 확인해 보니 아내는 여성 9위에다 40대 2위를 했더군요)

 

드디어 저에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매년 개교 기념 교내 마라톤을 실시하는데 작년에는 마침 개교 100주년이 되는 해라서 조금 성대하게 치루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회를 추진하는 체육부장 선생님을 살살 꼬셔 가지고 대형 트로피를 준비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3등 트로피만 해도 아내가 받은 트로피의 세 배는 됨직한 초대형이었죠. 교무실에 가져다 놓은 트로피를 보면서 저는 음흉한 눈길을 보냈습니다. '저것 중에 하나는 틀림없이 내 것이다. 내가 얼마나 연습을 하였는가? 김병호 선생님 제발 살살 좀 달리십시오. 그리고 학생들아 너희들 내 마음 좀 알아 주라. 나는 반드시 3위 안에 들어야 한다.'

시상대에서 트로피를 받는 장면을 상상하며 피나는 훈련을 거듭하였습니다. 제 능력도 생각하지 않고 6km를 25분에 달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심장이 파열되는 느낌 속에서도 ‘이렇게 10km만 달리면 나는 대형 트로피를 손에 쥘 수 있다’고 얼마나 다짐을 했는지 모릅니다.

두 분 'burn out' 이라고 알죠. 너무나 훈련을 많이 한 탓에 막상 대회에서는 기운이 빠져 버린 것입니다. 10km를 다 달리고 마지막 운동장 한 바퀴를 남겨 놓았는데 제 앞에는 세 명의 주자가 달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현관문을 열어주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다 볼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트로피는?”

“---- 그냥 양보했어.”

저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하고 아내가 보내 올 핀잔의 농도를 떠올려 보며 처분만 기다리는 상태로 목을 빼고 결정타를 맞을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괜찮아. 너무 기죽지마, 여보. 당신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었나 봐. 미안해. 내 진실은 당신이 트로피를 타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즐겁게 달리고 우리가 화목하게 사는 거야. 나도 이젠 그런 생각 버리고 즐겁게 달리려고 해.”

아내는 오히려 미안하고 죄스러운 얼굴로 어깨에 손을 얹어 왔습니다. 순간 눈물이 확 쏟아지더군요.

 

아내의 생일날 달빛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중인리 앞 벌판을 달리다가 미리 가져다 둔 생일케익을 자르며,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고, 들꽃 향기가 흩날리는 들판을 땀에 젖도록 달리고 난 뒤에 인생은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라고 하늘을 향해 외치며, 성실하게 살아가자고 다짐하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 여보! 당신 말대로 달리는 길은 신성한 곳이고 우리가 그것을 신성하게 여기며 겸손한 마음으로 달릴 때 마라톤은 값어치가 있는 거야.”

아내의 말이 달콤하게 들리더군요.

수없이 많은 분들의 삶을 얘기하시는 두 분!

인생에 비유하는 마라톤은 기록도 중요하고 경쟁도 필요하지만,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며 편안하고 여유 있는 기분으로 서너 시간 동안 자신과의 진실한 대화를 하면 달릴 때 그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정직한 운동인 것입니다. 그것도 부부가 같이 달리면 더 없이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종환 최유라씨 !

저희는 5월 19일에 대전 마라톤 축제에 갑니다. 가서 나란히 달리면서 마라톤이 주는 행복을 실컷 퍼 올려고 합니다. 많이 응원해 주십시오. 청취자 여러분들도 참 행복의 실체를 보시고 싶다면 당장 대전 마라톤 축제에 신청하시고 부부가 손을 잡고 달려 보십시오. 행복이라는 것, 정말 별것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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