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일 융푸라우 (2015년 1월 14일 수)
호텔 - 인터라켄 동역 - 융푸라우 - 밀라노
모두들 침대의 따듯함을 즐기고 있을 시각
한적한 시골길의 낡은 버스 정류장에서 인터라켄 동역으로 가는
노선버스를 기다린다.
손에 든 도시락이
빵 두 조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융푸라우의 근육질 몸매를 보듬을 수 있다는 설렘으로
새벽녘의 발걸음을 즐겁게 뗀다.
언제나 그렇듯이 새벽은 신선해서 좋다.
또한 고요해서 좋다.
시골역의 이른 아침 분위기는 언제나 고즉넉하고
무겁게 가라앉는다는 것을
50분 거리를 기차타고 다니던 학창시절부터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이렇게 짙고 두터운 고요의 끄트머리 어디쯤
융푸라우가
높은 산그리메로 솟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야릇한 흥분감이 휘돌아오면서
가녀린 전율을 느낀다.
눈 덮인 산자락을 돌아
기차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융푸라우는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온 산을 흰 눈으로 뒤덮은
아침은 젊은 스키어들의 환호성에 눌려 눈을 뜨고 있었다.
그리고 산자락을 휩쓸어 온 바람이 제법 심술을 부려대는 그린델발트역
몰아치는 눈보라.
유럽의 겨울은 싱그렇게 다가왔다.
융푸라우에 대한 기대감이었을까.
좁은 기차 안으로 밀려든 적막은
차창으로 가득 담기는 진한 설경에 모두들 말을 잃었기 때문일까.
인공적으로 뚫어낸 터널을 지나면서
실낱같은 두려움이 휘감아 오는 것을 느낀다.
아! 융푸라우!
눈보라로 인해 10여 미터 정도의 눈길이 열릴 뿐이고
융푸라우는 그의 속살을 흰 눈으로 꼭꼭 싸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아무리 두껍게 옷을 입어도
그 안에 감춰진 속살을 그려낼 수 있는 것처럼
융푸라우의 눈 덮인 봉우리를 나는 세밀하게 그려낼 수가 있는 것이다.
심안(心眼)이던가.
마음으로 보는 것이 진짜 아름다운 법이지 않은가.
만년설을 흠뻑 뒤집어 쓰고 있는
근육질의 산등성이들이 힘차게 솟아나고 있었다.
산을 보려면 산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나 산을 느끼려면 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융푸라우에 안겨 융푸라우의 숨결을 느낀다.
지리산 천왕봉이,
소백산 비로봉이,
덕유산 향적봉이 융푸라우이고,
융푸라우가 천왕봉이고, 비로봉이고,향적봉이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산은 모두 다 같은 산인 것이다.
젊었을 때부터 드나들었던 산길에서
내가 늘 만났던 산들이
그대로 융푸라우이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눈 덮인 봉우리가
그 동안 내가 돌아다닌 산이다.
융푸라우는 그렇게 나의 품으로 들어왔다.
옥룡설산에 올라 한 동안 숨을 못 쉴정도로 충격에 빠졌던 그러한 갈팡질팡한 마음이 아니라
조용히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는 편안한 마음이었다.
옥룡설산에서 거친 광풍이 몰아치는 광야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면
오늘 융푸라우에서 나는 새싹이 파릇하게 돋아나고 있는 시골길의 고요를 즐기고 있었다.
밀라노로 향하는 길을 따라
이어지는 눈덮인 설산을 바라보며
일천하고 알량한 나의 산행 족적을 들여다본다.
산은 산으로 들어선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모습이 되어갔으며
그만큼 내 마음 속은 비워져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산길을 따라 걸을 때
가지런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마음이 좋았고,
산꼭대기에 앉아 산 밖 세상을 내려다보며
숨을 고를 때
세상을 향한 욕망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어둠이 이미 차 안을 다 채우고 나서도 한참을 더 달려
이태리의 경제적 수도라는
밀라노 성당 앞에 섰다.
밀라노 최대의 명품관을 따라 스칼라극장 앞에까지 갔다가
다시 밀라노 성당 앞에서
우리는 제법 차가운 밤 바람을 맞았다.
인터라켄 숙소 앞 노선버스 정류장. 인터라켄 서역과 동역을 잇는 버스가 다니는 노선이다. 우리는 인터라켄 동역으로 간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 지도와 안내판
새벽의 고요가 쌓여 있는 인터라켄 동역. 승객이 거의 우리들 뿐이었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융푸라우역까지 가는 노선과 융푸라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인솔자 김소영님
기차를 탄다.
승차권. 왕복권인데 열차를 세번이나 갈아타는데(왕복까지 합하면 6번) 잘 보관해야 한다. 환승할 때마다 차표 검사를 한다. 어느 순간에는 검표를 하면서 초콜릿을 주기도 한다.
차창으로 바라보이는 풍경
클레인 쉐이데크역. 이곳에서 그린델발트쪽으로 올라온 승객들과 라우터버넨역쪽으로 올라온 승객들이 모두 같은 열차를 타고 융푸라우로 오르게 된다.
열차는 가운데 톱니바퀴를 하나씩 오르게 되어 있다.
융푸라우역에 내리면 만나는 안내판
얼음동굴.
융푸라우 역에 내리면 길은 모두 실내로 연결되는데 위와 같이 전망대에서 밖으로 나가서 알프스의 눈덮인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오늘 융푸라우는 눈을 뿌려 자신의 속살을 꼭꼭 싸매고 드러내지 않았다.
안내표지에 따라 한 바퀴 돌고 나면 기념품을 팔고 있는 휴게소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서 왜 우리는 컵라면을 먹어야 하는가. 컵라면에 뜨거운 물 한 컵 부어주고
4유로를 받는다. 컵라면은 얼마를 받는지도 알 수 없다. 10유로가 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컵라면을 가지고 가지 않았을 때는 인터라켄 동역에 있는 수퍼에서 미리 사가면 훨씬 싸다. 더 중요한 것은 먹지 않는 것이다.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하는데 눈으로 구경하고 즐겨야 할 시간에 컵라면이나 먹고 있어야 하는가 말이다. 이것은 마치 서울 구경가서 PC방이나 당구장에 가서 시간 다 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실내 통로에 설치해 놓은 조각과 그림
융푸라우 기찻길을 내던 공사 현장 사진
기차를 타고 하산하면서 바라본 창밖의 풍경.
하산하는 기차 안에서
차창 밖의 풍경
열차 안에 비치되어 있는 휴지통의 뚜껑에 그려져 있는 열차 노선도
이것이 점심식사인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먹었다. 역시 요리는 한식이 최고다.
점심식사를 한 식당에서 본 풍경
점심식사를 하고 어제 프랑스 벨포트에서 타고온 버스를 다시 만나 밀라노로 향한다.
밀라노로 가는 버스에서 본 시골 풍경
스위스와 이태리의 국경. 통행세를 받을 뿐 아무런 검사도 하지 않는다.
밀라노 명품관 건물의 유리 천장
명품관의 모습
스칼라 극장
밀라노 성당. 밀라노는 로마로 가기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잠자기 위해 들르는 곳이다.
밀라노 성당 내부
밀라노 홀리데이 인 호텔. 여행 일정 중 가장 좋은 호텔이었다. 와이파이가 한 시간에 3유로이다.
밀라노의 밤은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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