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서유럽 여행기

제 6 일 밀라노 - 피사 (2105년 1월 15일 목)

힘날세상 2015. 2. 2. 10:04

제 6 일 밀라노 - 피사 (2105년 1월 15일 목)

밀라노 - 피사 - 로마

 

 

버스는 오늘도 달린다.

차창으로 다가오는 낯선 풍경을 안아보는 것 또한

여행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의 하나인 것이 분명하기에

오랫동안 버스 타는 시간을 즐긴다.

불피이락(不避而樂)이라고 했던가.

여행은 열차나 버스 이동 시간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유럽 여행을 말했을 때

이동 시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가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배낭에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작가의 <홍도>라는 책을 넣어갔다.

오늘은 8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그 8시간 동안 나는 <홍도>와의 데이트를 한다.

4백년을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조선의 여인 홍도와

인연이 있어서 거듭 홍도 앞에 나타나는 자치기의 화신 동현

그리고 그들을 연결하는 정여립과 그가 꿈꾼 대동의 세상

작가는 창밖으로 눈을 돌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조금 과장한다면

나는 나 혼자만 존재하고 있었고,

사방이 차단된 동굴 같은 곳에 앉아 있었다.

홍도는 그런 몰입감으로 자신의 세상을 열어 보였다.

 

점심 때가 되어서야 도착한 피사는

작고 한적한 시골의 작은 도시였다.

피사가 작은 도시였기에

피사 성당의 기울어진 탑이 돋보이게 되었고

세상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당기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피사의 사탑이

연약한 지반으로 인해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피사의 사탑은 이렇게 놀라울 정도의 흡인력을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기울어진 사탑을 일으켜 세워보겠다고 두 손으로 밀어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넘어뜨리겠다고 발로 밀어보기도 하면서

세상 사람들은 피사의 사탑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서지 않고 기울어졌기에 말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평등하게 사는 대동의 세상을 꿈꾸던 정여립은

반역으로 몰린 상황에서

선조 임금 앞에 나아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고

몸을 숨겨 훗날을 도모하지도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여립에 대한 많은 자료를 모으고 현장을 답사하면서

정여립의 죽음에 대해 많은 의심만 하고 있던 나에게

김대현 작가의 홍도는 대단한 울림을 안겨 주었다.

정여립은 자신의 생각을 온 백성들이 마음 속으로 받아들여야 대동의 세상이 열린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죽여

자신의 사지가 조선 팔도에 내걸렸을 때

이 땅의 민초들이 자신의 분신들을 바라보며

' 저 사람이 임금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다 평등하다는 대동의 세상을 말했다는 거야'

'진짜 그런 세상이 있을까.'

'그런 세상이 오면 우리들도 무시당하거나 천대받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우리들도 양반들이 사는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모두가 갖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렇게 대동의 세상은 정여립 자신이 힘으로 여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 스스로 열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정여립은 판단했던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영원히 우리들 곁에서 살아 있고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죽었기 때문에 영원히 우리들의 대통령이 되어 있는 것처럼

정여립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피사의 사탑은 어쩌면 스스로 적당하게 기울어지지 않았을까.

자신이 기울어야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각인된다는 것을 피사의 사탑은 알고 있지 않았을까.

 

얼마 전에 사 놓고 아직 읽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낭에 넣어온 <홍도>는

피사에서 몇 백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스스로 생명을 불어 넣고

멀고 먼 유럽 땅에서

피사의 사탑이 되었고,

예수가 되었고,

정여립이 되었으며,

노무현이 되었다.

 

피사의 사탑을 마음에 안고

들어선 로마는

밤의 치마폭에 휩싸여

신비로운 모습으로 뒤돌아 앉아 있었다.

 

 

 

4 시간을 달려 도착한 피사 사탑 주차장. 점심 식사를 하러가는 길이다

 

배고프면 여행을 즐길 수 없기에 그럴 듯한 중국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긴장감을 불러 오기에 충분한 피사 성당과 사탑

 

주차장에서 피사 성당으로 가는 길의 기념품 가게

 

책에서만 보았던 피사의 사탑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하기도 하고

 

기울어 넘어지지 말 것을 바라며 바라보기도 한다.

 

사탑으로 들어가는 입구. 입장료를 내야 한다. 올라가고 싶었으나 패키지 여행의 단점인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꼭대기 부분을 줌으로 잡아 당겨 보았다.

 

 주된 건물인데도 바로 서 있기에 사람들의 눈길을 전혀 받지 못하는 피사의 성당.

 

저녁식사를 했던 금강산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