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일 파리 (2015년 1월 13일 화)
호텔 - 베르사이유 궁전 - 에펠탑 전망대 - 몽마르트 언덕 - TIR열차 - 인터라켄
아직
잠에서 덜 깬
파리를 내려놓으며
우리는 베르사이유로 간다.
점점 농도가 옅어지는 어둠은
차창에 부딪치며 가녀린 울음을 울더니
베르사이유 궁전까지 따라와
거센 바람을 일으킨다.
이 정도이면 심술이 아닐까.
루이 14세는
'짐은 곧 국가다'라고 말했던가.
그 독한 사람은
사냥을 즐기기 위해
이 넓은 궁전을 지었다.
건물도 그렇지만
건물 뒤로 이어지는 정원은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한 사람의 왕이 살기에는 너무 큰
호화로운 왕궁을 짓기 위해 몸을 바친 사람들은
무슨 말을 덧칠해 건물을 세웠을까.
크고 호화롭게 지었기에
오늘날 후손들이 몰려드는 구경꾼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 노동 착취가 아니라 선견지명이었을까.
왕의 침실에서 놀라고
거울의 방에서 창밖으로 정원을 바라보다가 놀라고
왕비의 방에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서둘러 궁전을 나서다가
아직도 위세를 걷지 않고 있는
베르사이유의 바람에 놀라고
놀란 마음으로 베르사이유를 떠난다.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사람들
호구(糊口)를 위해
짝퉁 가방을 팔고
손때 묻은 하찮은 기념품을 팔고 있는 그들은
그래서 불법체류도 서슴치 않는다는 그들은
베르사이유의 거센 바람을
아니 유럽의 찌는 듯한 더위를
무엇으로 이겨내고 있을까.
고향에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어떻게 억누르고 있을까.
조명이 꺼진
한낮의 에펠탑은
화려한 이야기도
반짝이는 시간도 다 잃어버린 채 영낙없는 흉물로 서 있었다.
시커먼 철골의 뭉치를 바라보며
나는 대학 연극반 시절 공연했던 영국 희곡작가 톰 존스의 '철부지들(The Fantasticks)'의
'루이자'가 남자 친구인 '마트'와 주고 받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루이자 : 없애버려 황금 달빛
내버려라 하늘을
밤엔 정말 멋있더니
낮에 보니 우습네.
마 트 : 집어치워 저녁 노을
싫증나는 호수도
밤엔 정말 멋있더니
낮에 보니 우습네.
- 밤엔 정말 멋있더니 낮에 보니 우스워.
그랬다.
한낮의 파리는 생명이 없다.
직선적이고
목표지향적이며
경쟁만이 넘실거리는 하나의 도시일 뿐이다.
파리는 밤에 빛난다.
파리에는 밤이 있어야 한다.
어느 도시나 밤에 빛난다.
어느 도시나 밤이 있어야 한다.
밤을 바라보는 감흥이 묽어지는 만큼
인생도 저물어가는 것이다.
몽마르뜨 언덕
사크레쾨르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에 앉아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8km를 걸어갔다는 순교자를 추모하며
소매치기가 많고
사기꾼이 많다는 파리를 내려다 본다.
저렇게 평화로운 도시
역사가 살아 있는 도시를
소매치기만을 내세우는 것인가.
몽마르드 언덕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도 많고
세느강가에서 농밀한 언어를 나누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도 많고
낮에는 활기차고
밤에는 화려하게 부활하는
파리의 진심을 왜 알아주지 못하는 것인가.
파리 동역에서
벨포드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차창으로 뒷걸음질치는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마을을 보며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한다.
남의 손에 쥐어진 떡이 커 보이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유럽의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땅이 좁은 우리나라는 오밀조밀 어깨를 겯고 사는 것이고
인구 대비 땅이 넓은 나라는 듬성듬성 집을 지을 것이 아닌가.
이것은 모두 낯섦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본다.
낯설기에 아름다워 보이고
낯설기에 무엇인가 있어보이는 것
그래서 여행은 즐거운 것이다.
어느날 순천에 갔는데
맥도날드 가게가 있는 것을 보고
'어? 순천에도 맥도날드가 있네. 참 신기하네'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참으로 놀란 적이 있다.
당연히 순천에도 맥도날드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런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 낯섦이야말로
여행의 참맛이 아닐까.
처음 보는 유럽은
온통 낯섦으로 가득하였다.
오후 3시가 넘어 열차를 타고 벨포드로 간다. 열차는 언제나 버스보다 편하고 좋다. 문득 자이에서 타이페이까지 타고 갔던 열차가 생각났다. 벨포드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간다.
파리의 아침
대단한 바람이 불었던 베르사이유 궁전
베르사유 궁전(Château de Versailles)은 프랑스의 베르사유에 있는 왕궁으로 원래는 왕이 사냥할 때 머무는 여름 별장이었으나 1682년 루이 14세가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1715년 루이 14세 사후, 뒤를 이은 루이 15세가 곧바로 파리로 옮겨갈 때까지 잠시동안 권력의 중심지였다. 바로크 건축의 대표작품으로, 호화로운 건물과 광대하고 아름다운 정원과 분수 그리고 거울으 방으로 유명하다. 거울의 방은 벽과 천장이 거울로 된 길이73m의 방으로 1차 대전을 마무리짓는 베르사이유 조약이 1919년 6월 28일에 이 방에서 체결되었다. .
- 한국어 위키 백과에서
베르사이유 궁전의 황금 대문. 아침 햇살을 받을 때는 정말 아름답다고 한다.
궁전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들
조각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화려한 장식이 돋보인다
천장화도 아름답다.
대형벽화는 물론이고
이런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궁전 내부에서 바라본 정원
시간이 없어서 밖의 정원은 가보지 못했다.
베르사이유 조약을 체결했다는 거울의 방 내부. 이곳에서 바라보는 정원이 아름다웠다.
왕의 침실
루브르 박물관에도 보았던 그림
그림에서 사람이 걸어나올 것 같다.
가운데 시계가 있는 곳 아치형 가운데 창문이 왕의 침실이고,그 뒤가 거울의 방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일부는 보수중이다.
궁전에서 파리로 돌아아다가 본 작은 집이 앙증맞다.
에펠탑 전망대에 있는 동상
파리 전망대에서 본 에펠탑. 낮에 보니 정말 흉물처럼 보인다.
김치찌개로 점심식사를 한다.
다시보는 콩코드 광장. 오벨리스크가 눈에 들어온다.
파리의 자전거 보관소
이제 슬슬 몽마르뜨로 올라간다. 뒤에 보이는 초록색이 몽마르뜨로 올라가는 언덕
몽마르드 언덕의 주인인 사크레쾨르 성당
길거리 화가들의 천국 테르트르 광장
몽마르트란 원래 순교자들의 시체를 쌓아 두었던 언덕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19세기 초까지는 풍차가 돌아 가는 시골 마을 이었으나 20세기에 점차 가난한 화가나 시인들, 외국인들이 싼 생활비 때문에 모여 살게되었다고 한다.
사크레쾨르 성당 뒤에 있는 작은 성당. 이 성당이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쟝이 은촛대를 훔친 곳이라고 한다.
분위기가 좋아서 한나절 정도 머무르고 싶었다.
몽마르뜨에서 바라보는 파리 시내. 왼쪽의 커플은 신혼여행온 신혼부부. 연출 사진을 찍고 있는 중이다.
저 아래 차 있는 곳에서 걸어서 올라와야 한다. 사진의 오른쪽에 에스컬레이터 같은 것도 있다.
사크레쾨르성당은 비잔틴 양식의 3개의 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은 언덕에 세워진 새하얀 건물이라 눈에 잘 들어온다. 18970년 보불전쟁 때 프랑스의 승리를 기원하는 신자들의 기부금으로 지어 졌으며 사크레쾨르란 성스런 마음, 즉 성심 이라는 뜻이다. 성당 정면에는 구스타프 미셸이 조각한 성심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양쪽에는 리뽀리트 르페브르가 조각한 쟌 다르크와 생루이의 동상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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