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일 파리(2015년 1월 12일 일)
개선문 - 루부르박물관 - 쁘랭땅백화점 - 노트르담 성당 - 에펠탑 - 세느강 유람선
어제밤
런던발 파리행 유로스타는
낭만이라기보다는
한적함만을 적재한 체
수평의 레일을 늘어뜨려
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늦은 밤 파리는
안개에 젖어 있었던가.
호텔로 이동하는 차창을 바라보다가
뜬금없게도
생떽쥐뻬리의 <야간비행>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파리의 밤은
안개에 젖었던 파리의 밤은
느릿한 걸음을 걸었던가
눅진한 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고서도
상당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아침을 맞았다.
파리의 아침
아니 아침의 파리는 살아 있었다.
팽팽한 힘으로 살아 있었다.
자동차의 물결이 완급을 달리하며 흐르고 있었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명한 목적을 가진 걸음걸이였다.
덴브라운의 <다빈치코드>를 통해서 들여다 봤던
루브르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내가 담고 있었던 루브르보다
너무 웅장한 울림이었고
거대한 외침이 있었던 까닭이다.
피라미드처럼 생긴 유리천장 아래서
느닷없이 댄브라운을 만났다.
아니 그가 생명을 불어 넣은 <로버트 랭던>을 만났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나는 미술을 전공했다는 가이드의 해설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
조각을 감상하는 방법
그림을 그리는 친구에게서 얻어 들은 내용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품 바깥의 공간을 보아야 한다고 친구는 말했었다.
그러면 너는 작품 바깥의 공간을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리느냐고 물었다.
사고 영역의 확장이라고 친구는 말했다.
루브르에서
루브르의 그림 앞에서
루부르의 조각 앞에서
나는 사고 영역을 확장해보려고 노력했다.
면면이 이어오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보았고
시대를 이어가는 인간의 정신을 보았다.
그리고
나를 봤다.
땅거미가 스멀스멀 기어나올 무렵
노트르담 성당 앞에 섰다.
정확하게 말하면 노트르담 성당을 올려다 보았다.
눈으로 올려다보고
마음으로 올려다 보았다.
종탑에 매달렸던 꼽추 <안소니퀸>도 보았던 것 같다.
100년의 세월을 쌓아
우리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노트르담 성당은
전주 한옥마을 입구에서
혼탁한 세상을 정화해보려는 듯 서 있는
전동성당이나 보아왔던 나를
그야말로 압도해왔다.
노트르담 성당이나
전주 전동 성당이나
신을 향한 인간들의 간절한 기원이고
인간들에게 평화와 구원을 내려주는 통로인 것은 분명하지만
오늘 노트르담 성당은
정저지와(井底之蛙)에 불과한 나를 제법 거창하게 억누르고 있었다.
파리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으며
더 화려하게 부활했다.
세찬 흐름으로
파리를 관통하는 세느강은
꽃보다 울긋불긋하게 단장을 하였고
그 불빛 사이로 시대를 거슬러 온
노트르담,
루부르궁전,
도르세 미술관이 솟아 올랐고
퐁네퓨 다리는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 연인들의 장소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세느강은
아니 세느강의 밤은 생명의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에펠탑의 금빛 웃음이
세느강을 적시고
에펠탑의 아름다운 그림자가
세느강에서 어두운 바람에 흩어지고 있었다.
파리 숙소 발라딘 호텔
숙소에서 바라본 아침 거리
숙소 앞의 중국 음식점
호텔의 아침 식사. 거의 매일 이렇게 아침 식사를 했다.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끝 12개의 방사상 대로의 중심부인 샤를 드 골 광장(1753~1970년에는 에투알 광장이라 했음)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전승기념 구조물인 파리 개선문
1806년 나폴레옹의 명으로 장 샬그랭과 장 아르망 레몽이 설계했고, 나폴레옹이 죽은 후인 1836년에야 완성되었다.
이 개선문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는데, 그 높이와 너비는 2배 크기이다. 프랑수아 뤼드가 전면에 조각으로 장식해놓은 '1792년 용사들의 출정'(일명 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이 유명하다. 개선문의 안쪽 벽에는 각 전투에 참가했던 600여 명의 장군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안의 자그마한 미술실에는 개선문의 역사를 말해주는 그림·사진·모형 들이 진열되어 있다.
전망대로 올라가면 앞으로는 콩코르드 광장·루브르 궁이 보이고, 뒤로는 라 데팡스가 보인다. 개선문의 바닥에는 무명용사묘가 설치되어 '영원한 불길'이 언제나 타오르고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인용
개선문에 새겨진 조각
개선문에 새겨진 조각
개선문에 새겨진 조각
개선문 앞 샤를 드 골 광장
개선문 앞 샤를 드 골 광장
상제리제 거리. 개선문에서 콩코드 광장으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멀리 관람차가 있는 곳이 콩코드 광장
콩코드 광장의 기마상
콩코드 광장.
1775년앙제 자끄 가브리엘에 의해 설계된 이 광장에는 원래 루이 15세의 기마상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루이 15세 광장”으로 불리었다. 이후 프랑스 혁명의 발발로 기마상은 철거되고, 이름도 “혁명 광장”으로 고쳐졌다. 1793년 1월 21일 프랑스 혁명 중에는 루이 16세가 이곳에서 처형되었고, 10월 16일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참수된 형장이기도 했다. 1795년 현재 “콩코드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시작했고, 공식 이름이 된 것은 1980년이다. 콩코드(Concorde)는 화합, 일치라는 뜻으로, 이 광장의 이름은 이러한 어두운 역사를 넘어 평화화 화합으로 나가자는 프랑스의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한다.
광장의 중심에는이집트 룩소르 신전 에서 가져온 룩소르(Luxor) 오벨리스크(클레오파트라의 바늘)가 놓여 있다. 기원전 126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이집트 테베(Thebes, 현재의 룩소르)의 람세스 신전에 있던 것으로 1829년 이집트의 총독이자 군사령관이던 알바니아 출신의 무함마드 알리가 프랑스에 선물하였다. 오벨리스크에는 프랑스로의 운송 과정이 묘사되어 있으며, 4년의 운송 기간이 걸렸다. 최상단 부분에 소형 피라미드 모습의 금박이 있었으나 아시리아인의 침입과 페르시아인의 점령 과정에서 분실되었는데, 프랑스 정부에서 복원 작업을 벌여 1998년 5월 14일복원이 완료되었다. 복원 자금에는 약 1백 50만 프랑이 소요되었으며, 수명은 약 40년이다. 복원으로 인해 오벨리스크의 높이는 이전보다 2m 가량 높아지게 되었다.
- 위키 백과사전에서 인용
거리에서 보이는 루부르박물관
루브르박물관
프랑스의 국립박물관 겸 미술관.
파리에 있으며, 원래는 12세기에 필리프 2세가 지은 궁전이었다. 1546년 프랑수아 1세가 그 터에 루브르 궁전을 지었고, 그뒤 수세기에 걸쳐 많은 증축과 개조가 이루어졌다. 1793년 혁명정부가 국립중앙미술관을 설치·공개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강을 따라 뻗은 남쪽 화랑과 4각형 안마당을 둘러싼 궁전의 4면을 차지하고 있다. 1980년대에 예술품 전시를 위한 공간 확보를 위해 대대적인 개축작업을 했다. 각종 편의 시설을 위한 지하단지가 조성되면서 그 단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미국 건축가 I.M. 페이가 설계한 유리 피라미드가 자리잡았다.
루브르는 BC 7세기부터 19세기 중엽까지의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사모트라케의 승리>·<밀로의 비너스>·<모나리자> 등이 있다.
파리에 있는 12세기 존엄왕 필리프 요새지(要塞地) 오른쪽 기슭에 지어진 커다란 궁전의 일부이다. 1546년 예술품 수집가 프랑수아 1세가 이 낡은 성곽을 부수고 그 터에 새로운 왕궁인 루브르 궁전을 짓기 시작했으며 뒤이어 거의 모든 왕들이 증축해왔다. 오늘날의 루브르 중 일부는 프랑수아 1세 때 건축가피에르 레스코 의 감독하에 완성되었는데, 이것이 현재의 카레 궁 남서쪽 부분이며, 대부분의 루브르 건축시설은 그뒤 17세기 루이 13, 14세 때 추가 조성된 것이다. 루이 13세 때 리슐리외 추기경이 왕을 위해 뛰어난 예술작품들을 수집했고, 루이 14세와 그의 대신 마자랭 추기경은 영국 찰스 1세의 소장품을 포함한 훌륭한 예술품들을 수집했다. 건축가 클로드 페로와 루이 르 보, 실내장식가이며 화가인 샤를 르 브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루브르 왕궁 중 콜로나드[柱廊] 부분을 설계했다. 1682년 루브르는 루이 14세가 베르사유로 왕실을 옮김에 따라 폐궁(廢宮)되고, 18세기 들어서 이곳을 공공박물관으로 쓰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당지비에 백작이 대전시장의 건축과 설계를 지원하고 중요한 예술작품들을 계속해서 모아들였다. 1793년 혁명정부가 대전시장에 국립중앙미술관을 설치·공개했다. 나폴레옹 통치하에서는 카레 궁과 리볼리 가(街)를 끼고 북쪽 파빌리온에 잇댄 건물들이 지어지기 시작하면서 19세기에 서쪽으로 뻗은 전시장들과 파빌리온들을 거느린 2개의 주요 윙(wing:건물의 옆으로 뻗은 부분)이 완성되고 후에 나폴레옹 3세가 그것들을 전시장으로 개관시켰다. 완성된 루브르는 2개의 4각형 본관과 그것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2개의 커다란 정원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물 복합체이다. 1980년대에 들어 루브르는 방문객들의 접근과 편의에 더욱 이바지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축작업을 개시했다. 이로써 강당, 관광버스 주차장, 식당, 사무실, 상점, 전람실, 창고, 주차장 등을 수용한 거대한 지하단지가 나폴레옹 궁과 카루젤 궁의 중앙 정원 밑으로 조성되었다. 이 단지로 들어서는 지면 높이의 입구는 나폴레옹 궁 중심에 있으며, 그 위쪽에 미국 건축가 I.M. 페이가 디자인한 강철과 유리로 된 피라미드가 자리잡고 있다. 1989년 부대시설과 대중오락시설을 갖춘 지하단지가 문을 열었다.
루브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그림을 소장한 미술관 중의 하나이며, 이들 작품은 인상파에 이르기까지 유럽 모든 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여기에 소장된 15~19세기 프랑스 그림들은 세계 최고이며, 또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가, 바로크 시대 플랑드파, 네덜란드 화가들의 걸작도 소장되어 있다.
중세·르네상스·현대 예술품 전시장에는 프랑스 왕들의 보물(청동제품·세밀화·도자기·태피스트리·장신구·가구) 등이, 그리스·로마 고대미술품(에트루리아 예술품 포함)에는 건축물·조각품·모자이크·청동제품·장신구·도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집트 고대예술품 전시장은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당시 가져온 수집품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기 위해 1826년에 세워졌다. 동방 고대예술품 전시장은 메소포타미아 예술품을 소장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1954년 그리스도교 고대예술품부가 설치되어 상아제품·유리·도자기·직물·금제품 및 그리스와 러시아의 성상을 포함하여 초기 그리스도교와 비잔틴, 콥트 예술작품들이 분류·배치되었다.
루부르박물관은 전체적으로 ㄷ자 형태의 건물이다.
소설 다빈치코드에도 나오는 유리 피라미드. 루브르로 들어가는 문이다.
자세히 보면 남녀의 신체구조를 모두 가지고 있다.
책에서 보았던 조각상들과
천장에 그려진 그림들을 바라보며
박물관을 돌아다닌다
미술을 전공하신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해 주었는데... 조각을 감상할 때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한다. 손과 목 부분이 훼손되었지만 조각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탕으로 없어진 부분을 채워서 감상해야 한다고 한다.
밀로의 비너스.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오른편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는 신체로 보아 왼손으로 나무를 감싸고 있거나 어린아이를 동반하고 있을 수도 있고, 조각의 일부일 수도 있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그린 작품이라는데 다음날 베르사이유 궁전에서도 똑같은 작품을 보았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 방탄 특수 유리로 가려져 있다. 뒤에 보이는 배경이 서로 다른 곳이라고 한다. 인물을 먼저 그리고 나중에 배경은 작품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그려 넣는다고 한다.
제리코, 메뒤즈호의 뗏목(1818 - 19) 조난을 당했닥 구조선을 보고 환호하고 있는 사람들과 죽거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대조적으로 그리고 있다.
파리의 구시가지의 건물들은 모두 이런 모습이다. 7층 이상을 건축하지 못하게 막고 있어서 새로 짓는 건물들도 옛날의 모습대로 건축하기 때문이다.
원조 물랑루즈. 80년대 극장식 술집의 대표주자였던 물랑루즈도 여기에서 이름을 가져온 것이다. 지금도 술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물랑루즈의 무희들의 사진
달팽이 요리를 먹은 식당. 한국 관광객들은 모두 이곳으로 오는 모양이다.
이것이 말로만 들었던 달팽이 요리 에스까르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은 달팽이가 아니라 작은 소라만한 식용 달팽이에 마늘, 파슬리, 소금 버터 등을 넣어 구은 것으로 식사라기보다 에피타이저이다. 먹을 때에는 식당에서 제공하는 집게와 포크를 이용하여 살을 꺼내 먹는다. 이것을 먹고 나면 메인 요리인 스테이크 비슷한 소고기 구은 것과 감자를 준다.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이나 커피가 나온다.
식사후 들렀던 쁘랭땅백화점. 4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백화점이다. 백화점을 돌아다니다가 밖으로 나와 백화점 건물 사이에 있는 골목과 주변을 돌아다녔다. 세로 간판에 쁘랭땅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백화점 주변의 건물.
한국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한글로 된 안내와 한국인 직원들이 많았다. 여기에서 물건을 사면 12%의 면세 혜택이 주어지는데 일단 전액을 지불하고 나서 받은 영수증에 유로연합을 떠나는 최종 공항에서 도장을 받아 그 옆에 있는 우체통에 넣으면 몇 달 후에 카드와 연계된 통장으로 입금이 된다고 한다.
노트르담 성당으로 가는 길.
이 다리를 건너면 노트르담 성당이다.
느트르담 성당
중세 고딕 양식의 대성당 가운데 가장 유명한 대성당.
그 규모와 오랜 역사로 유명하며, 고고학과 건축학적 관심의 대상이다. 파리 센 강에 떠 있는 시테 섬에 있다. 파리 주교 모리스 드 쉴리가 이전에 있던 2개의 바실리카식 교회당을 합쳐 하나의 큰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웠고, 1163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머릿돌을 놓고 1189년 대제단이 봉헌되었다. 서쪽 앞면의 성가대석과 네이브[身廊]는 1240년 완공되었고 그뒤 100여 년에 걸쳐 포치(porch), 예배당, 그밖의 여러 장식물들을 지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수세기를 지나면서 흠집이 생기고 약해졌으며 18세기 프랑스 혁명 때 크게 파손되어, 19세기에 서쪽 정면 '그랜드 갤러리'의 28개 조상과 3개 출입문 측벽에 서 있는 조상 등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 트랜셉트[翼廊]와 네이브 사이에 높이 솟은 첨탑은 19세기에 복원된 것이다.
전체 길이 130m, 폭 48m, 천장 높이 35m, 탑 높이 69m의 대건축물로 탑 위에 뾰족탑을 덧붙이기로 되어 있었으나 아직 그대로이다. 4각형 쌍탑과 쌍탑의 선을 따라 정면을 3부분으로 나눈 버팀벽의 수직선과, '그랜드 갤러리'의 수평선이 '장미창'(薔薇窓)을 중심으로 비할 데 없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면에 3개 입구와 그 입구의 이름과 관련지어 만든 조각, 그 위에 유대 왕과 관련있는 조각이 들어서 있는 갤러리, 직경 10m에 가까운 장미창, 그 위에 긴 열주(列柱), 좌우의 탑 등 양식은 고딕 건축의 전형으로 성당 건축의 규준이 되었다. 내부는 아일[側廊]이 2층으로 되어 있고 네이브는 거대한 원주가 끝에서 3개의 기둥으로 나뉘면서 천장으로 뻗어 있어 전체적으로 밝고 높은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장엄한 종교적 공간을 연출하는 스테인드 글라스는 북쪽 정면의 장미창을 제외하고는 후세의 작품이다. 오른쪽 출입구의 〈성모자 聖母子〉(1165~70경), 왼쪽 출입구의 〈성모대관 聖母戴冠〉(1210~20경), 중앙 출입구의 〈최후의 심판〉(1220~30경), 북쪽의 〈붉은 입구〉, 내진(內陣) 주위를 장식한 진한 색깔의 〈그리스도전(傳)〉(14세기)이 유명하다. 이 성당은 나폴레옹의 대관식(1804), 파리 해방을 감사하는 국민예배(1944. 8. 26) 등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 〈노트르담의 꼽추〉의 무대이기도 했다.
옆모습
전면부에 출입문이 세 개가 있다.
종탐을 올려다 보다가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열연한 안소니퀸이 생각났다.
정문에 새겨진 조각들
성당 안에는 성당의 모습을 나무로 만들어 놓은 것도 있다.
성당 측면에 보이는 커다란 원형 창문. 지름이 18미터라고 한다.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예쁘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순교를 당하는 순간 자기 목을 안고 8km를 걸어 갔다는 수도사의 모습도 조각되어 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여 저녁식사를 하러 간다. 시내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저녁으로 순두부를 먹었는데 거의 한국에서 먹는 맛이었다.
에펠탑에 올라가 바라다본 시내의 야경
에펠탑에서 내려오자 조명 쇼를 하고 있었다. 낮에는 흉물처럼 보이는데 바메는 이렇게 아름답게 보인다.
대학시절 공연했던 영국 출신 희곡 작가 톰존스의 희곡 '철부지들'의 남주인공 마트에게 실증을 느낀 여주인공 루이자가 하는 대사가 생각났다.
" 밤엔 정말 멋있더니 낮에 보니 우스워."
에펠탑을 내려와 유람선을 타러 갔다. 이곳이 유람선 선착장이다. 에필탑과 유람선은 선택관강으로 1인당 50유로이다.
한글로 된 유람선 코스 안내도도 나눠 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간다는 의미이다.
세느강을 따라 가며 이런 야경을 바라보게 된다.
에펠탑의 야경을 보는 것을 끝으로 유람선에서 하산하게 된다.
10시가 다 되어 호텔로 돌아온다. 시차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여 피곤하지만 그래도 내일의 여정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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