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斷想)

견딜 수 없는 무거움

힘날세상 2013. 10. 23. 14:16

견딜 수 없는 무거움

 

 

어느 때부터 마음이 무겁다. 무엇인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무게로 압박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좀 어두운 마음을 갖게 하고, 내 삶의 흐름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며, 세상을 향해 주먹질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해보기도 하지만 그 무거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드리가,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은 생각도 않고 있었던 드리가 결혼을 하겠다고 박서방을 데리고 왔을 때, 글이가 자습서와 문제집을 집필하는 일을 한다고 할 때, 힘겹게 살아온 삶을 아내와 같이 돌아보며 좀 즐거운 미래를 그려볼 때는 그 무거운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붉게 물든 산자락을 걸으며 산의 일부가 되어 있을 때 나는 나의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새벽녘에 잠에서 깨었을 때 불현 듯 나를 누르고 있는 그 알 수 없는 무거움을 다시 보게 된다. 잠을 잘 때처럼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에도 그 묵직한 것이 짓누르고 있는 것을 보면 근원을 알 수 없는 그 무거움은 내 마음의 심층부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단양 도담삼봉에서 찍은 당신들의 유일한 여행 사진을 봤을 때 그 무거움은 거의 숨을 못 쉴 정도로 나를 짓눌러 왔다. 단 한 번도 두 분과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마음을 옥죄는 죄책감까지 살아나 그 무거움의 고통을 견뎌내는데 여간 힘들었던 것이 아니다. 목소리를 놓아 울음을 울어도,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자학의 몸부림을 쳐봐도 그 무거움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참 오랫동안 이 무거움과 맞서게 되면서 스스로 체득한 것은 육신을 극심한 고통 속으로 몰아 넣을 때 그 무거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일시적이라는 것도 금방 깨닫게 되었다.

 

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움의 실체를 떨구어 버리지 못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삶의 시간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 무거움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때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다. 무거움에 짓눌려 있는 내 마음의 한 쪽에는 하늘로 날아올 것같이 기쁘고 즐거운 가벼움도 공존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 둘이 내 마음을 무겁게도 하고 가볍게도 하였던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내 마음에 무거움만이 짓누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사람은 무거움에 짓눌렸을 때의 아픔이 즐거움이 가져다 주는 가벼움보다 오랫동안 각인되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온통 무거움에 짓눌려 있을 때 무조건 좌절하고 실의에 빠져 있지만은 않았었다. 그 무거움의 실체를 들여다 보려고심혈을 기울였고, 그것을 떨쳐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가. 또한 무거움에 짓눌려 있을 때 조신하게 행동했고, 판단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고심하지 않았던가.

 

나를 짓누르는 무거움은 나도 모르게 나를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파르게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오르고 나면 발 아래 펼쳐지는 최고의 풍광을 누릴 수 있듯이 마음을 짓눌렀던 무거움을 통하여 내가 걸어가는 삶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불피이락(不避而樂)’이라는 말이 있다. 그 무거움을 떨쳐 버릴 수 없다면 그 무거움을 받아들이자.

 

 

2013. 10.23  힘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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