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14구간 돗재 - 예재 산행기 |
1. 일시 : 2008년 3월 16일(일)
2. 동행 : 아내
3. 날씨 : 맑음
4. 거리 : 25.21Km 도상거리23.5Km
5. 시간 : 9시간 35분(07:00 - 16:35)
돗재(07:00) - 413봉(07:15) - 463봉(07:32) - 태악산(530m 08:05) - 470봉(08:15) - 468봉(바위전망대 08:30) - 노인봉(529.9m 08:50) - 성재봉(519봉 09:10) - 429봉(09:35) - 말머리재(09:45) - 468봉(10:20 간식 10분) - 촛대봉(522.4m 10:53) - 두봉산(631m 11:40) - 604봉(11:55) - 535봉(12:15) - 나주나씨 묘지(12:23) - 468.6봉(12:35) - 개기재(58번 2차선 도로 12:50) - 의령남씨 묘역(12:55) - 509봉(13:30) - 헬기장(13:55) - 계당산(580.2m 14:03 점심 14:40 출발) - 583봉( 15:00) - 564봉(15:05) - 524봉(15:15) - 376봉(15:35) - 346봉(삼나무숲 16:15) - 헬기장(16:30) - 임도(16:31) - 예재(구 29번 도로 16:35)
6. 특기사항
1) 용암산(544.7m) 갈림길
성재봉에서 용암산의 모습을 보면서 내리막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삼거리가 나타난다. 용암산 방향으로 직진하는 길이 뚜렷하여 무심코 진행할 우려가 있는 곳이다. 정맥은 이곳에서 90도 좌측으로 방향을 돌려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물론 이 갈림길에 선답자들의 리본이 많이 달려 있기 때문에 조금만 주의를 하면 길을 잘못들 염려는 없다. 그러나 리본이 약간 아래쪽에 달려 있으므로 눈여겨 살펴야 한다.
2) 개기재
3) 예재
예재 터널로 인하여 폐기된 구 29번 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차량통행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적한 곳이다. 택시 기사의 말에 의하면 예재에서 산행을 시작할 경우 도착지점에 차를 주차하고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4) 차량회수
이양택시 061 - 372 - 3100, 011 - 611 - 6002 전화 후 약 10 분정도 기다리니 택시가 올라온다. 돗재까지는 미터기로 30,400원이 나오는데 기사님이 2만 8천원만 받는다.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7. 산행 지도
8. 산행을 하면서
1. 낙엽
돗재에서 예재까지 이어지는 산행길 내내 낙엽이 발목을 덮어온다. 밟아간 발길이 적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산속의 고요를 쪼갤 정도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을 더듬어보면 산성비가 많이 내려 낙엽이 썩지를 않는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낙엽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떨어진다. 떠나가야 할 때를 아는 것이다.
떠나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이형기 ‘낙화(落花)’에서
굳이 이형기 시인의 시를 떠올리지 않아도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진리인 것이다. 낙엽은 죽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떠나온 나뭇가지 안에 새 생명의 싹을 다독여 놓고, 다만 자리를 내어줄 뿐이다. 그리하여 다사로운 봄 햇살을 머금어 연록의 이파리를 피우고, 새색시 볼마냥 고운 한 떨기 꽃을 피우고, 한 여름을 활보하게 하는 것인 아닌가. 그것이 자연의 진리인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움켜쥐고 몸부림하는 추악한 인간들의 모습에 얼마나 실망하는가.
조병화 시인은 가진 모든 것을 나뭇가지에 내려놓고 새로운 세계, 미지의 세계의 삶을 꿈꾸어 가야 한다고 노래한다. 시를 읽을 때마다 자신이 늘 부끄러워지는 것인 우리 가슴 속에 지나친 욕심이 아직도 남아 있는 탓일 것이다.
낙엽에 누워 산다. / 낙엽끼리 모여 산다. /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 낙엽끼리 모여 산다. / 낙엽에 누워 산다. /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 조병화, ‘낙엽끼리 모여 산다’
2. 마라톤과 산행
성재봉을 내려서다가 느닷없이 마라톤을 생각한다. 풀코스를 달리는 고통을 생각하다가 문득 마라톤을 시(詩)에 비유해본다. 그렇다면 산행은 수필이다. 마라톤은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출발할 때부터 피니쉬라인을 통과할 때까지 수없이 자신을 제어하며 달린다. 처음 5km 지점에서 목표했던 시간을 확인하고 달리는 속도를 조절하기도 하고, 또 옆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나 호흡 소리 등을 감안하여 옆 사람을 의식한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 또한 결승선을 밟았을 때 온 몸의 체력이 완전히 소진되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달려야 한다. 그래서 마라톤은 여유가 없다. 시가 자신의 생각을 짜여진 의도대로 표현해야 하는 것처럼,
그러나 산행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써나가는 한 편의 수필과 같다. 산행을 시작할 때 산행을 마칠 시각을 생각하고 산에 들어서지는 않는다. 봉우리를 오르다가 급한 비알 앞에서 주저앉아 힘을 모으기도 하고, 산꼭대기에서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조망에 눈이 팔려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가.
산행은 여유로워서 좋다. 발걸음이 옮겨지는 대로 걸으면 되고, 떠오르는 느낌을 따라 걸으면 되는 것이 영락없는 수필과 흡사하다.
3. 바람
나뭇가지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바람은 이제 차가움을 더 이상 품고 있지 못하다. 그래도 한 자락 심술을 부리며 나뭇가지를 후려대고 있지만, 어디 바람이 알기나 할 건가. 나뭇가지가 자신을 타고 앉아 즐기고 있다는 것을, 흔들리는 나뭇가지 속에 봄날의 향기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을.
계당산 꼭대기 부분은 온통 철쭉 군락지였다. 빽빽하게 우거진 가지를 뻗어 좁게 이어지는 산행로까지 차지해버린 철쭉은 자신들의 품으로 달려든 달콤한 바람을 즐기고 있다. 사방에서 몰려온 바람줄기를 모아 이제 붉은 웃음을 웃으리라. 그 붉은 웃음이 계당산을 휘덮어버리는 날쯤 바람은 코끝을 간질이는 애교를 부리리라. 그리고 우리는 눈의 호사(豪奢)를 누리리라.
4. 사람
호남정맥을 걸으며 참으로 그리운 것이 사람이었다. 2007년 3월 1일 영취산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 예재까지 걸으며 정맥에서 사람을 만난 것은 거의 없었다. 오봉산, 내장산, 추월산, 강천산, 무등산 구간에서 더러 만나기는 하였지만, 정맥을 걷는 사람을 만난 것은 흔치 않았다.
모래재에서 전주의 아중역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걸으려다가 호남정맥을 시작하려는 부부 산꾼을 모래재에서 만나 슬치까지 동행하면서 밟아가기 시작한 정맥길. 그렇게 시작한 정맥길은 정말 고즈넉했다. 10시간 이상을 걸으면서도 사람 소리도 듣지 못했던 일이 다반수였지 않은가. 늘 내 앞에서 걸었던 아내와도 아무 말없이 걸었던 시간이 얼마였던가. 태백의 어느 산꾼이 달아놓은 리본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이지 정맥길은 ‘외로운 종주’길이었다.
그러나 아주 소중한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첫날 슬치까지 동행한 인연으로 덕유산 종주를 같이하였고,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는 조용준님, 슬치까지 걷는 중간에 만난 인연으로 다음날 불재까지 차를 몰고 가서 전주고속버스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리자 비빔밥을 기어이 사주신 대구의 부부산객님, 마이산 직전 옥산동 고개에서 만난 전주제일산악회 나무께님, 단풍이 절정이던 때 천치재에서 추령삼거리까지, 추령삼거리에서 감상굴재 신화회관까지 승용차를 태워 주셨던 두 분, 천치재에 주차 해놓은 자동차가 배터리가 방전되어 발을 구르고 있을 때, 달리던 트럭을 세우고 배터리를 연결하여 시동을 걸어주신 경상도에서 오신 기사님.
오늘 성재봉을 지나 개기재로 향하고 있을 무렵, 개기재에서 돗재까지 산행한다던 구미에서 오신 10여명의 산님들을 만났다. 어느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바람만 휑하고 부는 정맥에도 어떤 모습으로든지 사람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었다.
5. 점심
계당산에서 점심을 먹는다. 개기재에서부터 느껴온 시장기를 참아가며 자리를 고르다가 계당산까지 올라와 버렸다. 지금까지 산행을 하면서 점심이나 간식, 심지어 다리쉼까지도 꼭대기를 고집하였다. 눈의 즐거움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산꼭대기에서 먹는 점심의 아름다움. 김치와 오이와 멸치볶음 등 되는 대로 넣고 둘둘 말은 김밥과 과일이 전부지만, 산해진미(山海珍味)는 꼭 차려진 밥상만 보고 일컫지는 것이 아니리라. 마음에 평정을 가져오고 비옥(肥沃)한 시간으로 이끌어 줄 수 있다면 비록 얄팍한 차림일지라도 풍성한 반상(飯床)인 것을.
산에서의 점심은 언제나 호화로웠다. 속리산을 한 눈에 내려다보는 바위 전망대에 펼친 밥상, 지리산 주능선을 한 눈에 담아버린 삼신봉의 점심, 호남 들녘의 황금물결에 노랗게 젖어버렸던 입암산 꼭대기와 눈보라 속에서 펼쳐 놓았던 남덕유산 서봉의 점심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6. 하산
허전함을 안고 내려선 예재. 황혼에 물든 저녁바람이 휑하니 불어간다. 포크레인이 돌을 깨고 있었으나 인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산을 나설 때마다 또 다른 산행을 생각하는 심사는 뭘까.
2008.03.18 힘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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