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대만 여행기

제 7 일(2013. 02. 18 월요일) 아리산

힘날세상 2013. 3. 7. 13:08

제 7 일(2013. 02. 18 월요일) 아리산

 

  어제 체크인할 때 우리가 예약한 택시 기사가 오늘 아침 9시 30분에 숙소로 온다고 했었기에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느긋하게 즐긴다. 아침에 일어나서 시간이 있어 숙소 옆에 있는 명담 중학교에 가 봤다. 등교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힘이 없어 보인다. 중국과 같이 대만도 학생들의 교복이 트레이닝복이다. 등교하는 학생에게 힘좀 내라고 "加油(우리의 파이팅! 정도 되는 말)"했더니 '짜증나는데 이 아저씨가 왜 이래!'하는 표정이다. 어느 나라나 학생들은 학교 가는 일이 힘든가 보다.  

  선생님 두 분이 학생들 몇 명과 같이 운동장 청소를 하고 있다. 학교의 규모가 크지 않아 학생들도 많지않은 듯하다. 운동장으로 들어가 학교를 둘러보는데 우리나라의 시골 초등학교와 다를 바가 없다. 교실을 들여다 보려고 갔더니 선생님이 누구냐고 한다. 한국에서 관광 온 고등학교 교사라고 말하고 교실을 좀 보려고 한다고 서투른 중국어로 자신없이 말했는데 알아들었는지(대개 내가 중국어로 말하면 중국 사람들은 나의 부정확한 발음으로 인해 못 알아듣는다. 물론 나도 그들이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고 대충 알아 듣는 정도다,)  수업 중(現在 上課)이라고 하면서 손을 흔든다.

  돌아서서 학교를 나와 숙소로 가서 아침 식사를 한다.   식사는 토스트와 만두, 그리고 따끈한 두유가 전부다. 그래도 맛나게 먹는다. 방으로 가서 짐을 싸가지고 내려오니 택시가 기다리고 있다. 2일 동안 7,000원(우리 돈 28만원)에 예약한 택시다.

 

南投顯에서 세운 명담 중학교

 

'학교의 안전을 위해 함부로 야영하거나 전기를 쓰지 말라. 위반하면 의법 조치를 한다' 뭐 이런 내용이 아닐까? 중국어로 '接電'은 '전보를 받다'는 뜻인데 아무래도 그런 의미는 아닌 것 같다. 대만어는 중국어와 다른 단어가 많으니까..  문제는 이게 정확한 의미인지 나도 모른다는.... 

 

학교의 자전거 보관소. 자전거를 타고 오는 학생은 없었다.

 

이 둑이 일제가 르웨탄에 더 많은 양의 물을 담기 위해 쌓은 둑이라고 한다.

 

아리산으로 가다가 르웨탄 호수에 차를 세우고 기사가 자신의 카메라를 꺼내 우리에게 카드를 달라고 하더니 촬영을 해준다. 캐넌 카메라에 18 - 200 미리 렌즈를 달고 있어서 사진에 기대를 했는데 나중에 보니 사진 실력은 기대 이하이다. 여기에 포스팅한 사진은 대부분 우리가 찍은 것이다.

 

아리산으로 가는 도중에 들른 수리(水里)

 

나름 경치가 좋은 곳으로 돌아다니며 설명을 해 준다. 드리가 통역을 해줘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집 기차역. 여기에 오기 전에 기사가 녹음이 우거진 도로로 데리고 가서 말해 줬는데 일본 사람들이 대만에 들어와 아리산의 나무를 베어다가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그 때 미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도로가에 나무를 심어 자신들의 트럭 행열이 보이지 않게 했는데, 한 집 당 세 그루의 나무를 산에서 캐다가 옯겨 심게 했다고 한다. 일제는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대만에서도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자신들의 욕심을 채웠다는 것이다. 그 때 심어 놓은 나무가 지금은 터널을 이룰 정도로 크게 자랐다는 것이고, 이렇게 하나의 관광자원이 되었다고 한다. 도로 옆으로는 기찻길이 있고, 지금도 기차가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기사는 일부러 이곳으로 와서 이 집집 기차역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70년대 우리나라 시골 역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기차 통학을 하던 학창시절이 떠올라 잠시 추억에 잠겼는데 아이들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고 한다. 하기야 이런 모습을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것일 것이다.

 

집집 기차역에 있는 화차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

수리라는 마을에서 여기저기 동네 구석구석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을 시켜 주기에 일반 관광객들이 전혀 가지 않는 시골 마을 구경을 잘 했다. 그리고 우리는 기사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그게 점심 시간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아리산까지 가는 동안 마땅히 점심을 먹을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식당은 거위 요리를 하는 집이다. 르웨탄 일대에서는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집이라고 한다.

 

식당 입구에 전시된 음식 재료들

 

여러 생선들과 함께 개구리도 진열되어 있다.

 

국수의 양이 놀랍다. 중국 음식과 마찬가지로 대만 음식도 면 + 고기 + 채소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영양을 고려하여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기와 채소의 맛이 어울어져 맛이 참 좋았다. 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중국이나 대만에 가면 식도락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식당에서는 꼭 면, 밥, 탕을 같이 취급한다. 예를 들면 새우완자를 넣은 면, 밥, 탕 이렇게 세 가지 메뉴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다시 먹고 싶다.

 

바지락탕. 기사는 국물이 좋으니 다 마시라고 하는데 국물이 약간 비릿하고 짠맛이 강해 마시지 못하였다. 거위고기를 찍은 사진은 어디로 날아가버렸다. 거위 고기를 삶아서 뼈를 발라서 준다. 담백하고 맛이 좋았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가 않았다. 점심 비용이 모두 480원이었다.

 

이런 시골도 음주운전을 하는 모양이다. 음주운전을 하면 최고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만원(한와 800만원)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음주 운전으로 중상을 입히면 6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사망사고는 1년 이상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어느 나라든지 음주 운전은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먹은 거위 고기. 상에 나올 때는 뼈를 발라서 먹기 좋게 나온다.

 

아리산으로 가다가 전망대에서 본 모습. 지난 여름의 태풍으로 다리가 무너져 다시 세웠다고 한다. 사진 오른쪽으로 약간 보이는 곳이 대만에서 가장 유면한 온천이라는 동보온천이다. 이 지역은 옥산과 아리산에서 흘러 내리는 물이 합해지는 곳이다.

 

전망대 옆 식당. 기사가 음식값이 비싸다고 손을 흔든다.

 

우리가 타고 다닌 도요타 7인승 택시. 기사가 자기는 대만에서 최고로 인기가 있는 유명한 기사라고 한다. 올해 11월까지 예약이 되어 있다며 자신의 스마트 폰에 저장된 일정을 보여 준다. 대만의 역사나 관광지 등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지금 대만 관광 안내 책자를 쓰고 있는데 지금까지 출판된 내용과는 전혀 색다른 책이 될 것이라며 출판되면 드리에게 한국어 번역권을 준다고 한다.

 

아리산으로 가는 도중에 대만 최고봉인 옥산(좌)을 배경으로 . 오른쪽의 뾰족한 봉우리는 옥산 동봉(東峰)이다.

옥산 등정은 사실 아주 쉽다. 차를 타고 등산로 입구까지 올라 온 다음 중간에 있는 산장에서 하루 자고 정상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지형을 보니 한계령에서 시작하여 중청 대피소에서 자고 대청봉에 오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다만 1년에 800명으로 입산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기사 말에 의하면 대만에는 3,000미터급 봉우리가 100개가 있는데 이를 모두 오르면 국가에서 증명서를 발행해 준다고 한다. 옥산 입산자는 등정 신청자 중에서 무작위로 뽑는다고 한다. 나중에 지도를 보면서 확인해봤는데 2,000미터 급 봉우리가 100개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사실 옥산을 보기 전에는 대만 옥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는데 가까이서 옥산을 보고나니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꼭대기에 눈이 없길래 물어보니 작년에 날씨가 좋아서 다 녹아버렸다고 한다. 보통의 경우에는 한 여름을 제외하면 눈으로 덮혀 있다고 한다. 작년에 올랐던 중국 운남성의 옥룡설산보다 매력이 없어 보였다.

 

옥산 등정로 바로 아래의 전망대. 이곳에서는 옥산은 반대편에 있어서 보이지 않고 아래 사진처럼 아리산이 바라보인다. 옥산 등산로 입구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오는 아들. 르웨탄에서 아리산으로 이어지는 이 도로는 폭이 좁고 굴곡이 심해 25인승 이하 소형버스만 통행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르웨탄에서 아리산으로 운행하는 버스도 소형버스이다.

아리산으로 가는 길은 지반이 약해서자꾸 무너지기 때문에 지금은 막아 놓았고, 이렇게 옥산 방향으로 돌아가는 길만 열어 놓았다고 한다. 중간에 이정표도 없었고, 오후 5시가 되면 통행을 금지시키고 차단기를 내려 차량의 출입을 막는다고 한다. 만약 렌트카를 이용했었더라면 길 찾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위 사진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리산 일대. 아리산은 우리나라 지리산 처럼 어느 특정 봉우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산군(山群)을 통칭한다고 한다.

 

부부 나무 앞에 세워 놓은 안내판.

 

부부 나무. 보기와는 달리 직접 보면 엄청 큰 나무인데 죽어 버렸다.

 

 

 

 

 

기사가 갑자기 이런 안내판 앞에 차를 세운다. 대만에서 두 번 째로 큰 나무를 보여 준다고 한다. 차에서 내려 사진도 찍고 하면서 보는데 아무리 봐도 큰 나무는 없다. 어리둥절하는 우리에게 안내판 뒤로 내려가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길이 있다. 100여 미터를 내려가보니 정말 큰 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녹산 신목(鹿山神木 직경 6미터) 나무가 얼마나 큰 지 보여 주기 위해서 셋이서 팔을 벌리고 찍은 사진. 정말 엄청 큰 나무였다. 지금까지 60여년을 살면서 이렇게 큰 나무는 본 적이 없었다. 기사 말에 의하면 이보다 1.5배 정도 더 큰 나무가 또 있다는 것이다.

 

나무의 중간 모습. 사진으로 보니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실제로 보면 그 크기에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아리산 지역에 들어가는 문. 입장료가 1인당 150원이다. 드리는 중국 학생증으로 50원 할인하여 100원이다. 이 문을 통과하여야 숙소에 갈 수 있고, 아리산 삼림 풍광구를 구경할 수 있으며, 다음날 일출열차도 이용할 수 있다.

 

숙소인 청산별관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였다. 숙소에서 아리산 삼림풍경구를 구경하라고 하며 지도를 펼치고 관람 코스를 알려 준다. 아내는 오는 도중 차멀미를 해서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숙소에서 한 시간 정도 쉬었는데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아리산역 앞에서 승합차를  타고 조금 가서 작은 기차역에서 내려 숲 속으로 들어간다. 아리산각호텔을 지나니 편백나무 숲이다. 오래된 나무는 기묘한 모양을 연출하며 우리의 눈길을 당기고 있다.

 

우리가 묵은 숙소 청산별관 가격표

 

청산별관

 

꽃이 피어있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대만 어린이

 

여기에서 버스를 내려 숲으로 들어간다.

 

죽은 나무가 산 사람의 걸음을 붙잡는다.

 

나무 줄기가 뱀 머리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사실 아리산 국가삼림풍광구는 이러한 거목들의 전시장이라고 보면 된다.

 

느닷없이 기린 한 마리가 목을 쳐들고 있다. 드리가 좋아하는 기린이다. 드리는 그대로 가져가고 싶다며 웃는다.

 

기어이 한 장 찍고만다.

 

참 오랜만에 드리의 손을 잡고 걷는다. 이제 29세인데 결혼할 생각을 안한다. 드리가 좋다는 녀석이 있기는 한데 내년까지는 학교 공부를 해야 하므로 안된다고 한다. 대학원이라는 것이 결혼하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달래고 있는데 이게 쉽게 먹혀 들지 않는다. 세상의 어떤 부모든 아이들이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이 최고의 바람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글이도 이제 27살이고 직장생활도 잘하고 있으니까 결혼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요즘 만나고 있는 처자가 있는 것 같은데 두 아이 모두 1-2년 내에 해치워버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일을 놓아버리고 연금을 받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목련이 피었다며 폰에 담는 글. 어떤 처녀가 같이 살지는 모르지만 요리를 잘하므로 평생 밥 걱정은 안하고 살 것이다.

 

ㅋ 입고 있는 다운자켓은 아동복 가게에서 제일 큰 것으로 샀다는 것. 당시만 해도 이렇게 밝은 색은 아동용 옷밖에 없었다.

 

구경을 하다가 만난 애진궁. 나중에 구경을 다하고 이곳에서 승합차를 타고 다시 아리산역으로 돌아간다.

 

편백나무 숲 속에서 만난 탑. 안에 불을 밝히게 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괴상한 나무들이 즐비하다. 이 계단을 오르면 나무 뿌리 사이를 통과하게 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고개숙인 국민들'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이번 설명절 동안 한 자리에 모인 가족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한시라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 수가 없을 정도로 중독증이 심해지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여행 중에 틈만 나면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폰 속에 담겨 있는 남친과 여친들과 밀어를 속삭이기 위함이리라. 그렇다면 나는 어쨌는가. 나 폰은 데이터를 쓰면 요금 폭탄을 맞게 되므로 일단 비행기 탑승모드로 돌려 놓았다. 그리고 숙소만 들어오면 와이파이를 이용하여 똑같이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숲 속에 있는 종교시설. 인간은 자신이 약하기 때문에 절대자에게 의지하게 된다. 무엇을 빌어서 자신의 꿈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오늘의 핵심 삼대목. 한 나무가 살다가 죽고, 다시 그 나무에서 새 싹이 터서 자라다 죽고,또 다시 싹이 터서 자라고 있는 나무이다. 영동 천태산 영국사의 은행나무도 다른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절대로 이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리산 국가 삼림 풍경구를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기사가 대기하고 있다. 이제 일몰과 운해를 구경하러 가야한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5분 정도 가니 길가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발 아래로 기가 막힌 구름 바다가 펼쳐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리산의 운해이다.

 

  아리산으로 오면서 기사가 아리산의 다섯 가지 명물이 있다고 하면서 우리가 운이 좋으면 다섯 가지를 다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다섯 가지는 1. 일몰  2. 운해  3. 나무  4. 나무   5. 기차 라고 한다. 그러면서 종교가 뭐냐고 묻는다. 기독교라고 하니까 날씨로 봐서 운해를 못볼 수도 있겠다며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기가막힌 일출을 보여 주실 것이라고 말했더니 오후에 보자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운해가 피어 있다. 사실 우리가 있는 곳은 해발이 2,000 미터가 넘는 곳이다.  그런 까닭에 산 아래에 있는 계곡으로 황혼 무렵이면 이렇게 구름이 밀려 들오 온다는 것이다. 바로 이 운해가 관광객들을 불러 들이는 것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면서 운해가 붉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기사가 우리를 모델로 하여 수없이 사진을 찍었는데 단 한 장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점이 맞지 않았거나 후레쉬를 사용하여 노출이 이상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찍은 사진들도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많았다. 그러나 사진보다는 눈으로 받아들여 마음 속에 갈무리해 둔 일몰과 운해는 지금도 감동적으로 남아 있다. 사진에 담는 것보다는 마음에 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기사가 아리산 숙소 근처에 있는 한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 이것저것 골라서 시켜 먹는다.

 

식사를 하고 슬슬 걸어서 편의점으로 가서 몇 가지 주전부리를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간다. 숙소에 돌아가니 주인이 일출 열차 승차권을 주면서 내일 아리산역에서 일출 열차가 5시 50분에 출발한다며 5시에 모닝콜을 해준다고 한다. 일출을 보고 와서는 편의점 옆에 있는 송강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라면서 식권을 준다.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잠의 세계로 빠져든다.

 

오늘의 경비

점심 480원, 아리산 입장료 550원(성인 150원, 학생 100원), 아리산 일출열차표 600원, 아리산 버스 320원, 저녁식사 660원, 편의점 197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