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대만 여행기

제 8 일 (2013.02. 19 화요일) 관즈링

힘날세상 2013. 3. 7. 13:15

제 8 일 (2013.02. 19 화요일) 관즈링

 

  5시 모닝콜 소리에 눈을 떴다. 일어난 그대로 추위에 대비해서 옷을 두껍게 입고 모자를 뒤집어 쓰고 아리산역으로 가니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5시 35분에 승차를 시작한다. 검표를 하고 잽싸게 승차한다. 밀리는 차안에서 30분 여분 소요하여 축산역에 도착한다. 역을 나와서 사람들이 몰려 가는 곳으로 가니 일출 전망대이다. 역과 1분 거리도 되지 않는다. 

 

불을 밝히고 있는 아리산역

 

우리는 어제 숙소에서 예매를 해 주었지만 당일 새벽에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아리산 일출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명절 연휴인지라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일출열차 표. 왕복표이므로 축산에서 아리산으로 돌아올 때 검표를 하므로 잘 보관해야 한다.

 

축산역에서 내려 일출 전망대로 가는 길. 사실 거리는 100여 미터 정도 된다. 주변에 가게들이 손님들을 부르고 있다. 개념품을 파는 곳도 있지만 새벽인지라 먹을 것과 따뜻한 차를 파는 곳이 대부분이다. 축산역에 도착한 시간은 6시 15분이다. 5시 50분에 출발했으니 25분이 소요된 셈이다. 그때부터 마냥 기다린다. 어떤 사람 둘이서 핸드마이크를 가지고 해가 뜨는 6시 50분까지 35분을 떠든다. 우리에게는 소음이었지만 드리가 들어보더니 해가 뜨는 곳은 우리가 있는 곳이 아니라 다른 곳이라고 한다고 한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기도 하고 화장실도 다녀오면서 일출을 기다린다.

 

축산역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붉은 빛이 돋아나고 있지만 해는 이곳에서 솟아오르지 않았다. 골짜기에 밀려온 운해의 정겨운 새벽이야기가 더 아름다웠다.

 

 해가 솟아 오르기 직전의 모습.

 

 

아리산의 일출. 사실 일출은 정말 볼 품이 없다. 다시 보라고 한다면 절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새벽에 일어나고, 서둘러 밀리는 기차를 타고, 무엇인가 기대를 하고, 가족들과 같이 빌어야 할 소원을 생각하고.. 이런데서 여행의 맛이 우러나는 것이지 않을까.

 

해는 또 이렇게 하루를 우리 앞에 내 놓는다. 오늘 하루도 무엇인가 기록해 둘만한 시간들을 보내야 할 것이다. 분명 오늘 하루도 우리의 인생의 한 페이지일 것이니까.

 

   지리산 천왕봉에서 보던 일출이 생각난다. 해는 돋을 생각도 안하고 한여름이었지만 밀려드는 추위에 얼굴을 가슴에 묻고 마냥 기다리던 그 때의 마음이 생각났다. 기다림. 그렇다. 무엇이든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 때 같이 간 일행 중 한 명이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불렀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 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 주오.' 그래서 그랬을까. 거짓말 같이 해가 솟아 올랐다. 아무런 광채도 없이 오직 싯뻘건 해가 쑤욱 올라왔다. 천왕봉의 일출은 언제나 장관이다. 그 후로 산꼭대기에서, 산등성이에서, 남해, 동해의 바닷가에서 많은 일출을 보았지만 천왕봉의 일출을 가리지는 못했다.

  새해 첫날이면 산에 올라 일출을 보려고 한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며 스스로 다짐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해인가 여수 향일암 일출을 보러 갔다가 밀려오는 졸음에 아찔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밤을 달려 일출을 보러가지 않는다. 나는 형식을 별로 중요하가 여기지 않는다. 새해 첫날이라고 해서 일출을 보면서 마음을 다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으로 떠로는 해를 가슴 깊이 끌어 안고 한 해의 삶의 방향을 정하고 실천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축산 역에서 아리산역으로 돌아오는 열차 시각은 7시 10분과 7시 20분이다. 일출이 6시 55분 정도였으니까 시간은 충분하다. 서둘러 역사를 빠져 나와 열차에 오른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 탔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아리산에 와서 일출을 보려고 하는가. 그들의 마음 속에 품었던 소원은 정녕 무엇이었을까. 돌아가는 이들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나는 또 무엇을 담고 돌아가는가. 많은 상념들이 한꺼번에 몰려 들었다.

 

돌아오는 열차에서 우리는 각자가 빌었던 소원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서로 얘기를 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빌었는지 뻔히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빌었던 마음을 감싸주면서 꼭 이룰 수 있도록 힘을 주고 다독여 줄 것이다. 우리는 피를 나눈 가족이니까.

 

  다시 아리산 역으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가르쳐준 송강식당으로 갔다. 직원의 안내대로 2층으로 올라가니 간단한 뷔페 차림이다. 입에서 당기는대로 가져다가 먹는다.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여행 중에는 내가 믿지 못할 만큼 많이 먹는다. 사실 대만에 오기 전에 한 달 정도 다이어트를 했다. 중성지방을 줄이라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흰밥, 떡, 라면, 빵, 국수 등 탄수화물의 섭취를 1/3로 줄이고 점심에는 닭가슴살과 채소, 과일 중심으로 식사를 한 결과 허리가 2인치 줄었고 체중도 약 3kg 정도 빠졌다. 그런데 대만에 와서 참 많이도 먹는다. 흰 밥, 빵, 면 즐기차게 탄수화물을 먹어댄다. 지금까지 쌓아 온 공든탑이 무너졌을까. 돌아가면 다시 쌓아야 할 것이고 그만큼 고생을 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도 하루에 한끼 정도는 2/3 공기 정도의 잡곡밥을 먹어야 한다. 탄수화물은 힘의 원천이다. 우리 옛말에 '밥 심(힘)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약 2 주 정도 밥을 거의 먹지 않고 나서 진안 덕태산에 갔는데 오르막을 올라갈 수가 없었다. 힘이 나지를 않는다. 쌓인 눈을 럿셀도 해야 했는데 정말 부끄럽게도 아내 뒤를 따라갔던 일이 있었다. 바로 하루 한 끼는 잡곡밥을 먹었고 다음 주 산행에서는 별 탈 없이 잘 올라갈 수가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청산별관 숙소로 돌아오니 기사가 10시에 출발하자고 한다. 시간이 남아서 숙소에서 짐을 싸고 휴식을 한다. 아리산의 일출과 일몰을 비교하면서 여행은 출발하기 직전이 좋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출발 전 준비하면서 빠져드는 설렘의 순간이 여행의 진정한 참맛이다. 머릿 속에 상상으로 담겨 있는 아리산이 아리산의 속살까지 들여다 보고 난 후보다 더 감동적이고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10시에 어제의 택시를 타고 아리산을 떠난다. 기사가 오늘의 일정을 말해 준다. 먼저 펀치호라는 곳으로 간단다. 펀치호(奮起湖)는 예전에 아리산에서 벌목을 해서 철도를 이용해 실어 날랐는데 당시 열차가 쉬는 중간역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당시 벌목공으로 일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일반 여행객들은 거의 가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짜이(嘉義)에 가서 점심을 세 곳에서 먹고 관즈링 온천까지 간다고 한다. 기사의 말에 의하면 아리산의 원주민들은 해발 800 - 1,500미터 지대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阿里'는 '먹을 것이 풍부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사람들이 차를 세운다. 물어보니 지난 태풍 때 산이 무너져 대충 치워 놓은 것을 제대로 복구하는 중이라고 한다. 얼마를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한다. 대략 20분 정도 기다리니 통과를 하라고 한다. 지나면서 보니 무너진 곳에 기둥을 세워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 같았다. 마침 기둥을 세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큰 길을 버리고 작은 길로 우회전하여 들어간다. 바로 펀치호로 가기 위한 것이다. 자동차 두 대가 겨우 비킬만한 길을 20여분 달리니 산허리에 붙어 있는 마을이 나타난다. 자세히 보니 아주 작은 초등학교도 있다. 마을은 정말 한적했다. 아수산장이라는 간판을 가리키며 기사가 말한다. 요즘 어떻게 알려져서 사람들이 찾아 오게 되고, 자연스럽게 숙박시설과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 이 곳도 유명세를 타게 되어 손님들을 다른 곳으로 안내해야 하겠다고 한다.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을

 

좀 반듯한 집도 있기는 하다.

 

 이렇게 좁은 길은 옛길 그대로라고 한다. 기사는 자기가 알고 있는 분이 여기에서 살고 있는데 그곳에 가서 좋은 차를 한 잔 대접하겠다며 골목으로 이끌어 간다. 그러나 그 집에는 아무리 불러도 아무도 없다. 기사가 멋적은 웃음을 웃으며 미안해한다.

 

차를 얻어 마시기로 했던 집. 자세히 보니 福德宮이라고 써 있다. 그렇다면 절 같은 곳인가. 나름 운치가 있어 보이는 집이었는데 주인을 불러도 잠겨진 자물쇠는 열리지 않았다.

 

펀치호역 바로 옆에 이런 가게가 있었다.

 

아리산 고원지대에서 재배한 생강과 흑설탕으로 만든 차이다. 시음해보라고 주는데 틀림없이 생강과 설탕맛이다. 파란 포장으로 되어 있는 것인데 500원에 3봉지를 준다.

 

펀치호 역.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펀치호역 주변 관광 안내도. 마을에는 천주교 성당, 학교, 파출소 등이 있다.

 

펀치호 역에서 한참을 놀기로 한다.

 

예전에 다녔던 증기기관차도 전시해 놓았다.

 

펀치호 역 구내의 모습. 참 작은 역이다.

 

실제로 예전에 운행하였던 화차라고 한다.

 

  펀치호 역을 떠난다.  한 때는 이곳이 참 번창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것이지만, 지금은 외부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 아주 작은 시골의 아주 작은 기차역. 펀치호역은 시간이 참으로 조용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만큼 세월도 멎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깥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데 이곳 펀치호는 시간을 멈추고 과거의 한 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시끄럽고 요란스러운 도시의 복잡함에서 벗어나는 일은 어쩌면 현대인들의 로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용한 농촌을 찾아가고, 한적한 골짜기로 들어가는 것인가보다. 그만큼 사람들은 시끄러움과 빠름에 짓눌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틈만나면 조용한 곳으로 느린 곳으로 탈출하는 것이 아닐까.

 

나무에 열리는 토마토라고 하는데 먹어보지 못했다.

 

도시락 가게. 당시 벌목공들이 먹던 도시락 그대로 재현하여 팔고 있다고 한다. 기사는 사먹는 것을 말렸다. 요즈음은 맛이 변하여 권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펀치호 마을에서 나와 우리는 자이로 갔다. 오늘은 대만에 와서 훈련중인 WBC 야구 대표팀이 우리나라 프로팀 NC와 연습경기를 하는 날이기도 하다. 야구에 관심이 많은 글이는 잠깐이라도 구경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기사에게 물어보니 경기장을 모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비공개로 경기가 열렸고, 대만팀 관계자가 몰래 잠입하였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기사는 우리가 오늘 점심을 세 곳에서 먹어야 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칠면조 덮밥, 우육면, 그리고 춘병이다. 기사는 능숙하게 차를 몰아 좁은 골목에 있는 집으로 간다. 그러나 넉넉하게 생긴 주인 아주머니는 손을 흔들어댄다. 이미 재료가 떨어져 식사를 할 수 없다고 한다. 기사는 꿩대신 닭이라며 짜이에서 두 번 째 잘하는 집으로 데리고 간다.

 

50년 전통의 가게라는 간판이 붙은 집으로 갔다. 간판에 火鷄(칠면조)肉飯이라고 써 있는 것을 보면 유명한 집이기는 한 모양이다. 기사는 오직 칠면조 덮밥만 시켜준다. 두 곳에 더 가야하기 때문에 조금만 먹어보라는 것이다. 가격은 한 그릇에 30원이다.

 

식사를 한 후 다시 차를 타고 한참을 가서 우육면 전문집으로 갔다. 기사말로는 3대째 운영하는 집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한쪽 벽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찾아와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 탁자에 한국인 부부가 아이와 같이 식사를 하고 있다. 짜이에 와서 산 지 2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집이 아주 유명한 집인데 어떻게 왔냐고 묻는다. 기사 얘기를 했더니 대단한 기사라고 한다.

우육면은 정말 맛이 있었다. 기사가 직접 서빙을 한다. 먼저 닭발을 가져온다. 이것은 자기가 주인에게 부탁하여 특별히 가져왔다고 한다. 파전도 한 장 시켰는데 별로 맛이 없었다. 

 

이 집이 유명한 집은 집인 모양이다. 벽에 유명한 사람들 사진이 죽 걸려 있다.

 

기사가 가져다 준 닭발. 쫄깃하고 맛이 있었다.

 

우육면. 수타면과 도삭면 두 종류가 있었다. 면발이 부드럽고 국물도 아주 맛이 좋았다.

 

흑송 춘병집이다. 기사는 대단한 집이라며 자꾸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전병에 각종 채소와 새우, 닭고기 등을 넣어 둘둘 말아 주는 것이다. 배가 부른 우리는 두 개만 시켰다. 부드럽고 맛이 좋다. 기사가 세 가지 음식을 먹어보라고 권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격은  한 개에 45원이다. 이것 두 개면 점심 식사로 충분할 것 같았다.

 

 

  세 번의 식사를 마치고 관즈링 온천으로 간다. 기사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50분도 안걸린다고 한다. 40여분이 소요되어 관즈링 통무온천장에 내려준다. 관즈링(關子嶺) 온천은 깊은 산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기사말로는 관즈링 온천은 대만에서 다섯번째 온천이라고 한다. 기사에게 예약한 대로 7,000원을 지불했다. 기사는 주변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로 항아리 통닭을 먹으라고 했다. 토종닭을 항아리에 구워서 먹는 것이라고 한다. 체크인을 하고 나서 온천을 하러 나갔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보니 보관할 라커에 자물쇠가 없다. 한 번에 10원을 내고 열쇠를 이용하는 보관함이 따로 있었다.

  실내 온천보다는 밖에 있는 노천 온천과 수영장이 좋다. 머드 온천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욕탕 옆에 진흙이 있고, 그걸 몸에 바르고 나서 탕에 들어 가는 방식이다. 한 쪽에는 닥터피쉬가 있어 발을 담그니 간질간질한게 기분이 참 좋다. 수영장으로 가니 아무도 없다. 우리 넷이서 넓은 야외 수영장을 전세내어 신나게 놀았다. 오랜만에 하는 수영이었지만 이내 적응을 할 수 있었다.  한 시간이 넘게 놀았더니 배가 고프다. 방으로 돌아와 글이와 편의점으로 저녁에 먹을 것을 사러 갔다. 간단한 먹을 거리와 맥주를 사가지고 돌아와서 맛나게 먹었다.

 

 관즈링 통무 온천 회관. 체인점으로 여섯 곳에 지점이 있는 것 같았다.

 

체크인을 한다. 하루 숙박비는 15만원이 넘는다.

 

우리가 묵은 방은 4인실로 이런 침대가 4개가 있다. 지금까지 묵은 숙소 중에서 가장 쾌적하고 좋았다. 온천을 하고 나니 몸이 나른하여 일찍 잠자리에 든다.

 

오늘의 경비

생강차 500원, 칠면조 덮밥 125원,  우육면, 파전  220원,  춘병 90원,  택시비 7,000원,  편의점 397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