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교사
한 달 이상 계속되는 어깨의 가벼운 통증으로 인해 마음 한 구석에 차 있는 묵직한 기운을 떨치지 못하고 병원에 갔다. 3주쯤 전에 동네 유정형외과에 갔는데 의사가 별 것 아니라며 약 3일분 처방해주고 물리치료 받으라고 한다. 3일 후에 갔더니 또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떻게 치료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3-4 주 이상 치료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나를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을 보고 지나가는 듯이 말한다. 참 신뢰가 가지 않았다.
신시가지 우리들 정형외과에 갔는데 환자가 밀려 있다고 접수도 안한다. 정말 기분이 나빴다. 뭔가 좀 다정한 말로, 걱정스러운 말로 말해주면 안 되는 것인가. 치료를 잘한다고 해서 찾아왔다며 무엇인가 말을 이어보려는 아내를 잡아끌어 병원을 나와 버렸다.
아내가 어디로 갈 거냐고 한다. 서신동 ‘본 병원’으로 가자고 한다. 집 근처에 있는 신기독병원에 어깨를 잘 보는 의사를 초빙했다는 현수막을 본 것이 생각나서 신기독병원에서 진료을 받았다. 증상을 말하니 후덕한 몸집의 사람 좋아 보이는 의사가 오른팔로 왼쪽 어깨를 잡아보라고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했더니 웃으며 별 것 아닐 것이라고 한다. 그러며 X선 촬영을 한 번 해보자고 한다. 잠시 후에 사진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친구가 이런 어깨뼈가 자라나서 인대를 끊어서 수술을 했다고 했더니 그 부위가 아니라고 하며 걱정도 하지 말고 아프지 않으면 약도 먹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어깨를 누르고 있는 기분 나쁜 통증을 말하니 3일분만 먹으라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한 달 이상 나를 짓누르고 있던 그 무거움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갑자기 삶의 의욕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고 할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한 마디가 이렇게 힘이 있을 줄이야.
교단에 선 지 30년이 되었다. 그 동안 나와 인연을 맺은 학생들이 단순하게 생각해도 3천명이 넘는다. 그 많은 학생들과 만나면서 나는 그들에게 얼마나 힘을 실어 주었을까. 그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얼마나 진지하게 대했을까. 과연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학생들의 입장에서, 학생들의 눈을 보며 마음을 나눈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나와 나눈 대화로 인해 학생들이 힘을 얻어 신바람 나는 학교생활을 이어간 학생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진료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였다. 내가 말한 ‘고맙습니다’는 의사가 진료를 해준데 대한 고마움보다는 어깨의 통증이 걱정할 것이 못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한 의사의 말에 대한 것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의사는 사람의 육체를 치료하지만 때로는 정신력까지 바로 세우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사는 사람의 정신을 가르치지만 정신보다 더한 미래의 시간에까지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학생들의 인권이 강조되면서 교사의 역할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정말 교사의 입장에서 소신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하려고 할 때, 부딪치는 것이 많고 돌아오는 것은 절망적인 한숨뿐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교사는 교사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교편(敎鞭)을 들고 힘차게 교실에 들어가자.
2012년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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