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好學)의 바다에 빠지다
-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를 읽고
2004년 우촌독서대상 공모 금상 수상작
전주신흥고등학교 3학년 정 글
학문을 하고 싶다.
학문의 바다에 흘러 들고 싶다. 아직은 샘물에서 막 벗어나려는 미미한 물줄기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학문의 거대한 바다로 흘러 들어 선학(先學)들이 닦아 놓은 학문의 세계를 향유해 볼 것이다.
영남학파의 거두(巨頭)였던 갈암 이현일(1627-1704)이 쓴 '세제자경잠(歲除自警箴)'이라는 글을 읽다가 문득 끓어오르는 희열에 젖어 밤을 새워 불을 밝힌 적이 있었다. '학문을 할 때에 아주 짧은 시간도 아껴 잠시만 느슨하지도 잠깐만 멈추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을 종일토록 지니고 있었으며 밤에도 그런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몸에 만 가지 이치가 갖추어져 있으니, 이 이치를 따르면 옳게 되고 이 이치를 어기면 어그러지게 된다'는 내용으로 제대로 된 학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게으름, 나태, 장난, 집중하지 않는 것, 조심하지 않는 언행, 그리고 자만심 등 6가지를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 학문의 길은 결코 산책이나 즐기는 평탄한 오솔길이 아니다. 땀을 흘리며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걸어서 넘어야 할 태산 준령이다. 그래서 학문은 강한 선비 정신을 필요로 하며, 그렇기 때문에 학문은 삶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대학입시에 매진해야 하는 수험생에게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더위에 지쳐 늘어져 가던 즈음에 아버지께서 읽으시던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라는 책을 보다가 올곧은 학자 다산(茶山)을 만나 호학(好學)의 바다에 빠지게 되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산은 의연한 학자의 자세로 앉아 미약하기 그지없는 이 후학(後學)에게 외유내강의 손길을 보내 주었다. 나는 다산과 다산의 학문을 탐닉하면서 평생을 다해 걸어야 할 나의 길을 그려 보았다.
다산의 학문은 열 다섯에 성호 이익(1681-1763)을 읽으면서 발아하여 강진의 유배지에서 영글었다. 만약 다산이 운명적으로 만났던 호학(好學)의 군주 정조 임금 곁에서 벼슬을 살면서 현실과 마주섰었다면, 오늘날의 다산학(茶山學)은 없었을 것이다.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유배된 강진의 비좁은 토담집에서 또는 아름다운 다산 초당의 마루턱에 비껴 앉아 현실을 보았기 때문에 다산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다산은 진리 탐구에서 벗어나 당파싸움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 공리공담(空理空談)의 성리학을 버리고 실용학문으로서 사상의 변혁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다산은 봉건적 사고인 신분제도를 내동댕이쳐야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힘을 주었고, 그러한 다산의 학문을 위당 정인보은 민중적 경학(經學)이라고 말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다산학(茶山學)은 민중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산의 두 아들 학연(學淵)과 학유(學遊)를 보면서 <한강>에서 조정래가 그리고 있는 유일민, 유일표 형제를 떠올려 본다. 자신들과 무관한 아버지의 행적으로 인해 감당하기조차 힘든 가시밭길을 걷게 되는 그들은 모두 ‘폐족(廢族)’이다. ‘끝이 어딘지도 모를 캄캄한 터널 속으로 혼자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라는 ‘유일표’의 한이 맺힌 절규를 다산과 두 아들은 어떤 눈으로 바라다 볼까? 미래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자녀들에게 독서에 정진하고 몸가짐을 바로 하라고 채근하는 다산의 마음이 형사들에게 붙들려 갔다가 보름만에 정신을 차리고 나서 장남 유일민에게 ‘느그 아부지가 저짝에 살아 기신단다.’고 귓속말로 전하는 해촌댁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폐족은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폐족의 심사를 어떻게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나도 너에게 그렇게 편지를 썼을 것이다.’고 말하시는 아버지와도 의견을 나누어 보았지만 폐족의 심사는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폐족이기 때문에 학문과 예절을 갖추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100배 열심히 노력하라는 다산의 편지글을 보면서, 나는 학연과 학유가 되어 보려고 많은 힘을 기울여 보았다.
학연과 학유는 유일민과 유일표와 더불어 최근에 만난 꽤 괜찮은 사람이다. 적어도 그들은 정신승리법이라는 엉터리 논리로 비굴한 자신의 삶을 합리화해 버리는 阿Q 같은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월북자의 아들로 늘 감시를 받고,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현실에도 굴하지 않는 유일민 형제의 굳센 마음과, 폐족의 쓰라림 속에서도 자식들을 독서의 길로 인도하려는 아버지의 애틋한 정에 감동하여 집안의 학문을 이어가는 마음이야말로 우리 젊은이들이 반드시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울 뿐이다.
책은 언제나 나의 힘이다. 아버지 서가에서 몰래 뽑아온 책을 참고서 밑에 두고 읽는 즐거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책이라는 것은 아무리 읽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안동의 도산서원에서 사온 과거답안지를 모아 놓은 책을 읽으면서 선비들의 엄청난 독서량과,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慧眼)에 놀란 적이 있다. 역시 독서야말로 학문의 근본이 아닐 수 없다.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서 유배지에서 보낸 다산의 편지를 읽고 난 후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던 기억이 있다.
'…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저는 학문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학문의 근본이 독서에 있다고 말하였지만, 사실 저는 무엇을 읽어야 할지, 또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모릅니다. …'
아버지께서는 청소년기의 성품을 기르는데 필요한 것은 문학적 상상력이라며 문학을 권하셨다. 또 당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방안은 옛 사람들의 삶의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며 역사를 읽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학교 도서관 서가에서 두터운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연려실기술’이라는 책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다산은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라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고 할 수 있다'며 신하가 임금께 올린 상소문, 묘비문, 옛사람들끼리 주고 받은 서간문 등을 반드시 읽어서 안목을 넓혀야 한다고 말한다. 성인들은 학문의 바탕이 인간 관계에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학문의 본질은 진리탐구에 있다고 생각한다. 학문이 실생활과 밀착할 수 있는 것이나, 학문을 하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것도 학문이 바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학문을 하는 자세는 물의 흐름과 같아야 한다. 잔(盞)에 넘치는 미약한 물방울이 시내를 거치고 강물을 지나면서 거대하고 도도한 자세로 바다로 흘러 가듯이, 학문은 절차와 단계를 거치며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의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더디고 느릿한 발걸음일지라도 내가 만나는 작은 웅덩이를 하나하나 채워가며, 성호 이익이라는 강물을 막아 이룩한 다산의 호수를 보듬고 저 넓고도 무한한 학문의 바다로 끊임없이 흘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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