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마음 깊이 담아 둔 시간
* 2009 영월 여행 수기 공모 우수상 수상
영월은 하나의 작은 읍이 아니었다.
단종이 유배되었고 또 그가 잠들어 있다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안고 있으며, 천혜의 비경을 연출하며 굽이굽이 숱한 세월을 갈무리하고 있는 동강, 서강과 어깨동무나 하고 있는 작은 읍이 아니었다.
영월은 튼실한 웃음으로 살아 있었다. 각이 날카롭게 서 있는 도시인들의 메마르고 이기적인 발걸음을 남김없이 거두어 내면서 좀 수더분하고 느슨한 마음으로 영월은 갈맷빛 이야기를 다독이고 있었다.
단 하루뿐인 여행이었지만 가족여행을 위해 영월로 핸들을 돌린 것은 여행에 대한 관심이 서로 다른 우리 가족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처음 출발할 때만해도 우리는 영월에 도착하여 각자 관심을 두고 있는 곳으로 흩어져 답사를 하기로 하였다. 역사 기행에 관심을 두고 있는 대학생 아들은 청령포와 장릉 그리고 관풍헌과 자규루를 따라 단종의 아픔을 새겨보기로 했고,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와 사회 문화에 관심이 많은 아내와 딸은 영월초등학교 부근의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요리 골목과 재래시장, 영화 라디오 스타 촬영지 등을 둘러보는 일정을 짰고, 자연의 풍광이 빚어내는 감미로운 아름다움을 두 발로 음미하려는 나는 서강이 빚어 놓은 한반도 지형 일대를 트레킹하는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짧은 시간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눈으로만 보는 관광보다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여행지와 한 몸이 되어서 그 깊이에 빠져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령포로 가는 차 안에서 청령포에 대해 얘기하던 아들이 처음 계획을 취소하고 모두가 같이 답사를 하자고 말한다.
“단종의 아픔이 뭐겠어요? 바로 가족들과 헤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답사의 중점을 두는 내용이 서로 다르다고 하여도 가족여행을 하면서 따로 돌아다니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요?”
“맞아. 듣고 보니 그렇겠네. 여보! 우리 그냥 같이 다니기로 해요.”
“아빠 그렇게 해요.”
아내와 딸이 맞장구치는 바람에 우리는 모두 같이 다니기로 하였다. 관심사가 서로 다르다고 해도 이번 여행을 계기로 하여 여행의 폭을 넓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모두 동의를 하였다.
청령포 금표비(禁標碑)가 멀찍이 바라보이는 금강송에 기대어 앉았다. 노산대를 돌아내리는 바람은 600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풀어지고 묽어져 이제는 청아한 손길로 살갗을 간질이고 있지만, 동서 300척, 남북 496척의 통한의 공간으로 어린 단종을 얽어매었던 그날의 이곳 청령포의 바람은 얼마나 날카로웠을까. 그날의 눈물을 보았고, 가슴을 찢어 울부짖는 통곡을 들었다는 관음송은, 두 팔을 벌려 짓이겨진 마음을 쓰다듬어 단종을 껴안아주었다는 관음송은 세월을 따라 무엇인가 말하려는지 허리를 곧추 세우고 있다. 그러나 오늘 청령포를 찾은 사람들은 땡볕을 피해 찾아든 금강송 아래에서 부끄럽게도 소나무 값이나 매기고 있고, 반듯이 세워 놓은 단종어가가 작위적이라는 둥, 낙성 축문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등 푸념만 해대다가 망향탑에 올라가 굽이치는 물도리의 풍광이 아름답다고 찬사만 늘어 놓고 있지 않은가.
“단종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청령포가 이곳에 있는 한 언제나 살아 있습니다. 관음송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그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단종 임금의 가슴 저림을 외면할 수는 없을 거니까요.”
한 동안 관음송을 바라보던 아들이 입을 열었다.
“맞아. 역사를 수레바퀴라고 하잖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거지. 따라서 역사는 훗날에 평가를 받는 거고. 당시에는 세조의 사약을 받았지만 600년이 흐른 오늘날 후세들에게 각인되는 인물은 단종이 아닐까. 그래서 문학작품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고. ”
아내가 아들의 말에 동의하며 힘을 싣는다.
극작가 오태석은 핏줄을 생각하는 세조와 나라의 인재들을 잃을까 걱정하는 신죽주의 갈등을 그린 희곡 <태(胎)>에서 신죽주의 입을 빌어 ‘누가 단종을 두고 어리고 무능하다 할 것이냐. 천리 저쪽 영월에 앉아서 전하를 실성도 시키시니 …… 하물며 신들이야!’라고 말하며 영월에 유배가 있으면서도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외치고 있다.
그렇다. 오랜 세월이 흘러갔건만, 단종은 여전히 이곳 청령포에서 살아 있다. 살아서 우리들 의식의 심층부에 가라앉아 있던 역사를 불러내어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곳 청령포에 단종을 유배시켜 놓고 누구도 들어서지 말라는 금표까지 세워 놓으며 세상과 단절시키려 했지만, 당시 엄흥도는 깊고 넓은 강(당시에는 지금의 주차장도 강이었다고 한다.)을 한밤중에 헤엄쳐 건너 단종을 보필하였고, 오늘날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금표 앞에서 단종의 아픔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청령포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채 찾은 장릉은 영월 관광의 중심지였다. 시내에 위치해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단종의 영향력이 가히 장대하기에 영월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종 임금 앞에 고개 숙여 참배를 하고 난 아들이 장릉을 나오면서 입을 연다.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 영릉에 참배를 하면서도 생각한 것인데, 당시의 삶은 짧지만, 후세인들의 평가는 영원한 것 같아요. 오늘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네요. 그래서 역사 기행은 언제나 살아 있다니까요.”
영월초등학교로 이동하는 길가에는 동강축제, 국제 사진전 등을 알리는 포스터며 알림판이 서 있었지만, 시간이 재촉해대는 바람에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영월초등학교 정문에서 시작하는 요리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내와 딸아이는 약속이나 한 듯이 환호성을 지른다.
“아빠, 세월이 멈춘 듯하잖아요. 어쩌면 이렇게 마음에 와 닿을 수가 있을까요. 이렇게 보면 촌스럽고, 저렇게 보면 정감이 넘치는 그림과 딱 어울어지는 건물들. 은근히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이곳은 정말 살아있는 예술이예요.”
차 두 대가 겨우 비켜갈 만한 길 양쪽으로 드문드문 그려져 있는 벽화는 세련되어 보이지 않기에 아늑한 느낌을 불러 일으켰고, 우리가 골목의 끝까지 가는 동안 움직이는 것은 우리뿐이었다는 사실이 복잡하게 얽힌 도심(都心)의 심사(心思)를 한 올 한 올 풀어 내 주었다.
따가운 햇볕을 피해 벽돌 두어 장 넓이의 그늘에서 숨어 있는데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지나가시기에 이곳에 벽화를 그리게 된 연유를 물었다.
“이곳이 원래는 광부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지. 탄광산업이 한창일 때에는 이 골목이 대단했었지. 말하자면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던 곳이야. 탄광이 무너지니까 자연히 이 골목도 조용해졌는데 얼마 전부터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 거여. 여기에 그려진 얼굴들은 모두 이 골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야.”
우리는 다시 골목을 거슬러 올라가며 찬찬히 눈요기를 하였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붉은 스웨터에 노란색 귀고리를 하고 수줍은 듯 여린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와 그 옆에서 손가락 두 개를 펼 쳐 보이는 사내 아이,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는 아이들. 자신들을 그려 놓은 현대식 건물을 박차고 나와 금방이라도 팔을 걷어 부치고 요리를 만들 것만 같은 대를 이어 요리 골목을 지키고 있다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은근히 솟아오르는 웃음을 금할 수 없게 만들었던 프라이팬을 들고 쥐구멍을 지키고 있는 고양이 두 마리를 그린 그림. 맞은 편 이층 건물에서 눈가에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풍성했던 옛날의 시간들을 반추하고 있는 광부 아저씨. 전봇대를 휘감고 올라 활짝 핀 나팔꽃. 한 평 공원 옆에 있는 ‘너에게 묻는다’의 시인인 안도현의 시비와 평생을 노다지를 찾아다니는 허망한 삶을 그렸다는 이태준의 단편소설 ‘영월 영감’.
요리 골목은 영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고 있었다. 비록 150여 미터의 짧은 골목이지만 골목으로 들어서면 반드시 걸어야 하고, 걸으면 의식 속에 숨어 있던 자신과, 그림 속의 주인공들과, 골목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건축가협회가 주관한 2008 대한민국 공간문화상 우수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때 실사를 하러 오신 분들이 골목을 걸으면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작은 골목이 자꾸만 영역을 확장하게 되는 것을 높이 산 것이 아닐까.
저녁 무렵 느릿한 걸음과 여유 있는 마음으로 골목을 충분히 음미하며 동네 분들과 어울어져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 요리골목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골목이 끝나는 곳에서 몇 걸음 더 걸은 길가에 자리 잡은 그야말로 옛날식 작은 다방이 있다. 영화 ‘라디오 스타’ 촬영지이다. 길을 따라 세탁소가 있고, 미용실, 건재상회 등이 우리를 영화 속으로 이끌어 가는 듯했다.
“영화 촬영지가 갖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해?”
청록다방에서 커피잔을 들고 영화의 장면을 이끌어 내고 있는 딸아이에게 물었다.
“물론 영화 촬영지가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라디오스타’라는 영화에서 박중훈이 사람들의 실생활을 있는 그대로 전파로 내보낸 것이 소위 대박을 터뜨리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바로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곳의 다방이며, 미용실, 세탁소, 건재상회 등이 영화와 관계없이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영화 속 사실이든 아니면 영화 밖의 사실이든 모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하면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곳 말예요.”
앞장 서서 걸어가고 있는 딸아이를 따라 길 건너편에 있는 서부시장으로 들어가 본다. 무엇인가 바쁜 듯하고, 좀 술렁대는 느낌이 전주의 남부시장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서 맛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당면을 김으로 말아서 노랗게 튀긴 김말이, 빨간 고추장을 뒤집어 쓰고 있는 어묵, 푸짐하게 내 놓는 메밀 전병, 여러 가지 튀김들을 섞어 떡복이 양념을 듬뿍 뿌려주는 데 모두가 입맛을 당기었다. 잔뜩 쌓아 놓은 음식들이 마치 중국 왕푸정 거리의 길거리 음식점을 연상하게 한다.
몇 가지 음식을 맛보았으므로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지만 우리는 서강이 만들어낸 한반도 지형을 보기위해 선암마을로 향했다. 한반도 지형을 바라보는 전망대는 선암마을 직전 고개 마루에서 600여 미터를 걸어 들어가야 한다.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차량들이 늘어서 있는 길가에 주차를 하고 커다란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숲길을 걸어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강원도의 작은 읍 영월에 한반도가 그대로 담겨 있지 않는가.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으며 동쪽은 가파르고 서쪽은 완만한 모양까지 틀림없는 한반도다. 백두대간의 줄기 따라 산책로도 조성을 해 놓았다고도 한다.
나무 그늘에 설치해 놓은 벤치에 앉아 한반도를 감싸고 흐르는 서강을 내려다 보았다. 푸른 물결을 따라 유유히 떠가는 뗏목을 타고 유람을 하고 있는 관광객들이 평화롭게 보인다.
우리가 보고 있는 곳이 남태평양 어디쯤이라고 할 때, 우리나라는 대륙의 한 끝에 붙어 있는 작은 반도가 아니라, 거대한 대양으로 나가는 관문이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세상을 향해 원대한 꿈을 펼쳐내는 것이 우리 민족이 이루어 내야하는 사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강줄기를 따라 여러 가지 상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집안에서 큰 소리를 내지 않으며 살았고, 아이들도 건강하고 튼튼하게 잘 자라 사교육 한 번 받지 않고 자신들의 노력만으로 서울로 진학하여 자신들의 꿈을 키워 가고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모두 감사한 것뿐이로군.”
“뭐가 감사한데요?”
옆에 앉아 있던 딸아이가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묻는다.
아쉽지만 돌아서야 했다. 제천 방면으로 나가다가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들골교를 건너자마자 있는 가든에서 토종닭 백숙을 주문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곳인데 어찌나 살갑게 대해주는지 마치 돌아가신 부모님을 뵙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오늘 여행을 통하여 살찌운 마음으로 창밖을 보니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 참으로 맑다. 우리 마음도 한결 깨끗해졌다.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지 않았다면, 동강과 서강이 영월을 감싸고 흐르지 않았다면, 라디오스타라는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하지 않았다면 영월은 오늘날과 같은 의미 있는 여행지가 아니라 하나의 작은 읍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니다. 영월이 앞의 것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영월이 도시와 시골의 분위기를 동시에 뿜어내는 작은 읍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의 마음 깊이 잠겨 있는 향수(鄕愁)를 달래주지는 못할 것이다.
여행은 약간의 외로움이 가미된 객창감(客窓感)이 제 맛이다. 그렇다면 영월은 혼자서 와 볼 일이다. 도시에서 누리던 온갖 호사(豪奢)는 다 내려놓고 좀 수더분한 마음으로 기차를 타고 황혼 무렵에 영월에 살며시 들어와 노을을 따라 걷다가 좀 허름한 곳에 숙소를 정하고, 시장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먹으며 시장사람들과 달고 쓴 삶의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으리라. 지도 한 장을 들고 길을 물어 걸어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 나누는 이야기, 그들이 만들어주는 음식, 그들의 삶의 한 가운데 서보는 것이 의미 있는 여행이 아닐까.
영월은 역사와 자연,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는 독특한 여행지이다. 지친 정신을 일깨우고 충성한 삶의 이야기를 살찌울 수 있는 천혜의 여행지인 것이다.
가을의 바람이 일렁일 즈음에 우리는 다시 영월을 껴안을 것이다. 짧은 일정으로 인해 미루어 둔 각 종 박물관, 어라연의 절경, 별마로 천문대에 쏟아지는 별빛의 추파를 이겨내지 못하는 까닭이다.
우리의 영월여행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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