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8 천반산 산행기

힘날세상 2009. 7. 31. 14:01

8. 천반산(전북 진안 646M)

* 일자 : 2005. 10. 16 일

* 인원 : 아내와 나

* 코스 : 당집 - 느티나무 - 삼거리 - 한림대터 - 천반산 - 안부 - 먹개골 - 느티나무

* 시간 : 13 : 50 - 16 : 30

 

1. 들머리에서

 

말간 가을 햇살을 받으며 당집 옆의 비좁은 공터에 주차를 하고 산행 채비를 한다. 바람자락이 낙엽을 보듬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사위(四圍)는 고요하다. 이러다가 고요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다.

늘 그렇듯이 이런 풍경이 참 좋다. 그것은 여유로움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견딜 수 없는 오르가즘이다. 언제나 산은 이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2. 산행의 첫걸음

가막교를 건너자마자 길은 오른쪽으로 돌아나가고 왼쪽으로 우마차길이 이어진다. 좁은 길로 차를 들이밀어 당집을 지나 작은 다리 옆에 주차를 하고 채비를 한다.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파란지붕의 농가 앞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들머리는 농가 대문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 파란 지붕을 하고 있는 농가의 왼쪽 벽을 타고 들어가야 한다.

 

3. 가을을 품은 산

길은 뚜렷하게 이어진다. 시작은 밋밋하게 산자락을 돌아드는가 하더니 이정표가 서 있는 첫 삼거리에서 계단으로 이어지면서 오르막이다. 채 10분도 안되어서 능선 3거리에 도달하면서 제법 산길의 모양을 갖추어간다. 불쑥한 바위도 있고 급격한 경사로 낭떠러지도 이루면서 짙게 화장을 시작하고 있는 가을산의 속살을 드러내며 제법 붉은 웃음을 흘리고 있다. 몇 걸음 걸어 오르니 할미굴로 가는 삼거리이다. 왼쪽으로 바위를 돌아 몇 걸음 걸으니 할미굴이다. 굴이라기보다는 커다란 절벽이다. 송판서라는 사람이 자기는 건너편 능선에 있는 굴에서 도(道)를 닦고 마누라는 방해가 될까봐 여기에 두었다고 한다. 마누라가 그 이야기를 읽더니 픽 웃는다. 다시 3거리로 돌아 나와 능선을 따라 오른다. 제법 조망이 좋은 바위에 앉아 내려다 보니 가막마을이 평화롭게 내려다 보인다. 왼쪽으로 육십령에서 할미봉을 거쳐 남덕유산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모처럼 탁 트인 전망에 마음을 열어 본다.

 

4. 한림대의 정(情)

낙엽이 두껍게 덮인 산길을 따라 오르는데 한 사람도 없이 산은 온통 고요에 싸여 있다. 죽도 유원지를 건너서 올라오는 제법 청랑(晴朗)한 바람을 맞으며 10여분 오르니 커다랗고 평평한 바위로 된 한림대 터이다. 조금 전에 보았던 덕유산 능선이 장엄하게 보이고 우뚝 솟아있는 마이산의 쫑긋한 모습도 가물거리며 다가선다. 그 옛날 정여립 할아버지가 많은 학자들과 학문을 논하며 세상을 이야기했다는 곳이다. 정말 좋은 곳이다. 그 평평한 바위에 올라앉아 발밑으로 속세를 내려다보는데 전혀 속(俗)한 기운이 없다. 바로 우리가 사는 곳이 속(俗)한 곳이, 우리가 속(俗)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음이라고 생각하다가 우리도 속(俗)한 마음에 빠지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고상한 삶을 이야기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구만 통속(通俗)한 것이 좋아진다. 조금 투박하고, 조금 거친 듯하며, 조금 천박한 듯한 생활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아내와 히히덕거리며 천박하고 속(俗)한 시간을 보내며, 그 속(俗)한 가운데에서 삶의 의미와 희열(喜悅)이 있음을 확인한다. 어차피 인간의 삶은 통속(通俗)한 것이리라.

5. 정여립의 한(恨)

한림대터를 지나 능선을 이어가니 왼쪽으로 죽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가면 정여립이 뛰어난 무공으로 뛰어다녔다는 뜀바위가 있고, 조금 전의 송판서가 은둔하며 도(道)를 닦았다는 송판서 굴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죽도로 내려서게 된다. 갈림길을 버리고 직진하여 가니 벤치가 있는 성터이다. 정여립이 군사들을 훈련시켰다는 곳이다. 산꼭대기가 널찍하고 평평하다. 조선의 절대 왕정(王政)에 맞서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씨가 있겠느냐’며 소위 민주화를 주장하다가 그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반역으로 몰려 억울하게 삶을 마감했던 그 아픔이 산등성이에서 묻어나는 듯하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반역의 굴레를 뒤집어 쓰고 자결(自決)했다는 치욕까지 당해야 했던 여립할아버지의 눈물은 어떠했을까. 세월이 흘러 이제야 그 통한(痛恨)의 질곡(桎梏)을 벗어나는 듯하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가시밭길을 걸어버린 것이 아닌가. 아무 것도 모르는 바람만이 성터의 봉우리를 감싸돌고 있다. 500년을 쌓여 온 한(恨)만이 고요 속에 켜켜이 다져지고 있었다.

 

6. 천반산

왼쪽으로 급경사를 이루며 떨어지는 좁디좁은 능선을 밟아 가는데 서둘러 붉은 옷을 갈아입은 단풍들이 삐죽삐죽 고개를 쳐든다. 천반산 자락을 끌어안고 나직하게 내려앉는 오후의 햇살은 붉게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산하(山河)를 따라 일렁이고 있었다.

산이 워낙에 작아서 산의 품에 안긴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았으나, 천반산이 품고 있는 이야기의 깊이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정여립의 아픔이 아니더라도 산줄기에서 바라다 보이는 덕유능선이며, 가물거리고 있는 호남정맥의 힘찬 걸음이 있고, 손에 잡힐 듯한 가막리의 다정한 이야기가 스멀스멀 밀려들어 가을 오후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기에는 더없이 좋을 만한 산이었다.

천반산 정상에 도착하여 보니 나무의자가 놓여 있는데 친구 사이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들이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다. 무엇이 시시껄렁한 이야기냐고 되물어온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그래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이어갔던 곳이고 보니, 항간(巷間)의 이야기는 그렇게 들리는 것이 아닐까.

7. 산을 나서며

천반산 휴양림 쪽으로 뻗어가는 능선을 따라 내려서자마자 오른쪽으로 급격하게 떨어져 내리는 희미한 길을 찾아야 먹개골로 내려설 수 있다. 이내 길은 평온을 되찾고 호젓하게 이어진다. 10여분을 걸으니 왼쪽으로 먹개골로 내려서는 길이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키를 덮을 만한 억새들이 빽빽하게 돋아 있는 농로를 헤쳐 나오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찬반산 자락이 넓게 품고 있는 가을의 노래를 들으며 20여분 내려오니 들머리였던 푸른 지붕 농가 앞이다.

가을은 또 가고 있다.

다시 산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지만, 산은 마라톤이 이끌어 내는 세계와는 또 다른 그림을 그려준다. 특히 산마루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에서 일어서는 사람들의 정겨운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처럼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래서 산을 나설 때마다 또 다른 산행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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