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3 방장산 산행기

힘날세상 2009. 7. 31. 12:59

3. 방장산

* 일자 : 2005. 9. 9 금

* 인원 : 아내와 나

* 코스 : 장성 갈재(10:00) - 734 봉(11:40) - 장성 갈재(15:00)

* 교통 : 1번국도 이용( 전주 - 원평 - 정읍 - 입암 - 갈재)_

개교 105주년 기념일이라서 남들에 비해 한가한 휴일이다. 학교에서는 전남 고흥 팔영산으로 산행을 갔는데 전에 한 번 가 본 산이라서 발길을 돌려 오래 전부터 오르고 싶었던 고창 방장산으로 향했다. 집에서 9시가 다 되어서 출발하여 장성 갈재에 도착하니 10시가 조금 넘었다.

갈재는 참으로 고즈넉했다. 그저 늦여름의 햇살만이 텅 빈 고갯마루에 무료한 표정으로 내려 앉고 있었다. 겔로퍼 한 대가 주차해 있는 것을 보고 먼저 간 산객(山客)이 있을 것 같아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확인한 산행 들머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산으로 향하는 임도를 막아선 것은 쇠창살로 된 문이었다. 옆에 드나들만한 공간이 있어 통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처음 가보는 산이지만 길이 확실한 것 같아 들머리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막상 들어 서고 보니 아니었다. 입구부터 포크레인이 파헤친 흔적이 산을 덮고 있다. 이리저리 망설이고 있는데 오른편으로 포크레인이 짓이긴 곳에 리본 하나가 애처롭게 매달려 있다. 아내를 세워 두고는 혼자서 100여 미터 쯤 올라가 보니 등산로가 있다. 숲이 우거져 터널을 이룬 것이 제법 가파르게 올라 붙인다.

다행이 햇살은 가려 주었으나 바람이 불지 않아서 몇 걸음 가지 않아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산은 온통 적막과 고요를 뒤집어쓰고 있다. 앞에서 올라가는 아내의 발걸음은 힘이 넘치는데 나는 시작부터 호흡이 가쁘다. 아내의 발길을 붙잡아 천천히 오른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은 그칠 줄 모른다. 산밖에서 바라본 산의 형세로 볼 때 734봉까지는 중간에 작은 봉우리를 넘어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이었던지라 예상은 했지만 어지간히 힘을 뺀다.

첫 번 째 오른 봉우리는 헬기장인데 무성한 풀에 묻혀 버렸다. 조망도 좋지 않다. 오직 따가운 햇살만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길은 이제 다시 심한 내리막이다. 도대체 얼마를 다시 오르려고 이렇게 내려가는 것인가? 한참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만들어 놓은 교통호가 나타난다. 적어도 일개 분대가 전투에 돌입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이다. 돌까지 쌓아서 견고하게 구축해 놓은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이런 시설이 있어야 하는가?

교통호의 마루턱에 앉아 다리쉼을 하고는 일어선다. 몇 걸음 가지 않아서 잘록한 안부를 만난다. 아마 이 안부를 타고 침투하는 적에 대한 방어용인 듯싶다.

734봉의 몸뚱아리를 감아 오르기 시작한다. 제법 경사가 가파르다. 어지간히 땀이 흐른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오르니 무덤이 나타난다. 무덤에 앉아 뒤를 돌아다보니 발밑으로 갈재가 꿈틀꿈틀 기어가고 있다. 누군가 전망이 좋은 곳에서 영면(永眠)에 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옆에 있는 작은 봉우리가 있다. 올라오는 동안 시원스런 조망을 제공하는 곳이 없었던 터라 조망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일단 올라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빽빽하게 우거진 갈대숲을 헤치고 들어서니 무슨 나방 같은 것이 하늘을 덮을 만큼 많이 날아올라 그만두고 되돌아 나왔다.

무덤을 지나서 몇 걸음 오르니 주능선이다. 제법 바위가 많다.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걷기도 하면서 암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비슷한 길을 지나니 전북 산사랑회에서 세운 팻말이 서 있는 734봉 꼭대기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정상은 나무숲에 들러 싸여 장성 쪽으로 약간 내다뵐 뿐 시원스런 조망이 아니다.

그래도 734봉에서 고창 쪽으로 달아나는 주능을 바라보니 제법 마음을 잡아끈다. 어느 산행 잡지에 소개된 대로 꾼이라면 한번 밟아볼 만하다. 눈이 이끄는 대로 주능을 따라가는데 왼쪽으로 갑자기 확 트인 전망대가 나타난다. 점심식사하기 딱 좋은 곳이다. 마치 지난 8월에 속리산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곳과 아주 흡사하다. 발밑으로는 장성군 북이면의 손바닥만한 논밭이 내려다보이고, 힘차게 뻗어나간 방장산 줄기가 한 눈에 확 들어온다.

아내가 준비한 점심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준비해 온 반찬은 없어도 밥맛은 꿀맛이다. 그래도 앞으로는 반찬을 좀 준비해 와야겠다. 좋은 경치에서 먹는 점심이라면 좀 걸판지게 먹어도 좋을 것 같다. 산 허리를 감싸도 돌아가는 임도가 한가롭게 보인다. 적어도 5 - 6 km 는 될 것 같다. 문득 그 임도를 따라 달려 보고 싶은 생각이 솟구친다. 사랑하는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달리는 기분은 그야말로 환상적일 것 같다.

밥을 먹는 것보다 이러저리 아름다운 자연에 눈길을 돌리는 것이 훨씬 좋은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좋은 경치에서는 무엇을 해도 좋을 것이라는 말을 하다가 이런 곳에서 정사(情事)하는 장면을 찍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하니 아내가 눈을 흘긴다. 우리가 앉아 있는 옆에 이름 모를 꽃이 푸른 얼굴을 들고 무더기로 앉아 있다. 나는 밥을 아껴가며 먹었다. 이곳에 더 앉아 있고 싶었던 까닭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떼어 방장산을 향한다. 그러나 능선의 조망은 형편없고 건너편 방장산을 오르려면 잘록한 안부가 있어서 한참을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고 , 또 처 있는 곳으로 되돌아 와야 한다는 논리로 아내는 발길을 돌리자고 한다. 우리는 어느 작은 무명봉(無名峰)에 서서 바라다 볼 수 있는데까지 멀리 바라다보고, 입암 쪽의 평화로운 벌판을 내려다 볼 만큼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려 되돌아 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다시 점심 먹은 장소에 다시 주저앉는다.

“저기 밑에 보이는 임도를 따라 달리기 한 번 할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좋겠다. 단풍이 물들어오는 날이면 좋을 것이고, 거기에 비스듬히 햇살이라도 비친다면....”

734봉을 넘어 홀로 잠들어 있는 어느 분의 무덤을 지나서 기나긴 내리막길을 걸어 첫 번째의 무명봉에 섰다. 이젠 햇살도 많이 기울었고 바람도 살랑살랑 나뭇가지 끝을 흔들고 있다.

갈재 건너편에서 부드러운 몸매를 흔들며 손짓을 하는 입암산 줄기가 포근하게 느껴진다. 그 산줄기는 갈재 앞에서 힘을 추스린다. 갈재를 건너기 위해 잔뜩 힘을 쓰는 까닭에 산줄기 여기저기에 희멀건 힘줄이 돋는다. 푸른 나무를 헤치고 솟아오른 바위들이 참으로 힘있어 보인다. 내장산 추령에서 시작하여 이곳 방장산까지 2박3일 정도의 종주를 하는 것도 퍽 재미있을 것 같다.

갈재를 향한 내리막을 내려오는데 성급한 녀석들은 노랗게 물들어 버렸다. 어디서 칡꽃의 향기가 달디단 손짓을 한다. 그 말간 칡꽃의 향기에 취해 우리는 우리들만의 산행의식을 거행했다. 그 넓고 넓은 방장산에는 아무도 없이 오직 우리들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만이 가득하다. 그래서 우리의 의식은 더욱 빛을 발한다. 마치 방장산의 주인이나 된 것처럼, 그래서 방장산이 우리들의 안방이나 된 것처럼. 상큼하고 맑은 공기를 실컷 마시고 나니 온몸이 날아갈 것 같은 쾌감에 젖어든다. 이러한 즐거움을 맛본 우리들은 이러한 산행의식을 계속하려고 한다.

갈재에 내려오니 겔로퍼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우리 차만 홀로 남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힘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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