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지리산 피아골
* 일 자 : 2005. 10. 23
* 동 반 자 : 마라톤클럽 회원들 24명
* 코 스 : 직전마을 - 피아골 - 임걸령 - 반야봉 - 삼도봉 - 화개재 - 뱀사골 - 반선
* 산행시간 : 07 : 30분 산행 시작 - 16 : 40분 산행 끝
1. 들머리에
피아골의 단풍을 생각을 한 것은 지난 일요일(10월 9일) 오후에 아내와 오른 천반산(天盤山,646.7m 전북 진안) 한림대터에서였다. 비스듬히 드러눕는 말간 가을 햇살을 반짝이며 느긋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남덕유산의 마루금을 바라보던 아내가 불쑥 옆구리를 찌른다. ‘설악산 대청의 단풍이 눈에 선한데 다시 한 번 갈까?’ ‘대청도 좋지만 피아골의 단풍은 금방이라도 붉은 물이 줄줄 흐를 것 같은 느낌으로 우리의 가슴을 흔들어 대기에 충분할거야.’
아내는 어느 산이든 발을 들여 놓기만 하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며 10월 말에 꼭 가자고 호들갑이다. 피아골 산행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이 범벅이 되면서 마음은 벌써 지리산으로 달려간다. 문제는 그 때가 단풍이 한창이라서 너도나도 지리산으로 몰려 들 것이므로 교통편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을 것이라는데 있다.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줄기의 생각! 그렇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너나 할 것 없이 전세 버스 아니면 자가용을 이용할 것이니 전주에서 새벽 2시에 출발하는 기차로 구례까지 가서 다시 연곡사행 버스를 타든지 아니면 택시를 이용하여 피아골에 든 다음, 뱀사골에서 직행 버스를 타고오자는 계산이 섰다.
그러나 둘이서 조용히 다녀오려던 계획은 우리 5인조로 확대되었고, 다시 이영춘에게 알려져 클럽의 행사로 치러지게 되었다. 25인승 버스를 예약하고 일을 추진하는데 27명이나 신청하는 바람에 대형 버스로 바뀌고 출발 시간도 아침 5시로 확정하였다.
아내는 집에 있는 찹쌀을 다 먹어야 한다며 찰밥으로 아침밥을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방앗간에서 밥을 찾아가지고 도시락에 조금 담고 버스로 갔더니 몇몇 회원님들이 나와 있다. 경기장을 돌아서 아중리에서 회원들을 태우고 5시 50분 경에 출발한다. 출발부터 웬일인지 기사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인다.
2. 피아골의 아침
청아(淸雅)한 얼굴로 피아골은 우리를 맞았다. 현란하게 치장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혀 단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닌 모습이 시골 색시같다. 그리고 피아골로 들어서는 길에는 아침 고요가 수북이 쌓여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침의 고요함은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준다. 문득 작년 5월에 화개장터에서 의신마을까지 달리기에 나섰을 때 한꺼번에 밀려들던 지리산의 고즈넉함이 밀려든다. 온 산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나무들의 합창 위에, 부지런한 날갯짓으로 아침을 깨우는 산새들의 파공음(破空音)이 더해져 피아골의 고요는 더욱 짙어 간다.
처음부터 2진으로 산행에 나서겠다는 생각이었기에 발걸음에 여유가 있다. 널널산행까지는 아닐지라도 붉은 웃음을 웃으며 손을 내미는 홍단풍과 하이파이브도 해야 하고, 노랗게 자신의 삶의 갈무리하는낙엽의 이야기도 들어야 하며, 등로(登路)를 넘나들며 겨울채비를 하고 있는 다람쥐의 삶의 노래에도 귀를 기울일 생각이기에 일행들의 발걸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곱게 여며입은 피아골의 치맛자락을 들추어가며 제법 깊은 곳의 속살까지 눈길을 보낸다.
작은 돌멩이에 가늘게 파인 흠집을 보다가 누구나 저렇게 아픈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삶을 이어가야 하기에 대학시절의 청순함을 내던지고 참으로 독(毒)하게 살아가고 있는 어느 동창생의 얼굴이 그 돌멩이에서 어른거리고 있다. 우뚝 서서 울긋불긋 아름다운 빛깔을 가다듬어 채색(彩色)을 하고 말간 가을 햇빛까지 몸에 두르고 있어 많은 산객(山客)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지만, 부끄럽게도 상채기 투성이인 허리통을 드러내놓고 있는 구계폭포 근처의 단풍나무는 무엇인가 가슴저리는 아픔을 안고 있는 것일까. 작지만 아담한 노래를 불러 아홉 번이나 굽이를 이루며 피아골 맑은 계류(溪流)를 모아 인간들의 심사(心思)까지도 비추어낼 듯 잔잔한 삼홍소(三紅沼)도 푸른 하늘을 끌어 당겨 붉은 색으로 노란색으로 유혹하는 가을잎파리들의 군무(群舞)에 넋을 빼앗겨 자신들 돌아다보지도 않는 등산객들을 향해 슬며시 눈을 흘기고 있다. 골짜기를 흔들며 봉우리로 치닫는 통랑(通郞)한 바람자락에 걸터앉아 헤살거리고 있는 작은 나뭇가지들의 재롱에 한눈을 팔다 보니 일행들은 모두 멀어져 갔다.
솜씨도 없는 사진기도 여기저기 들여대 보고, 가슴을 타고 흐르는 새록새록한 정(情)을 다독거리기도 하며 오르는데 나를 앞질러 가거나 바윗돌에 앉아 소곤소곤 마음을 나누고 있는 산행객들이나, 속세를 버리고 자연에만 안기겠다는 일념으로 산행에 나선 나에게는 모두 눈밖에 펼쳐지는 하나의 풍경이었다.
여기저기 한눈을 팔다보니 내가 걷고 있는 것인지 산이 나에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장주(莊周)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데, 꿈이 깨고 난 뒤에 자기가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자기가 된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이야기가 생각난다. 정말이지 내가 산이 되었는지 산이 내가 되었는지 분간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산을 오르는데 문득 눈앞을 가로막는 것은 허름한 피아골 산장!
앞서간 일행들이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활짝 핀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같이 어울어지는데 질매재를 돌아내리는 단풍이 터질 듯 붉다.
피아골 산장에서 임걸령으로 오르는 길은 도도한 자세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어서 제법 가파른데다가 각지에서 찾아온 산객들로 인해서 정체가 심하다.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주고 간간히 서있어야 하는 시간이 오히려 즐겁다. 피아골을 감싸고 웅장하게 흘러내리고 있는 왕시루봉 능선과 불무장릉이 알록달록한 걸음걸이로 섬진강으로 다가서는 모습이 참으로 맛깔스럽다. 일행 중의 한 분이 끓어오르는 힘을 주체할 수 없는지 산이 덜렁거릴 정도로 큰 소리로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하는 바람에 오르내리는 산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3. 주릉에 서다
주릉의 피아골 삼거리에 올랐다. 지리산 북사면을 거슬러 올라온 바람의 끝이 제법 날카롭다. 방풍자켓을 꺼내 입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코앞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반야봉의 정수리가 고와서 넋을 잃고 바라본다. 휴일을 맞아 지리산 자락을 들추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피아골 삼거리가 복잡하기도 하고, 또 임걸령의 물맛도 떠올라 발길을 돌린다.
벌써 30 년이나 지나간 이야기지만 임걸령에서 야영을 하다가 피아골에 가득히 피어오른 운무(雲霧) 와 은빛의 알몸으로 달려드는 달빛이 지어내는 운우지정(雲雨之情)에 세상을 잃고, 시간의 흐름을 놓아버린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잘록한 안부(鞍部)에서 야영을 하며 밤의 정취(情趣)를 즐겨봤지만 사이비(似而非)의 밤만 있었을 뿐이었다.
한여름의 따가운 햇살에 달구어진 능선이 밤이 되면서 적당하게 식어갈 무렵 팔베개를 하고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을 보는 즐거움을 필설(筆舌)로 토로(吐露)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골짜기 가득 구름의 향연이라도 펼쳐질라치면, 그리고 그 위에 말간 바람이라도 더듬거리고 있을라치면 그것은 인간세상이 아니고 신선의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노루목에서 일행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반야봉을 올라가야 하느냐 아니냐를 놓고 의견이 갈라진 모양이다. 각자의 취향대로 산행을 하고 뱀사골에서 기다리고 있을 버스에 승차만 하면 될 것을 꼭 일관된 흐름으로만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야봉으로 오른다. 지리산의 많은 봉우리 중에서도 유달리 반야봉은 특이한 이름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반야봉이 좋다. 천왕봉 같은 거만한 이름도 아니고, 그렇다고 촛대봉 같은 흔해빠진 이름도 아닌, 제법 부처의 이야기라도 담고 있을 것 같은, 조금은 고품위의 이름이 아닌가?
등허리에 내려앉는 가을햇살이 참 따사롭다고 느낄 즈음에 반야봉에 꼭대기에 섰다. 노고단이 바로 옆에서 손짓을 하고 있다. 왕시루봉 능선을 흘리면서 몇 굽이 돌아가는 능선이 정답다. 이리저리 몸살을 앓고 있는 성삼재를 바라보다가 눈길을 돌리니 만복대가 퍽 외롭게 일어서고 있다. 사방(四方)을 돌아보아도 끝없이 이어지는 마루금의 물결이 파란 하늘을 출렁이고 있다. 반야봉의 손을 놓고 내달리는 백두대간은 몇 번 방향을 바꾸는가 하더니 천왕봉에서 불쑥 몸을 일으킨다. 달리는 몸이 무거웠을까. 한쪽 팔을 떼어 삼정산에게 나눠 주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삼신봉에게로 달려가 청학동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지리산은 참으로 포근하다. 설악산이 짙은 화장을 하고 있어 농염한 자태를 보이고 있는 30대의 요염한 도시의 여인이라면, 지리산은 값싼 화장품 하나도 바르지 않은 40대의 수더분한 시골 아낙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지리산을 오르는 이유는 지리산은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는 햐얀 쌀밥과 같은 산이기 때문이다.
4. 식사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반야봉을 내려서니 삼도봉이다. 예전에는 날나리봉이라고 부르던 작으만한 봉우리다.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에 있다는 핑계로 상당히 작위적인 삼도봉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제법 전망이 좋은 곳에 앉아 좀 늦은 점심을 먹는다. 모두들 소중이 짊어지고 온 배낭을 풀어 놓으니 제법 그럴듯한 밥상이다. 점심을 먹다가 돌아보니 한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음에 담아두고 싶을 만큼 정답다.
보온 도시락에 담긴 잡곡밥, 사각형 반찬그릇 속에 똑같은 크기의 작은 반찬그릇이 4개 담겨 있는데 거기에는 묵은 김치, 계란부침, 소지지 부침, 그리고 한 가지는 뭔가 잘 알 수없는 반찬이 담겨 있는데 반찬 그릇의 어디에도 반찬의 흔적이 묻어 있지 않고 아주 정갈하게 담겨 있다. 여자 분은 다른 보온병에 담아온 김치콩나물 국을 따라서 남편에게 내미는데 그 손길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저런 것이 바로 사랑이고 정성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여자 분은 남편보다 한 시간은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했을 것이다. 남편과 같이 지리산에서 먹을 생각을 하면서 즐거움과 정성스런 마음과 사랑으로
준비했을 것이다.
두 부부는 참으로 고귀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오른 천왕봉이 부러운 눈길을 보내며 흐뭇한 표정을 건넨다. 여자 분의 귀에서 반짝이는 귀걸이는 남편이 가난한 지갑을 털어가면서 적어도 1년 정도는 고이 모아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입하여 곱게 싸고 또 가다듬어 생일날 아침 아내의 화장대에 놓아 놓아두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 부부가 가난한 사람들이기를 바랐다. 서로에게 마음을 맡기며 서로에게 사랑을 심어가며 오순도순 삶의 아름다움을 채색해가는 그런 조금은 가난한 사람 말이다. 돈이 많아서 이것을 언제 쓰고 죽나하면서 되는대로 좋은 옷을 사다가 아내에게 안겨다 주는 그런 부부가 아니라 자신들이 품고 있는 희망이 잘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쪽으로 힘을 합해 보려는 조금은 가난한 부부 말이다.
그 아름다운 식사를 보면서 문득 아내와 둘이서만 산행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런 식사를 한 번 하고 싶었다. 산에 가는 즐거움이 여럿 있겠지만 이렇게 식사하는 즐거움이야말로 산행의 백미가 아닐까하여 다음 주에는 아내를 졸라 이런 점심을 준비하여 내장산 단풍 속에 확 빠져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단순히 점심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먹는 것이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요, 바로 삶의 의미를 느끼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5. 뱀사골의 환상곡
오백 몇 단이라는 지루한 계단을 밟아 내려서니 화개재이다. 사람들에게 짓밟혀 망가진 생태계를 복원해 보겠다고 노력하고 있는 곳이다. 울타리를 둘러놓고 보호하자고 외쳐보지만 정작 그 한 가운데 들어 앉아 걸판지게 점심을 먹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다. 쉽게 복원이 되지 않을 듯싶어 가슴이 아프다.
뱀사골 산장으로 내려오니 시원한 물줄기가 반긴다. 갈증을 달래려는 마음보다는 샘을 만났다는 마음으로 한 사발 마신다. 일련의 사람들이 뱀사골로 들어서고 있어서 좁은 산길은 분주하다.
막차를 지나면서부터 골짝은 옷을 갈아입는다. 어디에다 그렇게 많은 색깔을 감추어 두고 있었는지 산자락을 타고 오르는 숲은 화려한 춤을 추고 있다. 제승대를 내려설 무렵에서는 온갖 색깔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고 있다. 저마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받아가며 마음속에서 숙성시키며 갈무리해 두었던 색깔을 뿜어내며 가을의 한 복판을 타고 앉아 질펀한 곡조를 연주하고 있다.
붉은 물이 흘러 노랑색을 덮고 노랑색이 말간 계류(溪流)에 풀어져 뱀사골은 화려한 군무(群舞)를 추고 있었다. 가을 잎이 봄의 꽃보다 더 아름답다(霜葉紅於二月花 )고 노래한 만당(晩唐)의 시인 두목(杜牧)의 마음이 내 마음에 포개진다. 우리의 눈을 통해서 받아들인 가을은 마음 속에서 완성되는 것인가. 캔버스 앞에 앉아 붓을 들면 도저히 그릴 수 없는 그림이 단풍에 물든 산이라고 푸념하던 친구 화가 녀석이 생각이 난다. 뉴질랜드의 풍광(風光)에 미쳐 끝내 주저 앉아 버린 그 친구의 화폭에는 언제나 분홍의 복사꽃이 가득했다.
뱀사골은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사람들의 품으로 안기어 가고, 흘러 내리는 물소리도 목소리를 낮추어 가며 주변에서 끼어드는 작은 물줄기를 보듬어 제법 점잖아지고 있다. 오룡대에서 와운마을의 고요한 이야기를 들고 내려오는 급비탈길을 만난다. 지난 여름 와운 마을 천년 송 밑에서 내려다 본 골짝에 가득한 것은 제법 두껍게 깔린 고요였다. 골짜기를 거슬러온 바람 줄기도 힘을 잃고 명선봉에서 흘러내린 굵은 등성이도 해맑은 소녀의 미소마냥 부드러워지던 와운 마을의 한 낮의 한가로움이 불쑥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다.
산속에 들면 문득 밀려드는 고요가 나는 참으로 좋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행렬에 싸여 산에 들었고 또 산을 나오고 있지만 나는 내공이 깊은 무사(武士)가 자신의 몸을 강기(剛氣)로 에두르듯 산길의 혼잡함을 밀어내려고 애썼다. 그래서 간간히 빠져든 절대 고독의 시공간들을 엮어 낼 수가 있었다. 그것은 오늘 하루 동안 내 몸뚱아리를 포충망 속에 가두어 두었던 단풍의 울타리보다 실팍한 수확이었다.
오룡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누구랄 것도 없이 너른 길만 나타나면 그저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들의 틈바구니에 끼인 나도 발길을 높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오룡대를 지나면서부터는 계곡을 따라 걸으며 하루의 산행을 토닥이며 산속에서 산의 품에서 산과 같이 느끼고 호흡했던 이야기들을 가다듬어 튼실하게 엮어내야 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이 구간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그런데도 오늘은 거친 발걸음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가라앉은 마음과 식어가던 땀방울이 다시 흔들리고 이마에 흘러내려 산길을 나서며 느껴야 하는 카타르시스를 도저히 가지지 못한채 시커먼 포장도로에 나서고 말았다. 술이 넘쳐나고 지지고 볶아대는 냄새가 가득한 속세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이제 한동안 지리산은 마음속에 담아 두어야 할 것이다. 시선을 안으로 돌려 육중하고 도도한 지리산의 등성이를 떠올리며 울긋불긋 피어오르던 가을의 환상곡을 나즉이 불러볼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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