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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남덕유산 산행기

힘날세상 2009. 7. 31. 13:54

 

5. 남덕유산(전북 장수, 1042M)

 * 일 자 : 2005. 10. 03 월

* 동 반 자 : 우리 부부, 안근수 부부, 황선주

* 코 스 : 육십령 - 할미봉 - 서봉(장수덕유산) - 남덕유산 - 영각사

* 산행시간 : 아침 7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육십령에는 차가운 바람만이 몰아칠 뿐이었다. 그 바람 속에서 두 대의 자동차만이 산객들을 올려 보내고 아무 말없이 서 있다. 광장 한쪽으로 웅크리고 있는 휴게소의 건물도 초췌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

 

지리산에서부터 달려온 백두대간의 줄기가 이곳 육십령으로 내려와 잠시 바람과 어울어진다. 그러나 단풍잎 하나 제대로 물들이지 못하고 대간(大幹)은 할미봉 능선으로 내닫는다.

신들메를 고치고 배낭을 다시 꾸리고 하는 사이에 안근수님 부부는 차 속에서 아내가 준비해 온 아침 식사를 한다.

갑자기 서상쪽에서 밀려온 햇살이 육십령을 넘어 온다. 바람 속에서도 햇살은 말갛다. 서둘러 일행들을 올려 보내고 할미봉으로 향하는 대간의 들머리 사진을 찍고 산행에 나선다. 앞서간 일행을 따라 잡을 생각보다는 언젠가 백두대간을 아내와 같이 밟는 상상에 빠져 발걸음이 무디어진다. 갑자기 황소장이 되돌아온다. 내가 오지 않아서 웬일인가 하여 그렇단다. 나는 내 생각을 들킨 것 같아 얼른 말을 돌린다.

 

능선을 오르는 발길이 힘차다. 마라톤 클럽에서 만난 사이인데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또, 삶의 분위기가 맞아 같이 산행을 하기로 하였고 9월의 속리산행에 이어 남덕유산을 오른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자락을 온몸으로 맞서며 할미봉을 오른다.

1시간이 조금 지나 할미봉 정상에 선다. 세찬 바람 속에서 할미봉은 아기자기한 암봉을 드러내 놓고 우리를 기다린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남덕유산은 우리를 부르고, 남으로 힘차게 뻗어가는 백두대간은 이제 가을을 품어 화려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깃대봉 뒤로 영취산, 백운산이 힘을 돋우더니 한걸음에 노고단 반야봉을 뛰어넘어 천왕봉에 올라선다.

장안산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금남호남정맥은 제법 고도를 높여 마루금을 그으며 수분재를 넘어 팔공산으로 마이산으로 몸을 솟구친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봉우리들이 불쑥불쑥 솟아오르며 자기를 보아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건만, 그들의 외침은 이곳까지 다가오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잔잔한 물결을 이룬다. 그 물결 속에서 목소리가 큰 봉우리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내세우며 하늘을 향해 뾰족뾰족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무명봉의 잔잔한 출렁거림이 있기에 몇몇 산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우리들의 삶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인간사(人間事)의 답은 언제나 자연에 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이 시샘이라도 하듯 김진아님의 모자를 벗겨버린다. 절벽 밑으로 날아가버렸다는 판단에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고 있는데, 황소장님이 ‘그거 얼마짜리예요?“하며 빙긋이 웃는다. 순식간에 날아가는 모자를 낚아 챈 모양이다.

바위 봉우리가 이어지면서 간간이 보이는 전망에 발길을 붙들려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의 이야기들은 참으로 한가롭고 여유가 있다. 산행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아내가 얼굴을 활짝 편다.

밧줄을 타고 오르내리면서 앞에서 가는 황소장님이 두 여자들의 행보(行步)에 마음을 많이 쓰고 있다. 만약에 한 밤중에 이런 곳을 걸어야 한다면 조금은 신경을 세워야 할 것 같다. 대간을 즐기는 선답자(先踏者)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른 새벽이나 또는 밤을 이어 마루금을 밟아가던데, 그 길이 그분들의 산행기에 나와 있는 대로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 뜻대로 되지 않는 인간들의 삶의 궤적과도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해본다.

덕유교육원 갈림길을 지나면서 널따란 공터를 만난다. 허기에 지치기도 하고, 갈증도 달래야겠기에 배낭을 벗고 주저앉는다. 김진아님이 챙겨온 사과와 간식을 먹으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자식이야기, 직장이야기, 부모님이야기, 친구이야기, 돈이야기, 건강이야기, 마라톤이야기까지 온통 속세를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이 좋은 산에서 세속에 찌든 이야기는 내던져 버리고, 속(俗)한 기운들을 뚫고 우뚝 솟아오른 가을산의 이야기에나 귀를 기울여보자고 말했더니 글쟁이는 다르다고 한다.

산 속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세속에 대한 승리라고 호들감을 떨고 있으니, ‘산이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고 했다는 영국의 등산가 조지 맬러리의 경지(境地)를 밟아 보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산행을 해야 할 것인가.

아무것도 모르고 친구들끼리 무리를 지어 이산 저산으로 몰려다나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흘리고 다녔던 젊은 시절의 산행은 아무리 생각해도 진지한 맛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저 순간의 얄팍한 즐거움에나 빠져 아무런 목적도 없이 싸돌아다닌 것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어느 분이 산행을 음악에 비유하여 놓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처음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혼자서 음악에 빠지기 시작하여 이내 합창단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에서 염증을 느끼면 중창단을 만들고, 그러다가 독창의 즐거움을 만끽하다가 나중에는 듀엣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그렇다.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아내와 산행을 하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여럿이서 몰려다니는 산행은 별로 달갑지 않은 것을 보면 독창의 즐거움은 느끼고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부끄러움에 얼른 생각을 내려 놓는다.

 

서봉직전에서 전망이 좋은 바위를 만난다. 서봉과 남덕유산이 갑자기 두 팔을 벌려 우리를 감싸 안으려는 포즈로 달려온다. 성급한 녀석들은 붉은 색깔의 노래를 불러대기도 한다. 산자락을 훑어 올라온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고 느끼는데 어느덧 서봉 밑에 올라선다. 좌측 100미터 아래 샘이 있다는 이정표가 있다. 안근수님과 물을 뜨러 내려간다. 샘은 바위에서 솟아나는 석간수인데 참샘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다. 누군가 바위를 파내어 바가지가 들어갈 만큼의 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물맛이 그만이다. 사진기를 가지고 가지 않은 것이 후회막급이다. 이렇게 높은 능선에서 솟아나는 샘은 하늘이 내린 것이라는 생각이다. 만약에 이곳에서 샘이 솟지 않았다면 대간을 따라가는 많은 산객들의 목은 어떻게 축일 수가 있다는 말인가?

헬리포터를 이룬 서봉 정상에서의 조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선 북으로 육중한 몸을 일으키고 있는 백두대간의 포효와 그것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는 향적봉이 산객들을 향해 야릇한 눈웃음을 짓는다. 남으로는 백두산에서 뻗어온 정기(精氣)가 마지막 힘을 다해 일으켜 놓은 천왕봉의 웅자(雄姿)가 구름 속에서도 당당해 보인다. 지리산 100여 리의 능선도 어깨를 세우고 하늘을 끌어당기고 있다. 발밑으로는 뱀처럼 느릿느릿 백두대간을 넘어가고 있는 육십령이 가물거리고, 그 밑으로 호국(護國)의 여인 주논개의 얼이 서려 있는 장수읍이 납작하게 업드려 있다.

느닷없이 폰이 울린다. 강연희님이다. 중앙마라톤대회에서 최고 기록을 노리고 있는 까닭에 오늘 클럽의 풀코스 연습주에 참여하는 이유로 덕유산 산행에 참여하지 못해 아쉬워 전화했단다.

한 시가 넘었으나 서봉 직전에서 빵이며 과일이며 마구 먹어댄 탓에 점심식사를 뒤로 하고 남덕유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서봉 정상이야말로 점심식사 장소로는 최고일 듯하다. 지난 달 속리산 산행에서 잡았던 점심식사터를 잊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이곳을 지나치는 것이 아쉽기만하다.

손에 잡힐 것 같이 가까운 남덕유산이지만 서봉에서 길고도 긴 철사다리를 내려서고도 한참이나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한다. 그래서 30분 이상을 걸어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는 때 이른 가을산행에 나선 사람들이 조망을 즐기고 있다. 서봉에서 조망을 충분히 즐겼기 때문에 남덕유 정상에서는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주변의 단풍 감상에 빠진다. 영각사쪽 하산길로 이어지는 암봉에 서둘러 피어난 단풍이 제법 곱다.

하산길로 잡았던 월성치 쪽으로 내닫는 능선길이 뚜렷하건만 시간이 늦을 것 같아 영각사로 하산하기로 한다. 건너편 암봉을 점심식사를 할 곳으로 정하고 하산을 서두르는데 수녀복 차림으로 정상에 올라온 2명의 수녀와 카톨릭인 황소장이 담화를 나눈다. 황소장을 앞세우고 건너편 암봉을 올라보니 하산길목이다. 도저히 그곳에서는 식사를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철사다리를 내려갔다가 올라가고 다시 내려가다가 적당한 곳을 찾아 밥상을 펼친다.

버너를 피워 아내가 준비한 불고기를 익힌다. 고기가 익기도 전에 복분자부터 한 잔씩 나누어 마시는데 모두들 즐겁다. 오늘도 점심은 아내가 준비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아내의 손길이 참으로 고맙다. 산에서의 점심은 언제나 그렇듯이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모두들 늦은 점심이었고 자리도 불편했으나 달콤한 복분자와 더불어 느긋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였다.

하산길은 참으로 고즈넉했다. 우리가 식사하는 틈에 먼저 내려갔던 수녀님들의 일행을 중간에서 만나 동행하였다. 원평과 장계 성당에 계시는 분들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영각사에 차를 두고 온 것 같았다. 육십령까지 차편을 얻어 타고 가 볼 생각으로 분위기를 잡는데 다리쉼을 한다며 뒤로 처진다.

한참을 내려서니 영각사 매표소이다. 산행 뒷정리를 마치고 기다리는데 수녀님 일행이 내려오지 않는다. 그냥 슬슬 걷기로 하고 큰길로 나섰다.

느닷없이 김진아님이 달리자고 한다. 지난번 속리산에서 달려보더니 이제는 하산길은 달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다. 안근수님은 차를 히치하여 육십령으로 가고, 여자들은 벌써 저만큼 달아나고 있다. 나는 황선주님과 뒤로 쳐저서 달리는데 죽을 맛이다. 어떻게 하여 트럭을 얻어 타고 여자들이 있는 곳까지 갔다. 마침 안근수님이 차를 가지고 왔는데 그냥 달리자는 것이다. 나는 차를 타고 셋이서 큰길까지 달렸다. 대단한 체력들이다.

화심에서 <두부마을>이라는 식당에 들어가서 안근수님이 마련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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