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리산
1 일자 : 2005. 7. 20
2 인원 : 아내와 나
3 코스 : 백무동 - 장터목 - 천왕봉 - 세석 - 한신계곡 - 백무동
4 산행지도
지리산에는 햇살이 살고 있었다.
바람소리를 따라 가슴패기를 파고든 것은 온통 말갛기 만한 햇살이었다.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놓고 그 날카로운 햇살의 바늘 끝을 부여안고 만년의 세월을 이어가고 있는 지리산(智異山) 능선의 한 지점에서 섰다는 이유 하나로만 지리산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치졸한 산행의 족적을 그리고 있는 것은 결혼 20주년을 보내면서 우리들이 살아가가는 의미를 찾아보려고 했던 우리들로서는 그 미약한 발걸음이나마 지리산 등성이에 올려놓았던 마음을 그냥 가슴에 담고만 있기에는 감동의 깊이가 꽤 깊었던 까닭이다.
같은 시공간(視空間)에서 스무 해를 살아왔지만 뭐 하나 특별히 내세울만한 것이 없었던 삶이었기에, 5년 동안 마라톤에 심취해 있었다는 이유를 내세워 어떻게 되든 제1회 전주 100km 울트라마라톤대회의 주로(走路)를 밟아가며 우리들이 이어 왔던 삶의 그래프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뜻하지 않았던 수술로 인해 물거품이 되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달리는 것마저도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답답하고 아픈 마음일 뿐이다.
지리산 휴양림의 통나무집
쉬고 싶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 뜻과 어긋나기만하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던져 버린 채로 지리산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2박 3일의 일정으로 들어선 지리산 휴양림은 참으로 신선의 세계였다. 이미 산등성이 너머로 내려 앉아 버린 햇빛이 남겨 놓은 어스름한 여운을 의지하여 고요가 넘실거리는 임도를 걷는 마음은 삶의 무게를 조금도 느낄 수 없어서 좋았다. 어둠이 숲에서 그 치맛자락을 펼쳐내기 시작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현실의 울타리로 돌아왔다. 밤을 이어가며 흐르는 계류(溪流)의 부드러운 노랫소리가 점점 가느다랗게 느껴지면서 우리들은 지리산의 품에 안겨 들었다.
7월 20일 백무동의 아침은 그냥 아름답다는 말로만 전해야 할 것 같다. 조금이라도 주관적인 묘사를 하려다가는 하늘이 내린 축복을 흩어 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나는 말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주차장에서 산행의 채비를 하는 동안 만끽하였던, 우리들의 마음까지 짓눌러버릴 것 같은 초록의 고요였다. 중요한 것은 그 고요함이 무인공간(無人空間)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산꾼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주차장에는 아침을 먹고 있거나 우리처럼 산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지만 모두 진초록의 진기(眞氣)에 젖어 다소곳이 고요를 쌓아가고 있었다.
대형버스가 한 무리의 등산객들을 내려놓으면서 우리들이 쌓아놓았던 고요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아내는 등산객들의 모습이야말로 삶의 활기(活氣)라고 말한다. 마음을 돌려 생각해보면 그도 그럴 것 같다.
매표소에서 입산신고서에 서명을 하고 나니 6시 40분이다. 몇 걸음 걷다가 야영장을 지나며 하산길이 될 한신계곡으로 향한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몸을 돌려 작은 계류를 따라 아내를 앞세우고 천왕봉 등정길에 나선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는 숲의 얼굴은 참으로 싱그럽다. 부지런한 다람쥐가 푸른 이끼를 뒤집어쓰고 있는 바위 등걸에 앉아 두 발을 비벼대며 아침을 열고 있다. 지난 밤 동안 점령군처럼 숲을 뒤덮었던 어둠을 밀어내며 일어서는 하늘말나리의 얼굴이 참으로 함초롬하게 다가온다. 낮으막한 목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계류(溪流)가 인간세상의 속(俗)한 기운을 말끔히 씻어 주었을 쯤에 하동바위를 만난다. 30여 년 전에 처음으로 지리산의 품속을 파고들던 그 때, 불쑥 일어서며 내 앞을 가로막던 거대하고도 도도했던 모습이 아직도 내 의식의 심층부에 잠재해 있건만, 오늘의 하동바위는 왠지 정겨운 웃음을 흘리고 있다.
몇 걸음 더 올라가서 한 바가지 가득 담아 마신 참샘의 물맛을 상당히 오랫동안 간직해 두어야겠다며 아내는 주변을 두르고 있는 목책(木柵) 위에 끊임없이 찬사를 늘어놓고 있다. 아내의 기분은 이제부터 치고 올라야 할 소지봉의 가파른 허리쯤은 능히 꺾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힘에 겨운 발걸음으로 소지봉 등허리를 밟아 오르자 진초록의 나뭇잎 위에서 미끄럼질 치던 아침햇살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땀으로 범벅이 된 터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부드럽게 느껴진다. 그 부드러움의 가운데에서 천왕봉이 육중한 모습을 하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망바위에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오르던 대구에서 오신 부부와 반야봉이 시원하게 바라다 보이는 바위에 같이 앉게 되었다. 손을 뻗으면 장터목 산장의 지붕이 잡힐 만한 거리다. 사진기를 향하는 두 분의 얼굴에 사랑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행복의 선율이 줄줄 흐른다. 귤 두 개를 내미시는 여자 분의 손목이 참으로 곱다. 그 분들이 먼저 자리를 뜨자 아내는 푸념을 끄집어낸다.
“나도 저렇게 한 번 살아 봤으면 좋겠다. 아마 저분들은 사랑으로 밥 말아 먹으며 살 거야.”
아내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20여 년을 같이 살면서 아내의 눈에 눈물이 맺히게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희열이 가득한 웃음으로만 채워주지는 못한 것 같다. 늘 모자라는 살림을 꾸려가면서도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던 아내가 새삼 예뻐 보인다.
아내와 같이 5년 동안 마라톤을 하고 있다.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면서 아내는 늘 힘든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물질적인 풍부함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황혼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달렸다. 대학입시를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는 아이들의 고통을 마라톤을 통하여 나누기도 하였다. 두 아이가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가 버린 둥지를 바라보며, 우리들은 우리들의 가슴 안쪽에서 늘 고향 하늘과 같은 눅진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산줄기와 맑은 계류를 일깨웠다. 이제 우리는 다시 산으로 돌아온 것이다.
장터목으로 오르다가. 반야봉의 실루엣이 좋다
장터목은 많이도 변했다. 커다란 모습으로 도도하게 서 있는 건물 밑에 발전실이라는 이름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남아 있는 옛날의 산장을 보다가 그만 울컥 솟아나는 그리움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고통스러운 역사의 능선을 걸었던 70년대 후반 폭우를 피해 몰려 들어갔던 콩나물 시 루 같았던 그 축축한 시멘트 바닥의 감촉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장터목을 지나 제석봉을 오른다. 남원에서 오셨다는 할머니 한 분이 약간 힘들어 하는 걸음으로 고사목 지대를 오르고 계신다.
“젊었을 때는 날아 다녔는디 나이가 들어서 못 올라가겠어. 그래도 죽기 전에 몇 번이나 올지 몰라서 올 여름에도 올라오는 거여.”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73세라는 나이를 뛰어넘는 힘이 담겨 있었다. 먼저 가라는 할머니의 손사래를 뒤로 하고 우리는 제석봉을 넘어 통천문(通天門)을 지난다. 철계단을 밟다말고 멈추어 선 아내가 불쑥 입을 연다.
“아이들 생각이 나네. 그 때는 여기까지 희희낙락거리며 잘도 올라왔었는데...”
초등학교 3,4학년이던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신 지계곡을 따라 천왕의 품에 안겼던 그 날, 아이들은 시종일관 입을 놀리며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을 이야기하였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처럼 자신들의 꿈을 이어가겠다고 다짐을 하였건만, 대학생이 된 녀석들은 단 1미터도 걸어 올라가지 않으려고 한다.
▶ 햇살이 살아 있는 천왕봉에서
천왕봉에는, 1915m의 천왕봉에는 햇살만이 살고 있었다. 돌을 던지면 쨍하고 금이 갈 듯 푸르른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살이 제각기 의지를 가지고 천왕의 자락을 밟아 오른 사람들의 정수리에 뜨거운 화살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누구 하나 햇살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고 있다. 아내는 천왕에 오른 사람들 모두가 불피이락(不避而樂)의 경지에 들어간 것 같다고 속삭인다. 한여름 한낮의 햇살을 즐기는 기분을 후텁지근한 속세의 물결에 휩싸여 헐떡이고 있는 산아랫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 줄을 모르겠다.
발길을 돌려 장터목으로 내려온다. 내려오는 발걸음을 멈추고 백두산을 향하여 용틀임을 하고 있는 지리능선을 슬몃한 눈길로 쓸어 본다. 제석봉에서 촛대봉으로 내달아 한걸음에 탐스러운 반야봉을 껴안고 뒹글더니 노고단을 하이얀 구름을 끌어 당겨 살며시 덮어 놓고는 서북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언제나 그렇듯이 장터목은 활발하다. 그야말로 장터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장터목 산장의 처마 밑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점심이래야 아침에 삶아온 고구마 두어 개와 김치와 고추장을 버무려 김에 둘둘 말아온 것으로, 김밥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한 것이다. 그래도 땀방울에 범벅이 되고 보니 제법 맛을 낸다. 먹을 때마다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님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라 콧마루가 시큰하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하산길을 잡아야 할 것 같다. 배낭을 꾸리고 산희샘으로 물을 뜨러 갔는데 어찌된 일인지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탁한 물이 나오고 있다. 누군가가 파이프를 건들어 버린 모양이다. 모두들 안타까워하고 있다. 세석까지 참고 가기로 하고 남은 물을 아내와 한 모금씩 나누어 마셨다. 아내더러 다 마시라고 내밀었는데 거기에서 조금 남겨서 건넨다. 아내의 손목에 내려앉는 햇살이 참으로 곱게 느껴졌다.
걸음을 빨리하여 연하봉을 지나 촛대봉에 도달하였다. 촛대봉은 커다란 바위 봉우리이다. 내려다보는 세석산장의 권태로운 일상(日常)이 왠지 가슴에 담아 두고 싶어진다. 세석 평전을 덮고 있는 관목(灌木)위로 미끄러지고 있는 한낮의 여름이 모든 움직임이 멈추어 버린 듯한 고요를 흘리고 있는 탓이다. 나는 퍽이나 고요를 좋아한다. 미명의 시간에 어둠을 걷어내며 숲속에서 흘러나오는 고요는 늘 다이아몬드의 영롱함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지금 눈 앞에서 힘을 과시하고 있는 한낮의 고요는 오랫동안 의식의 심층부를 지배할 것 같다.
“두 분이서 사진 한 장 찍으세요.”
두껍게 쌓여 가던 고요의 층을 허물어 버린 것은 바위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두 분의 여자분들이었다. 어제 화엄사 코스를 올라 벽소령에서 한 밤의 정을 나누고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여정을 잡았다고 한다.
“산은 살살 달래야 합니다. 서두르면 안 되지요. 몸은 산을 지났다고 해도 눈과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면 그것은 진정한 산행이 아니거든요.”
느릿한 산행을 하는 것 같다고 말을 건넸을 때 빨간 모자를 쓰고 계신 중년을 넘긴 듯한 분이 되돌려 주시는 말이다. 그것은 철학이었다. 산을 향할 때마다 내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싶은 철학이었다.
세석 산장의 물맛은 힘을 실어 주었다. 사실 갈증으로 몸부림친 것은 육신이었지만, 시원한 물줄기는 정신까지 맑게 해주었다. 낙남정맥을 밟아 왔다는 대구의 아저씨와 물을 나누어 마시면서 정(情)도 나누어 마신다. 이제 호남정맥만 남았다고 하시는 그분께 여건이 허락하면 동행하자는 말을 하였더니 대환영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산의 넉넉함이 몸에 배어 버린 것 같다.
한신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제법 가파르게 이어진다. 3시가 넘었으나 우리는 여유를 부리며 골짜기 안에 가득한 오후의 한가로움을 즐긴다. 처음으로 계류를 만날 즈음 갑자기 소란스러워 진다. 진주 대아중학교 학생 150여명이 무리지어 올라온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혀 보려는 마음으로 지리산에 들어섰다고 한 학생이 답한다. 2학년 학생치고는 제법 깊이 있는 학생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속마음까지 비추어 낼 것 같이 맑은 계류가 따라오며 노래를 불러 주는 까닭에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룰루랄라 내려오는데, 어느덧 5층 폭포다. 다섯 굽이로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수의 거친 함성에 젖어 한동안 눈길을 붙들어 매고 내려다 본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고 노래하던 김수영 시인의 ‘폭포(瀑布)’라는 시구(詩句)가 생각난다. 폭포를 바라보며 정의를 이야기하는 시인의 마음을 흉내 내어 한신계곡이 만들어낸 폭포마다 정의와 진리의 마음으로 들여다본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폭포수 같이만 맑고 깨끗하다면, 이 세상은 한 번 살아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한신계곡의 폭포
참으로 오랜만에 애무(愛撫)해보는 지리산이다. 그 흐벅진 속살을 핥아 진하디 진한 오르가즘을 느껴보려는 마음으로 지리산의 품으로 파고들었는데, 역시 지리산은 참 쫄깃한 맛으로 다가왔다. 산등이에서만 살고 있는 햇살의 거친 손길과, 연하디 연한 진초록의 부드러운 속살거림은 토악질 나는 인간세상에서 비틀거리던 우리들에게는 세상을 향해 주먹질쯤은 해댈 만큼의 힘을 실어 주었다.
산은 어디서나 살아 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투정, 불평, 시기, 멸시, 그리고 발길질 속에서도 산은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로 자기를 짓밟고 있는 우리 인간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다.
산이 있어 인간은 살아간다.
2005.07.20 힘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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