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기행 10
선운사 골짜기로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Y형!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 자락에서 풍겨 나오는 비릿한 갯가의 내음 너머로 보이는 것은 온통 거대한 돌무덤의 군락(群落)뿐입니다.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일면(一面)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너무나 거창하게 밀집되어 있는 이 돌무덤 앞에서 우리는 신발끈을 묶고 있습니다. 밋밋한 산자락을 따라 저마다 고개를 들고 있는 이 거대한 돌무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그 옛날 어느 족속(族屬)을 거느렸던 우두머리들의 무덤이라고만 말하기에는 가슴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감동이 지나치게 큰 까닭입니다.
이 거대한 돌무덤은 고인돌, 지석묘(支石墓), 돌멘(Dolmen). 또는 거석(巨石, Megalith)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보면 고인돌과 지석묘는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석묘라는 용어는 한자(漢字)로 보아 고임돌이 있는 무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인다’는 것은 ‘떠받든다’는 뜻으로 거기에는 정성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돌을 이용하였다는 사실은 그 거대한 돌 속에 무엇인가 신비로운 기운이 담겨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지 않을까요?
어쩌면 고대인들은 거대한 돌을 하나의 신(神)으로 보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거대한 돌의 안 쪽 깊은 곳에 인간을 지배하는 정령(精靈)이 담겨 있어 인간의 생활을 지배하고 이끌어 간다는 소위 애니미즘(Animism) 말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마을 입구에 우뚝 선 채로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선돌(立石)과 함께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이끌었던 거석문화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고인돌 군락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서해안의 갯바람을 한아름 안고 선운사(禪雲寺)까지 달리는 내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거대한 돌무덤들이었습니다. 좀 더 확대해 보면 고대인들은 거대한 돌무덤 속에 자신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은 숫자의 돌무덤이 군락(群落)을 이루며 모여 있겠습니까?
고인돌은 고창읍 죽림리 화실봉(해발 400M) 자락의 매산 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1,764m 범위 내에 442기가 분포되어 있으며, 파괴되고 매몰된 108기를 합하면 모두 550여기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축조 과정에 대한 신비로운 눈길을 거두고 그것이 하나의 삶 자체였다고 생각하며 바라보니, 한 마디 말도 없이 무표정하게 서 있는 돌무더기들이 갑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분위기로 일어섭니다. 어쩌면 그렇게 앉아 있는 모양도 제 각각이고, 바라다 보는 눈길의 방향이 다른 것인지 참으로 신기합니다.
학자들은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구분하고 놓여진 위치에 따라 계층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동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라고 생각해 보고 싶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고인돌은 살아 있었습니다. 생생한 얼굴을 들어 역사를 분명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이렇게 고인돌이 살아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면 억지가 될까요?
Y형!
고인돌 공원에서 선운사로 가는 길은 참으로 한적한 곳입니다. 2차선 도로가 낮으막한 고개를 느릿느릿 넘어가기도 하고 손바닥만한 방죽을 희롱하며 지나가기도 합니다. 날씨 또한 달리기하기에 참으로 적당한 날씨여서 고즈넉한 도로를 달리는 우리의 기분은 참으로 좋습니다. 한가로운 곳만을 찾아서 달리다 보니 자동차 길 막아 놓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꺼번에 달리는 대규모 마라톤 대회는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코스가 시골길로 이어진다고 해도 주자들 간에 경쟁의식을 가지고 달리고, 기록 단축을 위해 달리다 보면 달리는 동안은 내가 지배하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주최측사람들과 달리는 사람들에게 나의 모든 것을 저당 잡힌 채, 오직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하기에 달리는 코스 주변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자연의 이야기는 이미 나의 곁에 머물 수 없는 먼 나라의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시골의 좁은 논길을 발끝에서 피어나는 봄내음과 함께 달리며, 그 곳의 아름다운 경치만큼이나 소박하고 구수한 노인네들의 입담에 젖는 즐거움은 조용히 찾아가는 마라톤 기행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느껴 볼 수 없는 참으로 고귀한 여정(餘情)입니다.
Y형!
선운사 입구에 들어서면서 나는 미당(未堂)의 시 한 수를 떠올려 봅니다. 왠지 미당이 그런 마음으로 지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달리기는 대학 시절에 보았던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새빨간 동백꽃의 도도한 자태를 다시 한 번 느껴보자는 셈속이 아내와 맞아 떨어진 결과물입니다.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 미당(未堂) 서정주, 선운사 동구(洞口) 전문(全文)
아내는 작년 것만 남은 동백꽃은 너무 처량하여 싫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자신이 미리 그려놓은 새빨간 동백의 이미지를 마음 안쪽으로 키워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역시 미당(未堂)은 참으로 대단한 시인이라고 다시 한 번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 화려한 동백꽃과 목이 쉰 막걸리집 작부(酌婦)의 한(恨) 많은 육자배기 가락을 이어 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놀라울 시적 상상력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언제나 미당의 시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선운사 대적광전 뒤에 늘어 서 있는 동백은 이제 더 이상 대학시절에 보았던, 그 새빨간 도도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빛이 바래고 기운을 잃어버린 조금은 추레한 얼굴로 그저 서 있을 뿐입니다. 아내는 서운하다고 말합니다. 아니 안타깝기까지 하다고 합니다.
그랬나 봅니다. 미당이 보았던 그날의 동백이 이렇게 초라한 모습이었는가 봅니다. 이 추레한 동백이 타오를 것처럼 피어올랐던 미당의 감정을 쉬어버린 목소리로 부르는 막걸리집 작부의 육자배기 가락으로 돌리게 했나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돌아보지도 않았을 쉬어 버린 목소리로도 육자배기 가락을 토해내야 하는 막걸리집 아낙의 삶은 분명 빛 바랜 조각입니다. 그러나 그 조각은 그녀의 고통스런 삶이 진득진득하게 묻어 있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입니다. 붉은 빛이 좀 바랬다고 서운한 마음만 토로했던 우리들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 속에서 솟아나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Y형!
부끄러운 마음에 도망치듯 선운사를 빠져 나옵니다. 그래도 미당에 대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미당 시문학기념관으로 향하여 달려갑니다. 다리를 건너서 이어지는 도로는 봄기운이 가득합니다.
미당시문학관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뒤쪽으로 이어지는 질마재 마을의 낮은 언덕을 바라보며 <질마재 신화(神話)>라는 시(詩)에서 이야기했던 ‘재곤(在坤)’이라는 앉은뱅이를 생각합니다. 스스로 먹고 살기가 힘든 ‘재곤’이를 보면서 '재곤이가 만일에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人情)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罰)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고 생각하면서 그의 삶을 책임져 주었던 질마재 사람들의 순박한 생활태도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합니다.
미당의 시는 늘 하늘에서 살아 있습니다.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그리운 임은 하늘의 그믐달로 살아 있고[동천(冬天)], 질마재 마을의 재곤이는 거북이로 살아 있으며[질마재 신화(神話)], 정열의 춘향은 도솔천의 도련님 곁에[춘향 유문(遺文)], 우리 민족의 역사를 지켜 보았던 광화문은 하나의 소슬한 종교로[광화문(光化門)] 인간 세상이 아닌 하늘에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미당의 시에서 나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젊음의 뒤안길에서 가슴앓이를 하며 인생의 눅진눅진한 맛을 씹어 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서 살아 있습니다.
미당의 생가(生家)에서 만난 마을의 한 노인은 가래가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미당이 여그서 낳았지. 근디 요즘이나 되어서 저렇게 건물도 짓고 사람들도 오지, 전에는 아무도 몰랐지. 하이튼 여그가 명당은 명당이여어.그 사람 하늘로 올라갔을 것이고만.”
Y형!
미당시문학관에는 미당의 초상화가 하나 걸려 있습니다. 모든 기운이 입으로 모여 있는 듯한 초상화 앞에서 나는 미당이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듯하여 한참이나 서 있어야 했습니다. 금방이라도 한 마디 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미당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라는 찬사(讚辭) 뒤에 따라 다니는 친일(親日)이라는 굴레에 대한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미당은 서해 바다가 밋밋이 내려다 보이는, 자신이 태어난 마을에 고즈넉하게 앉아 아무 말없이 바다만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녔던 모든 것을 유리 진열장에 내려 놓은 채, 미당은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갯바람을 맞으며 아무런 말도 없이 서 있을 뿐입니다.
Y형!
인촌(仁村) 김성수님의 생가(生家)까지 달리려던 생각을 접었습니다. 아무래도 미당의 시구(詩句)를 담아 놓은 마음을 얼마 동안은 간직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내 의식의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었던 사람으로부터 전혀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사람들까지 만나면서 사람을 다른 각도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정관념에 젖어 고루한 관념만을 가지고 있을 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 인정(人情)과 문득 만나게 되었던 일을 많이 겪었던 까닭입니다.
Y형!
거대한 고인돌과 더불어 살았던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이어오는 우리들은 모두다 같은 인간들이었습니다.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우리 삶의 공간들은 모두 동심원을 이루고 있으며, 우리 삶의 시간들은 모두 동일한의 패러다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오늘의 달리기는 가르쳐 주었습니다. 옆에서 땀을 흘리며 달리는 아내는 술집여자가 쉰 목소리로 부르는 육자배기 가락에 담겨 있을 한(恨) 맺힌 사연을 반추(反芻)해 보느라고 오늘의 달리기는 여념(餘念)이 없었다고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결국 인간들의 삶의 본질을 모두 같지 않을까요? 계절의 변화에 자신들의 마음을 채색(彩色)해 보고, 세월의 흐름 앞에서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삶의 시간들을 윤이 나도록 닦아 내놓으려 하는 것이 우리들 인간들의 보편적인 자세라고 말한다면 억지가 될까요?
Y형!
달리기를 하면서 깨우친 매우 두드러진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물에 도(道)가 있다고 설파(說破)한 노자(老子)의 철학입니다. 도(道)가 있는 곳을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에게 각자가 신고 있는 신발 속에 도(道)가 있다고 말한 노자의 말에 공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발 밑에 부딪치는 돌멩이 하나에도 모두 존재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은 바로 달리기였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 하나에도 내 생각을 매달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도 바로 마라톤이었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어디선가 목쉰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을 들은 것 같아 주변을 둘러 보았으나, 서해바다를 끌어 안고 잠을 청하는 새빨간 노을 위에 어느새 어둠만 슬몃슬몃 내리고 있었습니다. 힘날세상 2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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