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기행

12 칠갑산 굽이마다 인정(人情)은 넘치고

힘날세상 2009. 7. 30. 09:59

마라톤 기행 12

 

칠갑산 굽이마다 인정(人情)은 넘치고

 

 

Y형!

우리의 삶을 안고 이어지는 산하(山河)를 찾아 달리는 마라톤 기행의 즐거움에 젖어 새록새록 쌓아 놓은 정(情)의 부피를 제법 두텁게 느끼면서 오늘도 연보라 빛의 달리기를 이어갑니다. 늘 그렇듯이 달리기는 나의 속(俗)한 마음을 지우고 무엇인가를 채워주는 까닭에 언제나 내 삶의 영역에서 살아있습니다. 달리기를 통해서 꼭 무엇을 얻어 보려는 마음은 아니지만, 이 고요한 새벽의 말간 시간을 위한 화두(話頭)를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달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칠갑산(七甲山) 자락을 따라 면면히 흐르는 인간들의 정(情)을 더듬어 달리며, 자신들과, 자신들 삶의 시․공간(時空間)을 절대자(絶對者)의 품에 의탁하며 칠갑산 굽이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껴 보려고 합니다.

 

Y형!

정산면 지서 앞 공터에 차를 세우고 신들메를 고쳐 매는데 울긋불긋한 연등(燃燈)을 거느리고 날렵한 자태로 우뚝 솟아 있는 9층 석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탑은 논 가운데에 아무 말도 없이 외롭게 서 있습니다. 주변에 너른 평지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나, 탑의 규모로 보나 탑을 세운 고려 때에는 제법 규모가 큰 절이 있어, 부처님의 자비를 온 누리에 베풀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나라에서 9층탑은 흔하지 않은 양식입니다. 경주 황룡사의 목조탑은 화마(火魔)에 휩싸여 버렸고, 오대산 월정사에 있는 팔각 9층탑이 그 맥(脈)을 잇고 있을 뿐입니다.

탑은 하늘을 향한 인간들의 고귀한 소망(所望)입니다. 우리들이 발붙이고 살아가는 지상과 절대자의 세상인 하늘을 연결하는 수단으로 정성을 모은 것이 탑이라고 생각하다가, 정산리 9층탑이 보물 제18호로 지정된 것은 석탑 자체의 가치보다는 탑에 담겨 있는 그 시대 사람들의 정신을 높이 사고자 하는 후손들의 마음이라고 감히 단정을 해봅니다.

오색(五色) 연등을 늘어뜨리고, 이 땅에 자비로움을 베풀어 탁세(濁世)를 살아가는 가엾은 생명들을 구제하기 위해 사바세계(裟婆世界)로 오신 부처님을 봉축(奉祝)하고 있는 정산리 9층탑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했을 정산 사람들의 삶을 돌아다 봅니다.

정산은 36번 국도와 39번 국도가 교차하는 곳으로 1914년에 청양에 흡수되기 전에는 오히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중심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숙소를 찾기 전에 면사무소 경내에 있는 면향정을 둘러보다가 만난 송학리에 산다는 노인은 청양에서는 장승(長栍) 구경이 으뜸이라고 말합니다.

“아, 청양까지 왔으면 골골마다 세워 놓은 장승을 구경해야 하는 겨어. 장승을 세우면서 마을사람들의 마음까장 묶어서 세워 놓는 것이구만. 송학리, 용두리, 천장리, 대치리 말헐 것도 웂이 아, 가는 곳마다 널려 있는 것이 장승이란 말여어. 정월 보름에 왔으면 굿도 볼만했을 턴디”

Y형!

정산에서 청양으로 이어지는 36번 국도는 칠갑산의 맑은 정기(精氣)를 따라 숲 속으로만 파고 듭니다. 좁다랗게 이어지는 골짜기를 돌아가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두껍게 자리 잡고 있는 고요의 성벽을 허물어 갑니다. 행여 새벽잠에 빠져 있는 다람쥐라도 놀랄까봐 우리는 발소리를 죽여가며 달립니다. 30분쯤 달려 땀이 돋기 시작할 즈음에 휴게소의 너른 마당에 무리를 지어 서 있는 장승들이 그 큰 입을 벌려 우리들을 불러 세웁니다. 어린아이 다리통 정도밖에 안되는 것부터 두 아름은 넘을 듯한 거대한 몸체를 드러내고 서 있는 모습이 저마다의 독특한 자세로 굿이라도 한바탕 벌인 듯한 표정입니다.

장승의 얼굴을 마음에 담고 한티고개를 오릅니다. 도로는 새로 뚫은 대치터널로 이어지지만 우리들은 옛길을 밟아갑니다. 짙은 초록의 나래를 두르고 스멀스멀 말간 기운을 토해내는 이른 새벽의 고갯길은마치 신선(神仙)이라도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아내는 곰티재가 생각난다고 말합니다. 그 옛날 전주에서 진안으로 갈 때 넘어가던 고갯길로, 지금은 모랫재에 밀려 사람통행이 거의 없는 호젓함만 키우고 있지만, 평화로운 국토를 짓밟아 오던 일본군을 물리친 임진년(壬辰年)의 함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하늘을 가릴 정도의 숲 속 길이 3km 이상 이어지고 있어 전주마라톤클럽의 언덕 훈련 코스로 이용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고갯길을 오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고개에는 민중들의 삶의 애환이 스며 있습니다. 그 어느 이름모를 사람들의 눈물과 가슴 저림이 한(恨)이 되어 고갯마루 나무 등걸이나 바위 그늘에 일그러진 모양으로 가라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대로 아픔입니다. 그대로 그리움이고, 그대로 삶의 한 조각입니다. 아내는 고갯길을 달릴 때마다 치마폭을 들어 올려 눈물을 씻는 가련한 한 여인의 모습을 본다고 말합니다.

 

Y형!

한티고개 정상은 칠갑광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광장은 아닙니다만 내려다 뵈는 풍광(風光)은 누구에게 이야기 해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듯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는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역사를 이야기하며, 세상을 이야기하며, 소박한 인정(人情)을 이야기하며 끝없이 자라나고 있는 바로 우리들의 삶입니다.

광장 한 쪽에 면암 최익현 선생이 두 눈을 부릅뜨고 높은 좌대에 앉아 있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격분하여 <포고8도사민(布告八道士民)>이라는 포고문을 뿌리며 의병을 일으켰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마도에서 생의 종지부(終止符)를 찍었던 면암 선생을 대하고 보니 갑자기 옷깃이 여며집니다. 선생의 제향(祭享)을 이 곳 청양의 모덕사(慕德祠)에서 모시는 인연으로 이 곳에 동상을 세운 모양입니다. 올곧은 삶을 사신 분들은 어디서나 존경과 우러름을 받는 것을 보고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을 새겨 봅니다.

익현은 정성이 모자라고 힘이 미약하여 이미 병에 걸려 죽지 못해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순국으로써 백성의 의기를 고취하지 못하니, 하늘을 우러러 보아 부끄럽고 살아서 우리 수천만 동포를 대할 수 없고 죽어서 지하의 이공을 뵐 수도 없도다. 이에 나의 비루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삼가 오늘날 시국의 대세를 보고 들은 바대로 간략하게 이 글을 지어 우리 전 관리와 백성에게 포고하노니 오직 원하는 것은 우리 관리와 백성 익현이 죽어가면서 하는 말은 가볍게 버리지 말고 각자 스스로 면려하여 저놈들로 하여금 결과적으로 민족말살을 못하게 하면 천만다행이라, 시급히 해야 할 일을 다음에 열거하노라.

- 최익현, 포고8도사민(布告八道士民)에서

 

Y형!

맑디맑은 새벽 기운을 품고 진초록의 고요를 살몃살몃 흘리며,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청초(淸楚)한 얼굴로 우리의 발길을 맞아 주는 칠갑산(七甲山)은 원래 ‘칠악산(漆岳山)’으로 불려졌다고 합니다. 그러 다가 백제 때 산천숭배사상(山川崇拜思想)으로 명산대천에 제례하는 행사가 국정의 큰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거국적으로 칠갑산(七甲山)이란 신선한 이름으로 개칭하게 되었습니다. 즉, ‘七’자는 천지만물이 생성한다는 ‘七元星君’ 또는 ‘七星’과도 같은 風, 水, 和, 火, 見, 識을 나타내고, ‘甲’자는 천체 운행의 원리가 되는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으뜸을 상징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금강 상류가 되는 지천(支川)을 굽어보고 있는 까닭에 일곱 명의 장수(將帥)가 나올 ‘甲’자형의 일곱 자리 명당을 품고 있어 칠갑산(七甲山)이라 불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칠갑산이 제법 영험(靈驗)한 산으로 다가오는 듯하다며 아내는 칠갑산 정상까지 내달리자는 말과 함께 벌써 몇 걸음 달려 나갑니다. 처음에는 칠갑산에 오를 계획이 없었는데 정상으로 향하는 부드러운 흙길을 보자 생각이 달라졌던 모양입니다.

우리는 소위 ‘산장로’라고 불리는 밋밋하고 부드러운 오르막을 달려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산행에 나선 사람들이 반바지 차림으로 달리는 우리들을 힐끗힐끗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리의 발걸음은 이미 흥(興)에 젖어 버린 뒤인지라 한달음에 정상까지 내달았습니다.

 

Y형!

칠갑산 정상은 평평하고 너른 공간이 있어 조망(眺望)이 참으로 좋습니다. ‘칠갑산 산악마라톤 7.7km지점’이라는 팻말이 작은 칠갑산 방향을 가리키며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산악마라톤을 한 셈입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내다뵈는 초여름의 투명한 하늘 아래 옹기종기 엎드려 있는 마을마다 정갈한 사람들의 정(情)이 물씬물씬 묻어 날 것만 같습니다. 561m의 낮으막한 산이기에 산 밑에 있는 마을의 정자나무 아래서 막걸리 잔을 부딪치며 도란도란 삶을 나누는 투박한 이야기 소리가 들려 올 것도 같습니다. 서울로 시집간 막내딸의 고달픈 시집살이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눈물을 적시고 있는 어느 홀어머니의 한(恨) 많은 노래 가락이 금방이라도 능선을 타고 기어오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 속삭이듯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칠갑산 상상봉(上上峰)을 뛰어 놀다가 느물느물 작은 칠갑산의 등어리를 긁어 댑니다.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정상에서 내려오며 다시 봐도 한티고개는 여전히 짙은 초록의 물결입니다. 스쳐가는 맑은 기운이 아쉬워 내리닫는 발길을 붙잡아 매며 우리는 길을 아껴가며 달립니다. 벌써 두 시간이 훨씬 넘도록 달렸는데도 조금도 피로한 기색이 없습니다. 아마 대회에 나섰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는 다 내다 버리고 오로지 기록만을 생각하며 내달렸을 것이고, 피로감은 차치하더라도 이 아름다운 자연과의 대화는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Y형!

한티고개를 내려서 36번 국도를 버리고 645번 지방도로로 접어들어 오늘 달리기의 종점인 장곡사로 향합니다. 10km도 채 남지 않은 2차선 도로는 부처님 오신 날이라서 그런지 차량행렬이 많아 조심스럽게 달립니다. 장곡사 입구에 들어서니 그곳은 장승들의 세상입니다. 별별스런 표정으로 우리를 맞아주는 장승들을 바라보다가 뭔가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리면서 마주 친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장승에서 느꼈던 소박한 인정(人情)이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장승과 솟대는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가교(架橋)입니다.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하늘까지 추밀어 올려 보려는 마을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투박한 얼굴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용두리, 대치리에서 보았던 장승은 단순하고 어설프지만 우뚝 솟아 있는 솟대와 진대와 같이 마을 사람들의 정성과 마음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곳 장승공원에 늘어 서 있는 장승들은 왠지 미적인 감각만을 내세운 듯하여 작위적(作爲的)인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아내는 나의 이런 푸념에 대해 수많은 장승들이 연출해 내는 다양한 표정들을 한꺼번에 대하는 즐거움도 하나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장승에 서려 있는 마을 사람들의 기원(祈願)은 장곡사 부처님에게로 이어집니다. 부처의 자비가 혼탁한 세상을 씻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절을 찾은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는 비빔밥을 한 그릇 받아 법고(法鼓)와 목어(木魚)가 걸려 있는 운학루(雲鶴褸)에 앉았습니다. 대웅전(大雄殿)이 둘이나 되는 장곡사(長谷寺)는 참으로 특이한 절입니다. 세상이 워낙 탁(濁)하다 보니 부처님도 두 분씩이나 모신 모양입니다. 이 땅에 대자대비(大慈大悲)로 오신 부처님을 올곧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으로 대웅전에 색색의 연등(燃燈)을 매단 사람들의 생활 속에 부처님의 법도(法道)가 살아 있기를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내려다보이는 저 많은 사람들이 속세의 더럽혀진 마음을 내려 놓고 칠갑산 맑은 기운을 담아 활력이 넘치는 세상을 열어가기를 빌어 보는데, 장승의 부릅뜬 눈망울을 타고 노랫가락이 어렴풋이 들려 옵니다.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2004.5. 힘날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