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기행

13 들꽃 같은 그리움을 위하여

힘날세상 2009. 7. 30. 10:04

마라톤 기행 13

 

들꽃 같은 그리움을 위하여

 

Y형!

햇살의 끝이 제법 날카로운 오후의 끝자락을 잡고, 나는 부안댐 위에 앉아 정수리까지 가득 담긴 맑은 물을 바라봅니다. 지평선(地平線)을 이루며 달리던 만경평야가 마지막 힘을 모아 솟구친 변산(邊山)! 산줄기는 오직 맑고 정갈한 기운을 더불고 첩첩한 산골짜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숨겨진 비경(秘境)을 따라 흐르던 물줄기를 담아 이루어 진 청아(淸雅)한 호수의 한적(閑寂)함 속에는 넉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서해바다를 토닥이며 달려온, 속살같이 부드러운 바닷바람이 서리서리 자리잡고 있습니다. 새벽을 버리고 늦은 오후를 택하여 달리는 이유는 변산반도의 말간 기운이 서해로 흘러 붉은 그리움으로 타오르는 해질녘의 거창한 군무(群舞)를 한 번 보고 싶은 까닭입니다.

 

Y형!

댐은 커다란 힙입니다. 실낱 같이 가느다란 물줄기가 모아 거대한 호수를 이루어 낸 댐은 무한한 미래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다를 가로질러 33km나 되는 둑을 쌓는 새 만금 사업도 분명히 미래에 대한 의미 있는 다짐인 것입니다. 갯벌의 생태계를 짓이기는 일이어서 결국은 우리들의 삶의 공간까지 갉아 먹게되는 어리석은 일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에도 힘은 실려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 미지의 공간 위에 쌓아갈 우리들의 창의적인 삶의 모습도 분명히 역사의 한 줄기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인생도 하나의 거대한 댐을 막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순간의 필요성에 좌우되는 즉물적(卽物的)인 안목보다는 유기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내는 결정체(結晶體)를 볼 수 있어야 인생의 맛을 제대로 느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Y형!

이제 여름의 세상입니다. 아직은 염제(炎帝)가 그 진면목(眞面目)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우리들은 이미 여름이 뿜어내는 열기(熱氣)에 젖어 버렸습니다. 여름은 언제나 특별한 내면 세계를 열어 놓습니다. 아니, 나는 여름에만 들여다보는 또 다른 그리움의 세계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에는 말없이 서해를 내려다 보고 있는 변산반도를 더듬어가며 시간의 흐름 속에 가라앉아 있는 그리움의 실체를 가만히 건져 봅니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 김소월, ‘산유화(山有花)’에서

나는 나를 감싸고 있는 그리움의 실체가 소월(素月)이 노래한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작은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하나의 들꽃 같은 것일지라도 내 마음 속에 갈무리해 두고 있습니다. 그 작디작은 들꽃은 가녀린 눈망울을 들어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 맑은 하늘을 담아 내고 있는 까닭입니다. 또한 그리움 속에서 아름드리 피어 나는 들꽃의 미미(微微)한 향은 내 삶의 분명한 기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Y형!

댐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하여 등허리에 땀이 맺히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바람모퉁이’라는 낮은 언덕을 하나 넘어갑니다. 그 옛날 부안(扶安)이 낳은 신석정(辛夕汀) 시인의 시비(詩碑)가 서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해창(海倉) 포구를 핥아대는 갯가의 비릿한 바람이 부딪쳐 알알이 부서지는 바로 이 자리에 시인은 우두커니 서서 어느 먼 나라를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그 ‘먼 나라’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먼 나라’에 가고 싶어합니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 소리 구슬피 들려 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에서

사람들은 신석정 시인과 조선의 여류 시인 매창(梅窓), 그리고 내변산의 깊은 계곡 속에서 ‘곧은 소리’로만 떨어지는 직소폭포(直沼瀑布)를 들어 ‘부안 삼절(三絶)’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서화담과 황진이의 애틋한 사랑을 박연 폭포의 아름다움에 비겨 ‘송도 삼절(三絶)’이라고 하는데, 이 곳 부안의 수려(秀麗)한 절경(絶景)과 신석정 시인의 순수한 시심(詩心), 그리고 매창의 애절(哀絶)한 그리움의 노래를 그냥 따로따로 담아 두기에는 너무나도 간절(懇切)한 정(情)이 넘쳐 났던 모양입니다.

 

Y형!

새 만금 방조제가 시작되는 곳을 지납니다. 지도를 바꿔야 할 정도의 대역사(大役事)이건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그 진척 속도가 참으로 더딥니다. 환경 파괴를 내세워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까닭이지요. 그런데 요즈음 바다를 막아 조성한 이 넓고 넓은 땅에 온통 야생화를 심자는 의견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고 아내는 말합니다. 원시적 아름다움을 지닌 들풀이기에 우리에게 다가올 감동의 두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야생화의 세상!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찾아올 것 같지 않습니까? 야생화의 세상을 말하는 아내는 이미 들꽃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들풀의 향이 직접 코끝을 스칠 것 같은 기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변산해수욕장이 추레한 모습으로 맞이합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못 하나 마음대로 박을 수 없었던 탓에 그 아름다운 해변과 고운 모래가 거의 흉가(凶家)나 다름없이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진실한 본질(本質)보다는 화려한 현상(現象)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이 불편한 바닷가를 찾아 올 리가 없는 까닭입니다. 다행한 것은 국립공원지정이 해제되었으므로 이제 변산은 잠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관광 부안’을 외치며 군민들이 모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고 있기 때문에 변산반도는 곧 고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 올 것입니다.

 

Y형!

고사포 해수욕장을 지나며 해안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르막이 심하게 이어지지만 발길을 돌려 해안을 달리는 이유는 바닷가에 묻혀 있는 오후의 시간들을 줍고 싶은 까닭입니다. 그러나 기실은 은빛 햇살을 반짝거리며 통랑(通郞)한 걸음을 걸어 찬란한 황혼(黃昏)을 장만하고 있는 서해바다 싱싱한 수면 위로 가만히 솟아나는 얼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Y형!

그녀는 그렇게만 내게 남아 있습니다. 서해바다 깊은 곳에 그 맑은 영혼을 가라앉혀 두고 그녀는 항상 그리움으로만 자신을 드러냅니다.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월명암 처마 끝에서 바라보던 곱디고운 황혼 속으로 그녀는 한 마디 말도 없이 한줌의 재로 사라져갔습니다. 불과 23년의 시간을 이어 가면서도 그녀는 한 떨기 작은 들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저만치’ 떨어진 곳에 다소곳이 서서 여린 눈동자로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삶을 조각조각 나누어 한 권의 노트에 담는 일이 그녀의 전부였습니다. 그녀가 남긴 것은 오직 하나 그리움입니다. 언제까지나 빛을 잃지 않을 투명한 황혼 같은 그리움 말입니다. 그녀는 세상을 그리워했고, 하늘을 그리워했으며, 서해를 태워 버릴 것 같은 황혼을 그리워했습니다.

 

시간은 / 어느 바다에서도 / 멈추지 않는다고 재촉하고. //

빛을 잃어 가는 / 하늘을 걸어 / 이제 / 들꽃 같은 마음을 올려놓아야 할 때. //

한 번은 / 꼭 한 번은 / 붉은 빛의 노래를 불러 / 짙은 황혼이 바다를 다독거리는 그 때 /

나 또한 한 소절 남은 이야기는 남겨 놓으려는데.

- 그녀, ‘내 황혼(黃昏)’

‘이 고운 황혼은 사라지지 않는 거야. 오직 우리들의 마음속으로 정갈하게 가라앉는 것이지……. 그래서 세상을 미워하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이 말을 남겨놓고 들꽃 같은 마음을 하늘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황혼(黃昏)으로 남았습니다.

 

Y형!

부안(扶安)은 이제 드라마의 산실(産室)입니다. 부안군 일대의 해안에는 민족의 가슴으로 이어지는 충무공의 정신이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상록 해수욕장에는 임진년의 처절한 전투를 재현한 발자국들이 즐비하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이순신의 불호령이 그래도 남아 있습니다. 문득 바다를 바라보다가 인간의 본성(本性)은 시간을 초월하여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두텁게 쌓인 세월의 더미 속에서도 한 가닥 끈으로 이어지는 나라사랑의 정신을 우리는 고스란히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맥(脈)을 이어가는 것인가 봅니다. 면면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의식은 한 순간도 멈출 수 없고, 또 그래서 고귀한 부가가치(附加價値)를 이루어 내는 것인 모양입니다.

달리기는 그런 면에서 인생과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의 떠들썩한 이야기 소리가 넘쳐나는 동네의 고샅을 달리거나, 소나기가 가득한 들길을 달리거나,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한길을 달리거나 그곳은 사람들의 숱한 애환(哀歡)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길가에 쌓여 있는 사람들의 삶의 궤적(軌跡)들을 밟으며 나 자신의 인생항로를 다져가는 달리기야말로 바로 우리들의 삶 그 자체가 아닐까요?

 

Y형!

변산반도는 굽이굽이 산자락으로 이어져 조선 명종 때의 역술가(易術家) 남사고(南師古) 선생이 전쟁을 피할 수 있을 만한 십승지지(十勝之地)로 꼽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골이 깊은 까닭에 봉래구곡(蓬來九曲)이라는 아름다운 골짜기를 흐르던 맑은 물줄기는 수직으로 떨어져 직소폭포를 이루고, 굽이굽이 백천내를 돌아 서해로 스며들어가며 참으로 빼어난 풍광(風光)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절승(絶勝)을 자랑하던 산하(山河)가 있기에 반계 유형원(柳馨遠, 1622 - 1673)은 변산반도 우반동(愚磻洞)에 은거하여 후학(後學)을 양성하며, 임진왜란으로 고통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고 무너진 국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획기적인 개혁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반계수록(磻溪隧錄)을 통해 토지를 바탕으로 하는 중농사상(重農思想)을 내세우며, 토지를 개혁하여 균등한 세제(稅制)를 확립하고, 신분의 세습을 타파하기 위하여 과거제를 폐지하자는 등, 국가 제도의 전반적인 개혁을 주장하였습니다. 반계(磻溪)의 이

러한 개혁 사상은 결국 구체적인 제도로서의 실사(實事)와 보편적 인도(人道)로서의 천리(天理)를 하나로 조화시키는 것입니다. 지금도 부안 사람들은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선생을 잊지 못하고 동림서원(東林書院)에 모시고 제향(祭享)을 하며 마음으로 추모(追慕)하고 있습니다.

 

Y형!

곰소만의 그윽함이 가득히 느껴질 즈음에 우리의 발길은 모항 해수욕장에 도달했습니다. 아주 작은 규모이나 갯벌해수욕장으로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곳입니다.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앉아 있으려니 진득진득한 기운을 잔뜩 담은 바람이 불어옵니다. 아주 진한 황혼(黃昏)을 기대하였으나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저 하루 종일 서해의 청아(淸雅)한 시간 속으로만 돌아다니다가 모항의 소나무 숲에 깃을 접으려는 바람자락에서 미미하게 풍겨나는 그녀의 향(香)을 느낄 수 있었던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리쳐 부르면 반가운 손짓을 할 것만큼 적당히 떨어져 앉은 곰소항이 우리들의 달리기를 빼꼼히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시골 아낙네의 수더분한 모습으로 내려 앉은 곰소항은 그래도 젓갈을 내세워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손바닥만한 포구(浦口)를 낮게 날고 있는 몇 마리 갈매기들의 낄룩거리는 울음소리와, 짠 반찬 마리나 사러 나온 아낙들과 좌판을 벌이고 있는 아가씨가 벌이는 흥정을 듣고 있노라니 인

정(人情)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를 지어 봅니다.

“앗따, 아줌마 안되야아. 글먼은 나는 멋이 남으라고 그려 쌓는디야. 참말로.”

“하이고오. 아가씨가 너무 허네 그려. 아, 여그까장 일부러 사러 왔고만, 아 암말 말고 한 마리 더 주랑게 그려.”

“ 아 많이 주었당게 그려. 나도 좀 남어야지. 글먼 다음에 또 와요이잉.”

절대 덤을 주지 않을 것 같던 아가씨는 한 순간에 마음을 바꾸어 생긋 웃으며 비닐 봉지에 조기 두 마리를 더 넣어 줍니다.

어느 덧 어둠이 자리를 넓혀 가고 있습니다. 건너편 염전에서 열심히 소금을 담고 있던 부부도 이제는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15일 동안 땀을 흘려야 깨끗한 소금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도 요즈음에는 중국산에 밀려 질 좋은 곰소 천일염의 가치가 자꾸만 떨어져 걱정이라고 말합니다.

“자 봐. 바닥에 타이루를 쪽 깔았잖아. 이게 이러면 안 되는 거여. 제대로 맹글려면 사금파리를 깔아야 소금이 숨을 쉬는 것인디, 요새 사람들은 깨끗한 것만 찾으닝게 이렇게 허는 것이여. 소금이 숨이 죽었당게. 그리도 아직은 이 소금이 제일이여. 아, 곰소 젓갈이 왜 좋은 지 아는가? 여그 소금으로 담으닝게 그런 것이고만. 어쪄? 한 가마니 살텨? 15,000원인디. ”

 

Y형!

오늘은 참 무거운 발걸음으로 달렸습니다. 진홍빛으로 타오르는 황혼(黃昏)을 보지 못한 탓인지, 땀을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기운이 빠지는 듯 싶습니다. 그러나 서해바다에 그리움으로 살아 있는 그녀의 마음을 따라 이어놓은 시간에 힘입어 세속(世俗)의 탁한 흐름을 거슬러 갈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2004.6 힘날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