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기행

15 변화의 물결을 따라, 인정(人情)의 발길을 따라- 북경 달리기

힘날세상 2009. 7. 30. 10:10

마라톤 기행 15

 

변화의 물결을 따라, 인정(人情)의 발길을 따라

 

Y형!

북경의 새벽을 깨우는 것은 저마다의 일터로 향하는 힘찬 발길입니다. 찬란하게 떠오른 태양이 빌딩의 숲 사이를 헤치며 저공비행을 시작하기 훨씬 이전부터 거리는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작은 공원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는 부부, 긴 칼을 들고 체조하고 있는 노인들, 활기찬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옥수수를 가득 싣고 땀을 흘리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 농부, 종종걸음으로 출근을 서두르고 있는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 터질 것처럼 승객을 태우고 다가온 버스를 향해 돌진하는 젊은이. 중국은 더 이상 ‘만만디(慢慢的)’의 나라가 아닙니다. 중국 사람들은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습니다. 중국은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진원지(震源地)입니다.

 

Y형!

공원은 그야말로 운동하는 사람들의 세상입니다.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많을 줄을 몰랐다며 아내는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우리는 공원의 가장자리로 이어지는 폭이 좁은 오솔길을 따라 달렸습니다.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나무들 사이로 밀려오는 바람이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같은 동양(東洋)의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더니 아내도 동의합니다. 마라톤을 처음 시작한 1999년 이후로 우리는 많은 시간과 공간을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흉리(凶裏)를 타고 넘나드는 상념(想念)의 끈을 한 가닥 가지고 달리게 됩니다. 말하자면 의식의 교감(交感)이라고나 할까요?

나란히 달리고 있는 부부가 있습니다. 우리는 발걸음을 빨리 하여 그들과 나란히 달립니다. ‘안녕하세요? 달리는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우리는 달리기를 잠깐 멈추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내가 하는 중국어가 어설프기 때문에 중국인 부부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한 모양입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자주 달리시는 모양이죠?’ 복장으로 봐서 마라톤 매니아는 아닌 듯하였으나 단순히 복장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의 매일 달립니다. 북경마라톤을 목표에 두고 봄부터 달리기 시작했지요.’ ‘북경마라톤, 정말 달려보고 싶습니다.

이제 마라톤은 세계 공통언어입니다. 부부가 같이 달리면서 느끼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했으나, 나의 중국어로는 도저히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꼭 입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공원을 달렸습니다. 30분 정도를 달린 것으로 보아 5km 이상은 족히 달렸을 것입니다. 온 몸으로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우리는 길가에서 밀전병을 사서 하나씩 나누어 먹었습니다. ‘북경 마라톤 대회에 꼭 오십시오.’ ‘저도 북경 시내를 달리고 싶습니다.’ 왕주창(王周彰)씨 부부의 눈가에 흐르는 정(情)을 가슴에 담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던 우리는 달리기를 통해서 하나의 시․공간(時空間)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Y형!

왕부정(王府井) 거리는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였습니다. 밤이 제법 깊었건만 거리를 수놓은 젊은이들의 발걸음은 힘이 있었습니다. 덩달아 외국인들까지도 북경의 밤을 만끽하며 거리에 가득차 넘실거리는 젊음을 부등켜 안고 있었습니다. 북경의 연인들은 자신들의 연정(戀情)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역시 젊음은 아름답습니다.

1978년 등소평(鄧小平)이 ‘중국의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有中國特色的社會主義)’라는 이름을 내걸고 ‘개혁(改革)과 개방(開放)’ 정책을 펼치면서 중국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국의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有中國特色的社會主義)’라는 용어는 자본주의 경제정책을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중국이 공산주의를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100년 후에는 다시 공산주의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자본주의 맛을 본 중국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의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有中國特色的社會主義)’라는 정책이 경제 활성화의 초석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사람들에게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향락(享樂)도 가져다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향락(享樂)’을 얼싸안고 왕부정 거리는 오색찬란한 불빛을 밝히고 있으며, 그 불빛 밑에서 중국의 젊은이들은 서구화(西歐化)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던 왕부정 거리는 살아 있었습니다. 밤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썩힌 두부, 뱀 튀김, 전갈꼬치,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있는 중국 사람들과 약간 일그러진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는 외국인들, 그리고 새까만 색깔의 썩힌 두부에 용감히 도전했다가 구역질을 해대는 사람들, 왕부정의 밤은 즐거움 그 자체였습니다. 지역이 다르고 사람이 달라도 젊음은 역시 아름답습니다. 휘청거리고 있는 이 사람들과 이 공간에서 삶이 시작되어 익어가고 결실을 맺어갈 것입니다.

Y형!

거리를 휘황찬란하게 밝히고 있는 홍등(紅燈)을 바라보다가 중국 사람들이 달에서도 보인다고 큰 소리치고 있는 만리장성을 생각합니다.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성벽에 서서 내가 생각한 것은 이처럼 거대하고도 무모한 성벽을 쌓아 올린 황제들과 그들이 휘두르는 채찍에 살갗이 터지고 머리가 으스러져 죽어간 수도 없는 백성들이었습니다. 아내는 성벽을 이루고 있는 작은 벽돌을 말합니다. 벽돌 하나하나는 볼품없고 나약한 것이지만 그것들이 한 덩어리로 모였을 때 발하는 그 거대한 위력을 그려보니, 왜 우리가 중국을 두려워해야 하는가를 이해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고 두려워하는 만리장성의 성벽에 서서 나는 왜 자신들과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성벽 밑에서 죽어간 불쌍한 민초(民草)들을 생각해야 하는 걸까요? 지도자들의 영욕(榮辱)에 짓눌려 자신의 삶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접어야 하는 힘없는 백성들은 누가 위로해 줄 것인지 참으로 가슴이 미어집니다.

 

Y형!

공원을 빠져 나와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아주 분주합니다. 출근시간이 시작된 까닭입니다. 하늘을 찌를 것처럼 솟아 있는 빌딩의 숲을 빠져 나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고급 자동차의 물결을 바라보며 아내는 탄성을 내지릅니다. ‘누가 여기를 중국이라고 하겠어요? 2008년 북경 올림픽이 기대가 되네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made in china'를 내려다 봐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전거 전용 도로를 가득 메운 채 페달을 밟고 있는 중국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힘차게 밟아대는 저들의 발길이야말로 가난을 벗고 세계로 향하는 웅비의 날개가 돋아나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중국을 이끌어 가는 힘의 원천은 바로 저 이름 없는 민초들이었습니다. 바로 만리장성의 성벽 밑에 무덤도 없이 묻혀 있는 힘없는 백성들 말입니다. 그들은 무덤도 없습니다. 명나라 13명의 황제가 묻혀 있다는 무덤은 결코 무덤이 아니라 하나의 호화 별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하 궁전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습니다. 자신의 별장을 만들기 위해 서태후가 해군력을 동원하여 건설했다는 이화원의 인공호수 곤명호(昆明湖)는 차라리 바다였습니다. 한 사람의 허황된 욕심과 권위의식으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짓밟히고 가난에 허덕이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역사는 그러나 그들을 기억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스쳐지나갈 따름입니다.

 

Y형!

천안문(天安門) 광장에 섰습니다. 좌우에 인민대회당과 역사박물관을 거느리고 널따랗게 가슴을 펴고 있는 천안문(天安門)은 그대로 중국의 본질입니다. 북경을 찾는 사람들이 중국을 이야기하고, 중국 사람들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중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人波)들은 자신들의 가슴에 품고 있는 상념(想念)에 젖어 자신들의 관점(觀點)으로 현대 중국의 참모습과 천안문 너머로 이어지는 자금성(紫禁城)에 담긴 중국의 정신을 향해 호기심어린 눈길을 던지고 있습니다.

 

8월의 천안문 광장은 뜨거운 햇살이 내리고 있습니다. 1989년 북경대 학생들의 시위로 시작된 민주화 요구가 인민해방군들의 무차별 발포로 무산되고 말았던 천안문 사건을 생각하며 천안문 광장을 바라봅니다. 문득 광주의 금남로와, 금남로를 가득 메웠던 광주 시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갑니다. 이 넓은 광장을 가득 메웠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바람처럼 사라진 듯하여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탱크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 실종되어 버린 민주화 정신을 생각하며 나는 중국의 정신이라고 불리는 작가 노신(魯迅)과 그가 지은 <아Q정전(阿Q正傳)>을 떠올립니다. 수 천 년을 이어오고 있는 낡은 관습과 고통의 현실에 억눌려 정신까지도 문드러져버린 중국 인민들의 봉건적인 삶을 어떻게든 벗겨 내야한다는 사명감으로 노신은 ‘阿Q’라는 한 인물을 산고(産苦) 끝에 출산합니다. 모욕을 받아도 저항할 줄을 모르고 오히려 머리 속에서 '정신적 승리'로 탈바꿈시켜 무능한 자기를 합리화해 버리는 ‘阿Q’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떠올리며, 더 이상 중국에는 ‘阿Q’ 같은 인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천안문 광장에서 타올랐던 민주화의 정신은 중국 젊은이들의 마음속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봅니다.

Y형!

넓은 영토와 오랜 역사가 어우러져 이루어 내는 중국의 관광자원은 향후 중국이 내세울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될 것입니다. 용경협(龍慶峽)이라는 곳에서 265m나 되는 길고도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느꼈던 점은 지하 자원보다도 값진 것이 관광자원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발전을 위한 댐보다는 오직 깎아지른 듯한 산세(山勢)에 호수를 만들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려는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용경협의 시퍼런 수면 위를 유람하면서 탄성을 질러대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자금성(紫禁城)은 사람들을 압도하는 분위기로 다가옵니다. 그 넓고 넓은 자금성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그 웅장한 규모와 거대한 건축물 앞에서 감탄의 함성을 토해냅니다. 나는 우리의 경복궁을 생각합니다. 자금성이나 경복궁의 본질은 겉으로 드러나는 건축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통치(統治)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우리의 궁궐을 나는 사랑합니다. 그러나 자금성은 웅장하고 거대함을 내세워 세계를 향한 손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여행을 안내 해준 김국봉(金國奉, 30세)씨는 중국의 관광 정책이 외국인들의 편의를 반영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10년 이내에 중국의 관광수입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입니다. 그것은 중국 사람들이 관광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이제 외국인들을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Y형!

여행의 참된 재미는 가공되지 않은 현지(現地)의 실상(實像)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치장하고 인위적으로 꾸며 놓은 관광지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의 현장을 나는 좋아합니다. 작년 겨울에 해남도(海南島)에서 만났던 ‘려홍(黎紅)’이라는 아이의 눈망울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도 그것이 꾸민 것이 아닌 실상(實像)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침 달리기에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바로 꾸미지 않은 실상(實像)을 보았습니다. 채소시장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시장은 역시 시장이었습니다. 억양이 높은 중국어를 사용하며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과 시공간(時空間) 같이 한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청각의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사람냄새가 나서 좋습니다.

‘왜 이 무가 안 좋다고 하느냐? 값을 깎으려는 수작이 아니냐?’ ‘이 옥수수야말로 내가 열심히 농사 지은 것이오. 한 번 먹어 보시오.’ ‘그러지 말고 좀 깎아 주시오.’ ‘나도 남는 게 있어야지.’ 정확한 뜻은 모르겠으나 나의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얻어 들은 내용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하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싸울 것 같았던 그 분들은 이내 웃는 얼굴로 물건들을 사고 팝니다. 옥수수를 팔던 늙은 아낙의 웃음이 환하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삶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정(人情)입니다.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사먹는 튀김 같은 빵이 맛있게 보여 골목에 있는 노점에서 한 개를 샀습니다. 젊은 주인은 옆에 있는 통을 열고 찍어 먹으라고 말합니다. 아내가 망설이고 있었지만 나는 얼른 그 통 속에 빵을 푹 넣어 양념을 듬뿍 찍었습니다. 그리고 냉큼 베어 물었습니다. 아! 나는 지금도 그 독특하고 견디기 어려웠던 향(香)을 잊지 못합니다. 아내는 백 리나 천 리나 멀리 도망가버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빵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습니다. 주인이 엄지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나도 그에게 아주 맛있다고 한 마디 해 주었습니다.

갑자기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싫다는 아내를 설득하여 우리는 골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골목은 지저분하고도 아주 좁아서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였습니다. 양 옆으로는 더 좁은 골목이 수도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성냥갑 같은 집들이 골목에 연이어 다닥다닥 붙

어 있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을 본 듯하여 마음이 짠하였습니다. 그 좁은 골목에서 한 사내가 세수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가 씻어 내고 있는 것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가난이기를 바랬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아주 작은 가게가 있습니다. 다 합해도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 몇 개 안 되는 물건들이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골목에서 나온 한 아이가 가게 안을 기웃거립니다.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공책을 사야한다는 내 손에 달걀을 하나 쥐어 주었습니다. 학교 앞 가게에서 무슨 죄인인 양 눈치를 보고 있을 양이면 가게집 아저씨는 귀신같이 내 마음을 알아챘습니다. 그리고는 내 손의 달걀을 받아 갔습니다. 나는 조금 전의 부끄러움을 다 떨쳐 버리고 시원한 마음으로 공책을 한 권 집어들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가난은 정말 지독하게도 우리를 쪼아 댔습니다.

‘네 이름이 뭐야?’ 나는 해남도에서 만난 려홍(黎紅)의 눈망울을 생각하며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겁먹은 표정으로 골목 안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학교 앞에서 빵을 나누어 먹으며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말하던 ‘려홍(黎紅)’의 얼굴이 가슴속에서 클로즈업되어 왔습니다. 골목길을 나오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북경의 거리를 거닐면서 확인한 것은 중국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Y형!

낯선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오히려 낯선 곳에서 편안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아내는 그것을 역마살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행은 늘 힘을 주었습니다. 무디어진 내 삶의 좌표에 엑센트를 심어 주었습니다. 1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마라톤 기행을 하면서 우리는 부부의 정(情)을 새록새록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문경 새재의 고갯길에서, 화개장터의 맑은 숲길에서, 동학혁명의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황토현에서, 향일암에서 일출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자연이 베푸는 혜택을 수용할 수 없을 만큼 만끽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페이지에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은 여행지에서 느꼈던 소박한 인정(人情)이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삶에는 크고 작은 애환(哀歡)이 담겨 있고, 그 삶의 애환(哀歡)은 바로 내 인생의 곡선 위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마라톤 여행을 위한 생각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힘날세상20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