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에서
작성일 2002-01-30 오후 8:29:05
海雲臺!
느닷없이 해운대에 가게 되었다. 정말 처음으로 부산에 간 것이다.
부산!
굉장히 겁먹고 갔으나 별것 아니더군요. 지도하나 손에 들고 시내를 다 휘젓고 다녔지요. 을숙도, 태종대, 자갈치시장, 광안리 해수욕장, 민락회타운, 그리고 해운대까지 다 뒤집으며 돌아다니다가 해운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경.
한국콘도에 여장을 풀고 민락회센터에서 잡아온 횟감을 안주삼아 백세주를 마구 마셨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마를 마주대고 고가 어떻고, 피박이 어떻고 할 때에 밖으로 나갔다.
백사장에 늘어선 불빛이 퍽 아름답다고 느낄 때쯤에 옆구리를 파고드는 파도의 속삭임이 환한 웃음을 짓는다.
길게 이어진 백사장, 대충 1킬로는 넘을 것 같고 1.5km는 못될 것 같다.
뛰어 보면 될것아닌가?
대략 7분 정도 걸린다. 그렇다면 약 1.2km 정도가 될 것 같다. 복장을 갖추고 나오지 않아서 불편하지만 다시 원점으로 달려서 돌아온다.
콘도 앞에로 돌아와 미포항의 어선을 바라보고 있는데 두 사람이 달려온다. 복장을 보니 마라토너이다. 즉시 그들을 따라 달렸다.
" 혹시 마라톤클럽 훈련입니까?"
" 클럽은 아니고 늘 달리는 곳이지요."
"전 전주마라톤클럽 회원인데요. 놀러왔다가 내일 아침에 달릴 곳을 물색하는 중이죠."
" 제가 안내해 드릴께요. 달맞이길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사전에 조사한 자료에서 익히 보았던 곳이다. 달려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다.
기차 건널목을 건너자 달맞이길이 시작되고 이내 오르막이 이어진다.
"여기를 자주 달립니까?"
" 매일 하루도 안 빠지고 달립니다."
" 아니 지금 시간이 11시가 다 되어 가는데---"
" 일을 마치고 나면 이 시간밖에 시간이 안나죠."
"어디에서부터 달려서 어디까지 달립니까?"
"동백섬 부근에서 시작하여 달맞이 고개를 넘어 왕복 약 15킬로 정도입니다."
오해피데이라는 찻집 부근까지 약 10분 정도 달리면서 우리 클럽 얘기와 전군대회를 소개했다. 전군대회는 경주대회 참가로 오지 못한다며 내년을 기약한다.
해운대의 밤풍경은 휘황찬란하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남녀가 어깨동무를 하고 바라보며 사랑을 고백하기에는 충분하였다.
아침 7시.
어젯밤에 늦게 잠을 잤지만 새벽을 밀어 올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즉시 복장을 갖추고 복도에서 스트레칭을 하였다.
그리고 주로에 나섰다. 해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다.
두손을 마주잡은 젊은 커플, 느릿한 발걸음을 옮기며 주름진 얼굴에 인생을 담고 있는 노부부. 그리고 무더기로 떠들고 있는 젊은이들, 좁은 길을 달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새우깡과 커피를 팔고 있는 할머니들.
가볍게 달려 동백섬에 이르렀다. 동백섬. 조용필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동백섬을 따라 2차선 도로가 나있고 많은 사람들이 달리고 있다. 대부분 아침 운동을 나온 동네분들이었다. 섬을 한바퀴 도는 길은 900미터가 조금 더 된다. 다섯바퀴를 돌았을 때 해가 구름을 헤치고 떠오른다. 달리기를 멈추고 해를 바라본다. 여러가지 상념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봤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정상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있어서 한 번 달려봤다. 길이 가팔라서 힘이 든다. 정상에는 베드민턴을 즐기는 분들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신라의 인물인 고운 최치원 선생의 동상이 서있다. 그 분이 가야산에 들어가다가 나라가 기울어져가는 것을 한탄하며 이 곳에 자신의 호를 따서 해운대라 이름하고 그 곳에서 한 동안 머물렀다고 해서 지금까지 해운대라고 불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길을 따라 달린다. 길옆에 동백꽃이 빨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꽃도 우리와 똑같다. 우리도 달리다보면 먼저 달리는 사람이 있고 늦게 달리는 사람이 있듯이 꽃도 먼저 핀 놈, 이제 막 피어나고 있는 놈, 아직 필 준비도 하지 않고 있는 놈. 동백은 그렇게 해풍에 젖어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동백섬을 나와서 한화콘도가 있는 해안도로를 달렸다. 그곳은 오직 한화 콘도만 있어서인지 너무나 적막하고 호젓하다. 약 1킬로 정도를 달리며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무슨 컨테이너 부두 같은 곳을 돌아서 다시 해운대 백사장 옆길을 따라 달려 어제의 달맞이 고개로 오른다. 아침이라서인지 바람은 잠잠하다. 땀을 쏟으며 힘겹게 오른다. 금산사 고갯길정도는 될 것 같다. 고갯마루에 서서 확 터진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스스로에게 여러가지 약속과 다짐을 하였다.
바다를 보며 다짐한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을 무렵 돌아가야 할 시간이 지났음을 알고 서둘러 고개를 내려왔다.
빠르게 달려 내려오는데 지나가는 학생들이 손을 들어 '홧팅'하고 외친다.
등으로 얼굴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미포항의 포구에서 가볍게 몸을 풀며 아침달리기를 마무리한다.
부산!
처음으로 가 본 곳이지만 비릿한 내음만이 아닌 어떤 친근감이 들었다. 그것이 동백꽃의 향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달리기를 하면서 마셔본 아침 공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돌아서는 발자욱마다 뭔가 아쉬움이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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