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중리 그 신선의 세계
아중리 롯데아파트 앞 공원을 꼭두새벽에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투덜거리며 차를 몰고 돌아다니다가 문득 훌륭한 가수는 가장 늦게 나오고 보물은 언제나 깊숙하게 숨겨져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아중리 일대를 몇 바퀴 돌아다니다가 겨우 약속장소를 찾아 갔다.
어둠이 가득한 공원에 흰 유니폼의 회원들이 몇 몇 서성거리고 있다. 날씨는 왜 그렇게도 추운 것인지.
날이 밝아올 무렵이 되어서 모두 21명의 회원들이 모였다. 소운동장을 몇 바퀴 돌면서 몸을 달구고 스트레칭을 하고 출발하였다.
아중저수지 위를 달리는 기분은 약간의 추위가 있었지만 아이들 말로 짱이었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호반위로 몇 몇의 낚시꾼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안되어 보였다. 아마 밤새도록 술 병이나 마셨을 것이며 담배 갑이나 피워댔을 것이다. 그리고 추위에 몹시 떨었으리라. 그리고 이 찬란한 아침에 아프간 난민 감이 온몸에 뭘 두르고 있는 폼이란------.
그러나 우리를 보라. 하얀 런닝 유니폼을 입고 호반을 달리는 우리의 당당한 발걸음마다 송글송글 땀이 흐르고 두 주먹에서는 힘이 솟지 않는가?
새벽 공기는 언제나 신선하다. 저수지를 돌아 동부순환도로 밑을 지나니 작은 들판이 노란 치마를 둘러 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나 달리면서 이런 기분을 맛보지만 나는 한 번도 글로써 그럴 듯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럴 때마다 나는 그냥 아름답다고만 쓴다.
오늘도 아름다웠다. '왜망실'(원래는 임진란 때 왜놈들의 군막이 있었다고 하여 왜막실이라고 하였는데 도중에 발음이 편한 왜망실로 바뀐 곳이다.참고로 우리나라 지명에 '실'이 붙는 동네는 대개 산골짜기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국어학적으로 볼 때 '실'은 '谷'의 옛이름이다. 즉 골짜기를 '실'이라고 부른 것이다. 따라서 '왜망실'은 왜놈들의 군막이 있던 골짜기의 뜻이 된다.) 마을 앞에 수줍게 펼쳐져 있는 황금의 들녁을 밟으며 우리나라의 가을은 역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선두에 서서 회원들을 이끌고 있는 이영춘 아중팀장(적절한 명칭은 하나 짓기를 아중팀원들에게 부탁을 드린다.)이 뒤를 한 번 돌아다 본다. 마치 무엇인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듯한 눈치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산 속으로 내닫는다. 그리고 우리는 맑고 투명한 아침 기운이 힘차게 일어나는 숲 길을 밟았다.
일출암!
한 모금 물을 마시고 돌아서는데 회원들의 얼굴 가득 달려드는 말간 아침 햇살 떼. 느닷없는 허리의 통증으로 차를 타고 서빙을 하던 회장님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말로 하여서는 안된다. 그냥 마음으로 느끼기만 해야 한다.
산을 내려서서 돌아가는가 했는데 이팀장은 다시 더 좋은 곳이 있다며 앞장을 선다. 비포장길이 제법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다. 거친 숨을 토해내며 오르니 아 ! 仙景! 그랬다. 이 아침에 그곳은 정말 신선들의 세계였다. 다리미질을 한 것같은 수면위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은 분명 물안개. 경포 호수를 바라본 송강의 마음이 이랬을까?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들려오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 든다. 고요속의 외침이라고 할까.
왜망실은 그렇게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그 때 문득 지난 여름 장태산에서 만난 아침의 한 토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침은 언제나 가녀린 산새의 날개짓마냥 새뜻해서 좋다.
김미자님(김종기 회원님의 영원한 반려자이시면서 10km를 50분에 주파하는 실력자)이 가져 오신 포카리 한 모금을 마시고 돌아서는 발길이 아쉽다.
모두들 한 마디씩 남긴다.
" 우리 다음에 또 다시 달립시다."
" 정말 죽이는 곳입니다."
" 이렇게 좋은 곳에서 매일 달리는 아중팀의 실력이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네요."
" 이 코스에서 시민 달리기 대회 한 번 합시다."
" 춘천대회 끝나고 다시 한 번 와서 달립시다."
류종영 훈련부장이 기어이 한 마디 한다.
낚시꾼이 새로운 낚시터를 찾아가듯이 우리 마라토너들도 항상 새로운 코스를 달리고 싶어한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밋밋한 내리막이라 올라올 때부터 이미 계산해 둔 것이리라. 다시 아중호를 돌아 내려오니 롯데아파트 앞 소공원 운동장이다. 정리 운동을 하고 주병렬 회원의 제의로 힘날 구호를 외치며 오늘 훈련을 마쳤다.
이어 아중팀이 마련한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며 화기애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갑자기 새로움이 느껴진다.돌아오는 차에 오르면서 오늘 나오지 못한 회원들은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을 해 본다.
힘날!힘날! 히---ㅁ.
200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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