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문학

[시] 덕천사에서

힘날세상 2009. 7. 28. 14:36

덕천사에서

 

 

어둠이

그 두께를 더해가고 있을 무렵

덕천사 부처님은

대웅전을 걸어 나온다.

 

턱밑까지 가난이 밀고 들어온

김씨

아들놈 수업료 걱정하다가

술냄새 가득한 아픔으로 골아 떨어져도

이제 밥짓는 연기 한 줄기 올리지도 못하는

마을.

어느 날인가

새벽 댓바람부터

빤쓰만 입은 중생들까지 몰려들더니

맑은 목청으로 울어대던

산 새 한 마리마저

속(俗)한 날갯짓으로 날아가 버렸다.

 

도대체 남은 것이 없는

덕천사 골짜기는

가물어도 흔적은 남는 샘물가에

노랗게 내려 앉은 다알리아.

이제 덕천사는 덕천사가 아니어도

대웅전을 나온 부처님은

흘기눈을 뜨지 않는다.

아침이면

마을로 달아나 버릴 줄 알면서

어둠을 쓸어 담아

대웅전 앞마당에

켜켜이 쌓아 놓고 있을 뿐이다.

아무도 손대지 못한 어둠은

어쩌면

대웅전이나 되려나?

 

그래도

덕천사 부처님은

매일 대웅전을 걸어 나온다.

 

2003.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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