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비가 왔습니다.
작성일 2002-07-05
창밖으로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약 30년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등학교 시절
30분이상을 걸어서 기차타고 50분, 다시 20여분 걸어서
학교에 가면
아침밥 먹은 것은 어디로 갔는지
벌써 배가 고프고
짧은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시큼한 김치 냄새를 풍겨대며
도시락을 비워대고.
또 그랬다고 선생님께 터지고 하던 그 시절.
그날 정말 배가 고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통학열차는
왜 그렇게 연착, 연발을 하는지-----.
기차역 플랫폼에 쌓아 놓은 고구마도 그날은 없었습니다.
비는 정말 지독하게 내리고
배는 너무나 고팠습니다.
기차 속에서 이것 저것 사먹는 아이들을 보며
배고픔이란 것이 어떤 것인가를 몸으로 느끼며
울었습니다.
기차는 제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어서 역에 도착하였고
빗줄기는 더욱 굵어져서
정말 심난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나오셨는데
어디를 봐도 우리 어머니는 안계셨습니다.
괜히 화가 나서
친구가 같이 받고 가자는 우산을 뿌리치고
질퍽거리는 흙길을 무작정 밟아가며
뭐 잘났다고
무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혼자서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반절쯤 왔을 때
어머니가 허겁지겁 달려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보자 더욱 화가 났습니다.
"아이고 야, 쪼매만 지달리지 그냥 오냐? 저녁밥 때문에 쪼매 늦었구먼"
하시면서 들고 계시던 우산을 내려 놓고 곱게 들고 오신 우산을 펴 주셨습니다.
나는
정말 무정하게
마치 원수를 대하는 것보다도 더 지독하게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어머니는 내내 뒤를 따라오시면서 우산을 받으라고 종용하셨지만
집에까지 한마디 말도 없이 비를 맞고 왔습니다.
속으로 어머니가 야속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새벽에 일어나서
한번도 늦지 않게 밥을 지어주시고
조금만 날씨가 안 좋아도
역까지 제 가방을 들어다 주셨던
어머니를 왜 그렇게 뿌리쳤는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들어오는 나를
할머니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맞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어머니만 할머니에게 심한 질책을 받았습니다.
늦게 마중을 나가서
손자에게 비를 맞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 꾸중을 다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무말 없이 수건으로 나를 닦아주려고 했습니다.
나는 그것도 뿌리쳤습니다.
내가 잘했다는 생각이 있을 뿐
어디에고 어머니에 대한 아음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녁상을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한 그릇 가득 담은 제 밥과 시커멓게 긁어 담은 어머니의 밥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눈물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식구들 저녁밥을 해드리고
당신은 식사도 하지 않으시고
곧장 내게로 달려 오신 것입니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일하시고
자신의 피로를 풀 여유도 없이
저녁밥 지어서 상들여 놓고
그제서야
허겁지겁 달려서 역으로 가셨던 것입니다.
나중에 동네 어른들에게 들은 말이지만
우리 동네 어떤 어른은 우리 어머니가 바람이 났다고 생각하였답니다.
새벽마다 동네 밖에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것을 보고
밤에 나가 그제서야 돌아온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것이
큰 아들 학교 가는 길에
가방이 무거울까봐
기차역까지 들어다 주고 오는 것을 알 리 없었던
동네 아저씨의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입니다.
그 아저씨가 아침에 학교 가는 저에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 주신 말입니다.
"니 어무이 생각히서 핵교 공부 잘히라."
그런 어머니는 지금
하늘나라에 계십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염하는 순간에 나에게 보여주신 어머니는
정말 천사의 얼굴 그 자체였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이 그렇게 뽀얗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띠고 게신 줄을 그때까지 몰랐습니다.
같이 본 우리 아내는 어머님의 얼굴이 이렇게 곱다고 해댔지만
어디 내 마음과 비교나 하겠습니까?
비가 내리는 날
느닷없이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그 옛날
그 비오던 날을 아마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마라톤을 하는 것을 보고
아마 말리실 것입니다.
"야 멋이 좋다고 그렇게 심들게 뛰어 댕기냐?" 하고 말입니다.
언제 어머니 묘까지 달려서 가고 싶은 힘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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