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붕대론
작성일 2002-10-26 오전 9:41:47
제목을 너무 거창하게 달았다는 느낌입니다.
어제 오후 고2인 우리 딸 "드리"가 핸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아빠! 나 붕대 만점 맞았어."
그걸 보면서 어찌나 기쁘던지..
그저께 밤에 딸을 위해 교보재가 되어 두 시간 이상을 봉사했다.
학교 교련 시간에 붕대 감기를 배웠고 그것을 실기시험으로 평가하는 모양이다.
손은 1분 20초,
머리는 1분 30초 이내에 감아야 하고, 또 모양도 이쁘게 해야 만점을 받는다고 한다.
점수에 대한 집착이 심한 애라 딸아이가 하자는 대로 꼼짝없이 실습 대상이 되었는데...
정말 처음으로 내 몸에 압박붕대라는 것을 감아 봤다.
처음에 한 두번 감을 때는 몰랐는데 4미터짜리를 손이나 머리에 다 감고 보니까
정말 압박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래서 압박붕대로구나.'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선생이 되고 난 후 어느 날, 우연히 화학실에 갔다.
화학 선생님 왈
" 정선생, 이리와 봐. 내가 기가 막힌 것 보여 줄께."
그러면서 시험관에 두 가지 액체를 섞더니 시험관 끝을 만져 보라는 것이었다.
시험관에서부터 따뜻한 느낌이 손목을 타고 흘러 내렸다.
" 어? 이거 발열 반응이다.!!"
" 어떻게 알았어?"
"고등학교 때 말로만 배웠던 것 아닙니까?"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정말 말로만 배웠던 발열반응이라는 것이 복잡한 화학식을 쓰고
맨 뒤에 + 350cal라고 적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때는 그냥 습관적으로 기계적으로 몇 칼로리가 발생한다고 외우곤 했었는데....
정말 열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진리는 확인하지 않아도 항상 존재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꼭 확인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병역비리도 그렇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분명히 진리는 존재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실이라고 믿고, 어떤 사람은 거짓이라고 믿으면 그만이다.
어쩌면 그것이 진리일 수도 있다.
사실이라고 믿은 사람에게는 병역비리는 사실인 것이고, 아니라고 믿은 사람은 병역비리는 거짓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모든 것에 반영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분명 하나다.
사실 아니면 거짓 둘중의 하나다.
문제는 압박 붕대를 감았을 때 압박감이 느껴지고 시험관을 만져보면 열이 발생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으로 '아마 이럴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려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실이 왜곡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들은 늘 달콤하고 듣기 좋은 말 뒤에 은밀하게 숨어서 전해진다.
입에는 꿀을 물고 있으나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아픔을 겪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진실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압박 붕대를 감아보면 왜 압박붕대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시험관을 만져보면 발열반응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처럼 , 우리는 몸으로 겪어 보아야 진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진실을 바탕으로 생활해야 인간의 삶이 바로 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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