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우리는 대한민국 전의경이다.> 생활 체험 수기 공모 우수상 수상작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제2316전투경찰대 1소대 수경 정 글
꿈꾸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린 알고 있네 우린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꿈꾸지 않으면』- 간디학교 교가
위경소로 가는 길을 거닐며 노래 한 자락을 떠올려 본다. 요즘 내 입가에 계속해서 맴돌고 있는 이 노래를 계속 읊조리며 지나간 시간을 곱씹어본다.
올 한해를 휩쓸고 지나갔던 촛불의 열기도 어느덧 사그라지고 이제는 동장군이 가져온 매서운 한파만이 주위에 가득하다. 갖은 집회와 계속되는 훈련으로 무자년 한 해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덧 마지막 뜨게 될 해를 바라보고 있다. 더불어 내 남은 군생활도 줄어만 간다. 어떻게 하면 유종의 미를 잘 거둘 수 있을까 항상 고민이었다. 그 고민은 이미 해결되었다.
힘들었다.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살던 내가 군대라는 틀에 적응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고 싶은 것들은 쌓여만 가는데, 그 모든 것들을 계속 참고 견뎌야만 하는 상황은 너무나도 버거운 짐이었다. 그 짐들은 나를 계속해서 짓누르며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고참들의 배려로 막내 때부터 꾸준히 독서를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2% 부족하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휴가를 나갈 때마다 가족,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알 수 없는 이 답답함의 원인을 찾았지만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몇몇 고참이 부탁을 했다. 수능을 다시 보려고 하는데 도와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고참에게 잘 보이면 생활이 좀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냉큼 받아들였다. 비록 점호가 끝난 후 잠깐의 시간이었고, 매일매일 꾸준하지도 않았지만 어차피 시작한 일이니까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더 매달렸다. 그렇게 고참의 공부를 도와주는 시간이 계속될수록 점점 편해졌다. 몸이 아니었다.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답답한 무엇인가가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편해지지 몸의 힘듦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르치는 기쁨, 그것이 내 마음 한구석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2%였다. 그동안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교육에 대한 열망이 이렇게 큰지 말이다. 사범대 생활 3년 동안 찾지 못하고 방황했는데, 나의 꿈, 목표는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갑자기 찾아왔다. 그리고 마음을 정했다. 전역을 하고 졸업을 하면 교단에 서서 아이들과 함께하겠다고 말이다.
T is not what a man does which exalts him, but what a man would do.
사람을 고양시키는 것은 그가 지금 하는 일이 아니라, 그가 하려는 일이다.
- 로버트 브라우닝
얼마 지나지 않아 고참은 전역을 하고 아쉬운 마음만이 남았다. 그때는 “공부하고 싶은 사람 모여라. 도와줄게.”라고 말할 위치도 아니었고, 다시 마음 한 구석에 가르침의 기쁨을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답답하지는 않았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 귀중한 계기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또 기회가 된다면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준비했다. 보다 나은 모습으로 교육의 현장에 가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그 꿈이 잘 자라는 희망을 자신 있게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I must admit that I personally measure success in terms of the contributions an individual makes to her or his fellow human beings.
나 개인에게 있어서 성공의 척도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공헌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정한다.
- 마가렛 미드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부대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차원에서 부대에 공부방을 열게 된 것이었다. 나에게 아이들을 가르쳐보겠냐는 제안이 들어왔고 난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수락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제안이 없었다면 사정을 해서라도 하고 싶은 일이었다. 정말 기뻤다. 비록 부대 안의 제한된 환경이지만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는 맘이 가득했다.
그렇게 시작된 316공부방,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사회에서 경험도 있고 어디다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대원들을 모아놓았다고 하지만 과연 사람들이 모일까 하는 걱정부터 준비는 잘 할 수 있을지, 아이들은 잘 받아들일지 걱정이었다. 그저 잘 가르치기만 하면 별 문제없이 잘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가르쳐야할 내용도 완전히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이 뭐 대단할 것까지 있겠냐면서 대충 한 번 보고 말았다.
수업 첫 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자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일까. 그동안 참아왔던 교육에 대한 열망이 터져 나왔는지 열심히 수업했다. 한 군데도 막히지 않고 술술 잘 풀려나갔다. ‘그래 이만하면 됐어’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은 보이지 않았고 어두운 기색만 가득했다. 분명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끌어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이 답답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을 보낸 후 생각했다.
An abundance of knowledge does not always teach one to be wise.
지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항상 현명한 것은 아니다.
- 헤라클레이토스
나는 처음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교육은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간의 소통이 없다면 그건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내가 가진 것만 쏟아내면 그걸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나 혼자 앞에서 떠들기만 하는 한 편의 꽁트라고밖에 할 수 없다. 깊이 반성했다. 준비가 돼있지 않은 수업은 아이들에게 꿈이라는 씨앗을 심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학교도 아니고 제한된 환경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아이들과 소통하고 이를 통해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부대에서는 우리 공부방에 장소며, 준비할 수 있는 시간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학부모님들 또한 큰 관심을 보여주셨다. 남은 건 나와 다른 대원들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아이들을 보다 이해하려는 마음뿐이었다.
다음 시간부터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더 좋은 내용으로 수업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수업진행도 일방적인 지식전달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보다 재미있게 다가올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아이들의 얼굴에 어두운 표정이 아닌 밝은 미소가 보일 때, 보다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때 정말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Education is light, lack of it is darkness.
교육은 빛이다. 빛이 없으면 어둠이다.
- 러시아 속담
공부방을 시작한지 이제 3주 정도 지났다. 수업을 진행할수록 점점 체계가 잡혀가고 아이들도 보다 맘을 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공부방에 참여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연락이 늘어가고 규모도 점점 커져만 간다. 규모가 커질수록 준비할 것도 많고 힘들어지지만 마음은 정말 편하고 좋다. 맘이 편해지는 만큼 나의 부족함을 한 번 더 반성하고, 더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그래서 매 순간 더 노력하고 있다.
To teach is to learn twice.
가르치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이다.
- 조제프 주버트
오늘도 수업준비를 하러가며 생각한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이고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과연 우리 공부방이 아이들에게 꿈을 꾸게 만드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 순수한 미소를 끝까지 잃지 않게 해주고 싶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배우는 것보다 내가 아이들을 보며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항상 배운다는 낮은 자세로 수업에 임할 때, 아이들의 꿈도 더욱 자라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단지 생각만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될 수 있도록 매일같이 더 준비하고 더 공부하고 있다.
흔히 아이들은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 희망은 아이들 각자가 품고 있는 꿈을 먹고 자란다. 희망을 노래한다는 말은 결국 그 꿈을 잘 키워나간 다는 의미가 아닐까? 오늘도 이렇게 다짐하며, 희망을 노래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한 가득 품고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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