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산을 바라보며
작성일 2002-10-23 오전 10:45:41
가을이 익어 간다.
시뻘겋게 뒷꽁무니를 보이며
가을은
다가산 자락을 타고 익어 간다.
나는 늘상 다가산을 바라보며 가을을 만난다.
정말 저것을 산아리고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어떤 사람들은 흔히 다가공원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나는 꼭 다가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다가산!
교무실 창 밖으로만 만나는 다가산.
다가산은 분명히 사계절이 있다.
그러나 누구하나 다가산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리산의 4계니 설악의 가을이니 입에 올리면서도
내장의 단풍을 현란하게 형용하면서도
정작 가까이 있는 다가산은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더구나 덕진공원에게만 화려한 옷을 입히고
아름답게 치장하고 보니
시민들의 마음은 이미 다가산을 떠나 버린 것이다.
덤으로 다가산에 홀로 서 있는
가람 이병기님의 시비(詩碑)마저
추렷한 얼굴을 보일 뿐이다.
그 옛날 어느 봄날에 다가산에 올라
내려다 보던 전주시의 초라함이 생각날 때면
나는 가끔 다가산을 찾는다.
다가산에 오르면
이제는 어깨를 활짝 펴고 다가오는 전주시의 거대한 몸짓을 볼 수 있다.
60만 개의 목소리를 품고도
아직도 활발하지 못하고
그저 나직한 노래만 부르고 있는 전주시의 가슴 속살들을.
다가산은 오직 오르막길 하나 품고서
밤낮 없이 수 많은 사람들의 애무를 받으며 굽이치는 전주천을 바라보며 서있다.
쉬리가 살고 있다며
전주=쉬리의 공식을 각인시키려는 마음만 앞서
전주천만 이뻐하고
다가산 정도는 돌아다보지도 않는
시민들의 마음을 읽고서도
다가산은 그냥 그렇게 서있다.
밑에 있는 공터에서 씨름대회를 하고
달리기 행사를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마이크로 떠들고
또 커다랗게 웃어 제치면서도
누구하나
발길을 돌려
다가산에 올라오지 않아도
그래서 꼭대기의 매점이 문을 닫아 버려도
다가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속없는 다가산은
저렇게 가을을 익히며
붉어가고 있다.
다가산에는
좋은 오르막길이 있다.
그러나 나는 다가산은 절대 뛰어서 오르지 않는다.
아니 감히 뛰어 오르지 않는다.
아직까지 내 마음에는
그 옛날의 다가산을 짝사랑하는 까닭에
조금은 째를 내는 마음으로
느릿느릿 걸어서 올라간다.
다가산은 살아 있다.
다가산은 전주시가 살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전주천이 흐르는 것을 지켜보며
살아 있다.
그리고 저렇게 가을을 만들고 있다.
한 번쯤은 다가산을 올라가 볼 일이다.
다가산에는
우리들이 무심코 내다 버린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남아
추위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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