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립니다.
2003-04-23 14:48:30
봄비가
저렇게도 푸르게 내리고 있습니다.
곱게 곱게
내리는 빗줄기 따라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님의 마음도 같이 내립니다.
우리 학교 뒷편
연못가에서
역사를 지켜 보며 서 있는 느티나무는
아직 지난 가을의 낙엽도 떨어뜨리지 못했는데
무슨 봄이냐며
큰소리치더니
결국은 새잎파리를 흔들어
오는 봄을 맞이하네요.
연못에서 헤엄이나 치면서
입가에 시커멓게 수염발 잡힌 머슴아이들이
던져주는 과자 부스러기나 얻어 먹고 사는
비단잉어 몇 마리는
봄비가 간지럽다고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교태로운 웃음을 던지는 오후입니다.
비가 내리면
늘상
생각나는 것은
거의 잊혀져 가고 있었던 지난 시절이
되살아나
옛날의 훈훈했던 정(情)은
세월이 갈수록
그 두께를 더해가는가 봅니다
그리하여 내리는 빗줄기에 매달려
오늘을 지나
내일의 시간들에
샛노랑의 붓을 들어
샛연두의 붓을 들어
느릿느릿 색칠을 하고 있는 것인가 봅니다.
아마 이런 날
무작정 달리는 사람보다는
내리는 빗줄기 사이를 가르며
마음으로 달리는 것이 더 좋을 듯하여
이렇게 부상병들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이란 말입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비오는 날
삼삼오오
한잔씩 하는 가 봅니다.
아중리 쪽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게 움직여가나 봅니다.
이제 조용히
주로를 떠올려 볼 때입니다.
그동안 달렸던 주로와
앞으로 달려가야 할 주로를 말입니다.
그것이
여수 동백마라톤의 주로이든,
대전마라톤의 주로이든,
동학혁명군을 따라 달리는 전주마라톤의 주로이든,
아니면
우리들이 삶을 채색하며 달려왔던 지난 시절로 가는 주로이든,
환한 웃음과
밝은 마음으로 엮어가야할 내일로 가는 주로이든 말입니다.
마라톤을 떠나 있으면서
한 발 옆으로 비켜서 바라본
마라톤은
그렇게 화려하거나
빛을 발하여 두드러진 것이 아니라
그저 시골 아낙의 수더분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치장만 하려했었고
드러내려고만 했었으며,
남 앞에 늘어놓으려고만 했던 것이
내가 달린 마라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것처럼
마라톤은 그저
하나의 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너무 빨리 가려고 해도 안되고
너무 느리게 가려고 해도 안되며,
너무 멀리 가려고 해도 안되고
너무 조금만 달려도 안되는 것이 마라톤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처럼
지나친 욕심을 내지 말고
그저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매 순간에 만족함을 느끼는 그런 삶의 자세가
바로 마라톤의 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언젠가
수채화를 가르쳐 주던 화가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젠 뉴질랜드로 가버려
그리운 얼굴로만 남아버렸는데
그 친구가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림은 욕심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네.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이 있어야 하네. 좋은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잘 안되는 법이거든. 그림을 내 마음 속으로 끌어들여서 그냥 하나가 되어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네."
마라톤도 그렇지 않을까요?
마라톤과 내가 하나가 되어 버리는 것 말입니다.
그것을 생활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냥 마음에 따라 달리는 것도
좋은 마라톤이 아닐까요?
괜히 비가 내리는 것을 핑계 삼아
넋두리만 쏟아 놓고 보니
마음만 너절해지고 말았습니다.
빗줄기를 따라 정처없이 떠돌아 보고 싶은 힘날세상
'마라톤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필] 어머니를 위한 달리기 (0) | 2009.07.28 |
---|---|
[수필] 새가 준 선물 (0) | 2009.07.28 |
[시] 가을비 (0) | 2009.07.28 |
[수필] 봄비야 흥건하게 내려라 (0) | 2009.07.28 |
[수필] 복숭아 향기가 나는 사람 (0) | 2009.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