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야 흥건하게 내려라.
작성일 2002-04-03 오전 10:30:56
언젠가 황사가 엄청나게 몰려들던 날,
그 매캐함으로 인해 숱하게 고통스럽던 날,
그 지독한 황사를 피해 다니며 중국까지 욕해댔던 날,
나는 한편으로 좋은 마음도 있었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로 인해 보기 싫은 것들을 보지 않아도 되엇기 때문이었다. 왠지 세상 사람들의 독한 마음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팽배해져 버린 이기주의에 산 속으로 숨어 들었던 옛 선조들의 은둔의 마음을 뒤집어 보면서 황사가 가려준 세상을 향해 실컷 침을 뱉았던 것이다.
사실 언제나 세상은 그랬다. 어느 시대나 남을 시기하고, 모략하고, 괴롭히고, 힘을 자랑하는 사람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짓눌리고 시커먼 멍이 들어가지 않았던가. 사람들의 삶이 비교적 단순했고, 사회가 복잡하지 않았던 그 옛날에도 오늘날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사치와 도덕적 타락과 인간들의 지나친 이기심을 경계하던 책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대가 아니다. 인간들의 마음이다. 바로 우리 인간들의 간악한 마음인 것이다.
우리들 인간들은 자신의 눈에 든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든 티끌을 나무라는 것이다. 우리들 인간들은 하나 밖에 없는 입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그 하나밖에 없는 입은 여러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자신의 몸에 영양소를 공급해야 하고, 좋은 말을 하여 남을 기분좋게 해야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몸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토해내는 것도 바로 그 입이요, 남의 가슴에 비수를 꼽는 일도 바로 그 입이 하는 것이다.
누구나 우리는 이러한 이중적인 마음으로 살아가고 아전인수의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이것은 누구나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정말 누워서 침뱉는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정말 부끄럽고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아이들 말로 쪽팔린다.
그러나 보라. 그 지독한 황사 속에서도 벚꽃은 그 하이얀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던가.
황사는 일시적인 것이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면서 잃어버렸던, 조금은 뭉개어 졌던 하늘을 되찾았을 때 우리는 눈부신 자연을 보고 감히 아름답다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지난 여름의 아픔을 겪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때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잃었다. 요즘 잘 나가는 드라마 "상도"에서 홍득주라는 상인이 한 말을 언제까지나 가지고 살겠다고 마음 먹었다. "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이 말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했다. 그리고 손꼽아 봤다. 과연 내가 남긴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가를. 그러나 정말 없었다. 그 때 내 생각은 '아! 세상에는 사람이 없구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젯밤에 떠올린 생각 하나는 세상에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람을 남길만한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
이러다가 내가 최후까지 곁에 두고 싶은 마라톤까지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모든 것을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한 탓일까? 내가 좀더 포용심이 없어서 일까? 역지사지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지 않은 탓일까? 그러나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이럴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틀림없이 예수님은 당신의 본질인 사랑을 말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 흉내를 내야 하는 것인가?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어젯밤이었다.
오늘 아침 일기예보에서 주말에 비가 온다고 한다.
이 비가 세상의 추한 것들을 말끔히 씻고 전보다 더 깨끗한 아름다운 대지를 가져다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그러다가 오늘 어느 홈페이지에서 어느 분의 글을 읽었다. 그 분의 글을 읽고 정말 가슴이 아팠다. 아니 찔렸다. 그분의 글은 상당히 고심한 글이었다. 짙은 황사 속에서도 벚꽃이 싹트고 있었듯이 그러한 생각을 가진 분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개인적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리가 사람들 때문에 그 좋은 마라톤을 놓아 버린다면 말도 안되지 않는가?
마라톤은 앞에 가는 사람에게 같이 가자고 붙잡아서도 안되고, 뒤에 오는 사람 약올려서도 안 된다는 그 평범한 진리에 정말 공감한다. 우리는 주로에서 서로에게 힘을 주고 격려하면서 달려야 하지 않는가?
봄비가 질퍽하게 내려 우리들의 마음 속에 시커멓게 덮혀 있는 이 먹구름을 말끔하게 씻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가산을 바라보니 어느새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그 사이로 힘찬 오르막길이 얼굴을 내밀고 손을 저어 나를 유혹한다. 힘을 길러 줄 듯한 오르막길이.
마라톤은 정말 같이 달릴 때 참 맛이 나는 운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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