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 9 코스 운리 마을 - 덕산 - 위태 마을(13.9km, 10.0km)
1. 일자 : 2015년 9월 12일 토요일
2. 동행 : 산정 산우회
3. 코스 : 운리마을(08:30) - 정자 쉼터(09:15) - 참나무길 입구(09:33) - 백운계곡(10:20) - 마근담(11:10) - 덕산 (12:25 - 13:30) - 중태마을(14:30) - 유점마을(15:40) - 갈치재(16:15) - 위태마을(16:40)
4. 시간 : 8시간 10분
5. 지도
6. 둘레길 수첩
* 8코스 출발점 운리 마을에는 커다란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 운리마을 - 참나무숲, 마근담 - 덕산까지는 시멘트길을 걸어야 한다.
* 참나무 숲을 지나는 도중에 백운 계곡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땀을 식히기에 좋다.
* 덕산에는 남명 조식 선생 유적지와, 한국선비문화 체험관이 있으며, 음식점이 있어서 점심 식사하기에 딱 좋다.
* 9코스는 덕산 시장 옆에 있는 농협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 운리에 놓아 둔 차량을 회수하려면 덕산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덕산 - 운리 15,000원, 중태 - 운리 20,000원, 위태 - 운리는 35,000원이다. 덕산 택시 번호 055 - 972 -6363, 9393
* 민박은 운리 마을의 양뻔지 민박(010 - 3795 - 3787)과 덕산의 감익는 풍경(010 - 7177 - 1177), 위태마을의 정돌이 민박(010 - 9303 - 6961)을 이용하면 된다.
7. 둘레길을 걸으며
운리 마을의 아늑한 품에서
아침을 걷는다.
운정마을로 이어지는 들길은
황금빛 함성을 마련하고 있었고
가을은
파란 하늘에서 내려서고 있었다.
세월은 가고
우리 몸둥아리도 늙어가더라도
산정(山情)의 마음은
언제나 변함 없는 산줄기처럼
넉넉하고
후덕하자고 나선 둘레길
9월에는 햇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에 담을 줄 알아야 가을을 느낄 수 있다.
가을은 참 외로울 수 있는 계절이다.
햇살이 따뜻하다고 느껴지는만큼
내 마음이 허전해 질 수 있는 까닭이다.
주변이 풍요로워지는만큼 나의 주머니가 가볍다면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언제나 가을은 소리 없이 온다.
투명해진 햇살 위로 감아 도는 바람 끝이 서늘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
가을은 이미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것이다.
가을은
다가올 때는 제법 그럴싸한 모습으로 점령군의 걸음걸이를 내보이지만
돌아설 때는 참으로 볼품없고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운 몰골로 비틀거리며 물러간다.
그리고 온몸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추위를 몰고 오는 까닭에
돌아서는 모습은 더욱 추하게 보인다.
이제
가을을 단장하고 있는 들녘을 걸으면서
가을의 뒷모습을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지만
속절없는 것이 세월이고 보면
어느 순간
가을은 화려한 춤사위를 펼칠 것이고
한동안 넋을 놓고 가을을 애무하다 보면
가을은 벌써 멀어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그렇게 우리 곁에 짧은 노래 몇 곡 부르고
무대를 내려가는 것이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지나온 길보다는
걸어야 할 길에 더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 없나보다.
3코스 중황마을에서 내려다보는
그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아직 남겨 두고 있는
어느 산길, 들길의 호젓한 노래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어느 마을을 지나며
해바라기 하고 있는 노인네의 주름진 손등에서
진하고 진한 삶의 애상곡을 들을지 모를 일이다.
그것은 설렘이다.
그것은 기다림이다.
둘레길은
역시 혼자 걸을 일이다.
이정표를 따라 걷는 걸음보다는
불쑥 들어선 길에서
잃어버린 시절을 되찾을 수도 있고
그 깊고 깊은 적막에 싸여
놓쳐버린 그리움을 반추할 수 있는 것을.
둘레길은
혼자서 걸어야 제 맛이다.
마을을 지나면서는 마을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서고
들판을 지날 때면
들녘의 풍요로움을 담아 보기도 하고
숲을 걸어야 한다면
절대고독의 속삭임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둘레길을 내 안에서 살여내야 하는 것이다.
운리 마을 대형 주차장
운리 마을 주차장에 달아 놓은 택시 전화번호
운리 마을
주차장 앞 감나무 뒤로 이어지는 길이 둘레길이다.
둘레길 표시
가을은 이렇게 익어가고 있다.
이 벼를 바라보며
농부는 무엇을 생각할까.
수확의 기쁨일까
농촌의 현실에 대한 한숨일까.
고구마 꽃이 피었다.
운정마을 노거수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에 동그마니 자리잡은 양뻔지 민박. 픽업도 해준다는 답사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코스모스는 아무리 봐도 시골에 있어야 할 느낌이다.
수수하면서도 꽃은 눈길을 당긴다.
왠지 가을과 참 잘 어울리는 꽃이고
그래서 무엇인가 그리움을 풍겨내는 꽃이다.
담 너머로 학교 간 남동생을 기다리는 누님같은 꽃이고
땀냄새 나는 어머니에게 한 다발 안겨 드리고 싶은 꽃이다.
코스모스는
마음으로 피는 꽃이다.
강아지풀은
어린 시절을 가져다 준다.
손바닥에 올려 놓고 흔들면
꼬리치며 다가오는
정다운 이야기다.
가녀린 듯 피어서
발끝에 가을을 다져놓은
강아지풀은
잃어버린 유년시절이다.
돌아본 운리 마을
저 들녘이 황금빛 노래를 할 때
대처에 나간 아들을 그리워 할 시골 노모의
그리움으로 가득할 들녘에서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람 사는 것이 어차피
그리움이라면
가을 하늘을 감돌아 내리는
금빛의 울림은
우리 마음 활짝 열어 담아야 할
진하디 진한
시간일까.
시멘트 도로를 따라가다가 만나는 정자. 딱 적당한 곳에서 둘레꾼들을 기다리고 있다.
도로를 따라가다가 느닷없이 만나는 둘레길 표지.
여기에서 도로를 버리고
참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초입은 가파르게 보이지만 몇 걸음 걸으면 최고의 숲길이 펼쳐진다.
참나무 숲길이 있어어
시멘트 도로를 지겹게 걸어야하는 아픔을
보상받는다.
이것이 참나무 숲길이다.
이런 길은 아껴가며 걸어야 한다.
참나무 이파리를 타고 흐르는
바람과 손을 맞잡고
느릿하게 걸을 일이다.
속(俗)한 기운도 벗어 버리고
탐욕도 털어 버리고
그저 무념무상으로 걸을 일이다.
세월을 놓아도 좋을 일이고
주저앉아
새소리에 바져들어도 좋을 일이다.
참나무 숲길에서는
백운계곡에서 산정 산우들
저들의 마음 속에 사랑이 있고
저들의 발걸음 속에 삶의 여정이 있고
저들의 웃음 속에
진한 우정도 담겨 있다.
산에서 정(情)을 이어가는
산정 산우회
백운 계곡 수달래가 좋다는 봄날에 다시 한 번 걸어보자고
손가락을 걸었다
한 동안 놀고 가고 싶은 백운 계곡
둘레길은 마근담 방향으로 이어진다.
백운게곡은 위로도 더 이어지고 있고 오르는 길도 뚜렷하다. 갑자기 나타난 장승에 좋아하기도 하고
수양산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태극종주 팀과 조우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에게 지는 꼴을 못본다.
처음에는 지리산 종주를 자랑하더니
지리산 왕복 종주가 나오고
태극 종주를 했다고 하니
무박 태극 왕복 종주를 했다고 내세운다.
우리는 남보다 앞서는 것을 최고로 안다.
예전에 마라톤하던 시절
풀코스 달렸디고 자랑하니까
무급수로 달리겠다고 나서고
100키로 울트라 달렸다고 하니
한반도 횡단했다고 하더니
해남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달렸다고 힘을 준다.
그게 끝인 줄 알았더니
우리나라 해안선 따라
인천에서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달리겠다고 나선다.
어떤 일을 해야할 때
그것이 자신을 위한 일인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하여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하지말라는 말씀에 공감을 한다.
마근담
여기서부터 다시 지루할 정도로 시멘트 도로를 걸어야 한다.
거대한 수석을 갖춰 놓은 집
집은 소박하지만
정원은 잘 꾸며 놓았다.
가을은
이렇게 익어가고 있다.
오늘 하루 종일 감나무 원없이 보았다.
산청 곶감이 왜 유명한 줄
오늘 알았다.
덕산에 다 왔을 때
만난 민박집
덕산에서 본 빨래터
이런 곳에서 빨래하면 정말 개운할 것 같았다.
덕산 시가지에 당도하여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남명 조식 선생 유적인데
둘레길을 걷는 목적이
여유이고 느림의 미학이라면
당연히 이곳에 들러
남명 선생의 선비 정신을 본받아야 하거늘
여럿이 걷는 길이고 보니
그냥 지나간다.
조식(曺植, 1501년 7월 10일(음력 6월 26일) ~ 1572년 2월 21일(음력 2월 8일))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고 영남학파의 거두이다. 본관은 창녕,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어려서부터 학문 연구에 열중하여 천문, 역학, 지리, 그림, 의약, 군사 등에 두루 재주가 뛰어났다. 명종과 선조에게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제안받았으나 한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기르는 데 힘썼다.
조식(曺植)의 자(字)는 건중(楗仲)이며, 경상도 삼가현 사람이다. 한미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와 숙부가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비로소 관료의 자제가 되어 사림파적 성향의 가학을 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30세까지 서울 집을 비롯한 부친의 임지에서 생활하며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혔고, 후에 명사가 된 인물들과 교제하였다. 조선 중기의 큰 학자로 성장하여 이황과 더불어 당시의 경상좌·우도 혹은 오늘날의 경상남·북도 사림을 각각 영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유일(遺逸)로서 여러 차례 관직이 내려졌으나 한번도 취임하지 않았고, 현실과 실천을 중시하며 비판정신이 투철한 학풍을 수립하였다.
그의 제자들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정인홍, 김우옹, 정구 등 수백명의 문도를 길러냈으며, 대체로 북인 정파를 형성하였다. 사후 사간원대사간에 추증되었다가 북인 집권 후 1613년(광해군 7년) 의정부영의정에 증직됐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위키백과에서
조식 선생이 훌륭한 것은
제대로 된 선비라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2 -3년마다 임금에게 벼슬을 받아야 하는데
임금의 재임용을 받지 못하면
낙향하여 보내면서
세상의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최고라고
가식적인 마음을 노래하다가
임금이 벼슬을 주어 부르면
성은이 망극하오이다하면서
자신이 극찬하던 산수(山水)고 자연이고
다 내던지고 서울로 올라가는 그들은
진정한 선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벼슬이 싫고 자연을 사랑한다면
벼슬을 떠나있을 때만이 아니라
남명 선생처럼 벼슬에 나가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정치가들이 남명 선생같이 정직하다면
우리나라도 더 좋아일 것인데
.
탐스럽게 익어가는 가을
강변을 따라 덕산 시장을 지나 덕산 농협 앞에서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점심 식사는 한국선비문화 체험관 앞에 있는 중국 음식점에서 한다.
초대형 건물 한국 선비문화체험관.
아직 개관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큰 규모로 지을 필요가 있었을까.
음식점에 있는 서각
이화원의 탕수육.
간짜장을 시켰는데 제법 맛이 있었다. 가격은 6,000원
덕산 시장 근처에 있는 개인택시 사무실
덕산 시장. 마침 19일이 장날이었다.
이 농협 앞에서 다리를 건너야 한다. 농협 옆길은 치밭목에서 내려오는 대원사로 가는 길이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둘레길. 흰 집을 지나 앞에 보이는 산과 뒷산의 사이로 둘레길은 이어진다.
덕산 중고등학교. 이 앞에서 다리를 한 번 더 건너야 한다.
덕산 시가지
이곳에 서 봐야 남명 선생이 노래한 두류산 양단수를 이해할 수 있다.
한쪽은 대원사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이고
또 하나는 중산리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이다.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세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냐 나는 옌가 하노라
두류산 양단수를 왼쪽에 끼고 걷는다.
일행 중 몇몇은
덕산중고까기 돌아가는 것보다는
양단수에 발을 담그겠다고
직접 건넜는데
바닥이 미끄러워 힘들었다고 한다.
송하마을을 지나
산꾼되기 형님이 갑자기 발목이 좋지 않다고
보호대를 착용한다.
중태마을 노거수
나뭇그늘에 게시던 할머니들이
쑥 인절미를 주신다.
우리도 과일이며 떡이며
있는 것을 내어 드린다.
옆에 있는 둘레길 안내센터에서
지도 한 장에 3,000원에 구입한다.
오랜만에 탱자나무를 보았다.
탱자가 참 튼실하게 자랐다.
언젠가 선배 집에서
탱자술을 마신 적이 있었는데
독특한 탱자향을 잊을 수가 없다.
길가에 핀 봉숭아.
어린 시절이 물씬 몰려왔다.
여름방학이면
꽃을 따서 찧은 다음 손톱에 물들이는 것이
연례행사였었다.
꽃이 지고
씨주머니가 톡 터지면서
검은 씨앗이 사방으로 흩어져
종족 번식을 하는 봉숭아.
담벼락에 붙어서도
이렇게 크고 튼실하게 자랐다.
지리산방도 지난다.
개인이 사는 집인 것 같았는데
유점마을 오름길
요기서부터 길은 제법 가파르게 올라간다.
보기에 이래도 실제로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차단기가 있는 곳에서 오른쪽 산길로 들어서 잠깐 오르면
갈치재이다.
갈치재 정상.
이곳에 정자 하나쯤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짙은 대나무 숲을 지난다.
대숲을 걸을 때엔
바람소리와 함께여야 한다.
그 소소한 바람을
마음에 가득 담아봐야 한다.
앞서 가는 와룡서생 형님
산이라면
절대 뒤지지 않는 경력이다.
누구나 이렇게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뒤쳐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그렇지만
무엇인가 품고 있는 희망이 있기에
때로는 그 희망에 속아서
우리는 힘겨운 오늘을 살아간다.
저수지보다는 둠벙이 어울릴 것 같은 곳을 지나면
숲길을 벗어나고
지루한 시멘트 도로를 따라 덕산까지 내려가야 한다.
이곳에서
실컷 휴식도 하고
마음을 정리해 본다.
이제 위태마을이 지척이다.
위태마을에 있다는 정돌이 민박.
이집에 사는 개들이 둘레꾼들을 안내해준다고 하는데
다음이 기대된다.
가락원 마당에 피어 있는 꽃
저녁식사는
화엄사 앞에 있는
가락원에서 모듬 정식으로 한다.
1인당 15,000원이다.
상차림인데
15,000원 주고 먹기에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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