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0 차 태백산 산행기
1. 일자 : 2013년 6월 29일 토요일
2. 동행 : 아내(전주 블랙야크 40명산 도전팀과 함께)
3. 코스 : 유일사 매표소(10:00) - 유일사 쉼터(10:50) - 장군봉(1,566.7m 11:43) - 천제단(1,560m 11:50 - 12:45 점심) - 문수봉
(13:35) - 당골 갈림길(13:50) - 당골 매표소(14:45)
4. 시간 : 4시간 45분
5. 지도
6. 산길을 걸으며
겨울 태백산을
여름에 오른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오르던
산길은
짙은 초록으로 덧칠하고
느릿하게 오르는 발걸음을 열어주는데
무엇인가 낯선 집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여름 태백산은
갑자기 짙은 화장을 한 마누라를 보는
묘한 느낌이다.
찬 바람을 맞으며 걸어야 하는 산을
땀을 흘리며 걷는 기분은
산행 내내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장군봉에서 바라보는 천제단
진초록의 물결 속에서
라일락향이 온 몸을 감싸안고
이름도 모를 온갖 꽃들이
저마다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렇다 천상화원이었다.
태백산에도 꽃이 피고
푸르른 나무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천제단!
한배검이라는 표지석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 안에서
무엇인가를 기원하는 사람들.
단군신화에 태백산 신단수 아래
환웅이 내려왔다는 기록으로 인해
언제부터인가 태백산은
단군의 성지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소망의 실현을 위해
어딘가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우리 인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약한 존재인가 보다.
사방으로 기가막힌 조망을 보여 주는 천제단 너른 마당에 둘러 앉아
산상만찬을 즐기는데
하늘은 무엇이 못마땅한지
잔뜩 찌푸리고 있다.
산 밖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렸다는데
태백산에서는 한기를 느낀다.
조금 더 시간을 이어
산자락을 거슬러 올라온 청량한 바람과
흐릿한 하늘이라도 품어
세속에 찌든 마음을 씻어 내고 싶건만
내려가야 한단다.
혼자의 걸음이 아니기에
떨어지지 않는 걸음이지만
내려가야 한다.
이렇게 산을 걷고 싶지는 않다.
문수봉에서
너덜겅을 이룬 문수봉에서
다시 태백의 말간 바람을 맞는다.
사방을 구름으로 가려
눈길과
마음을 문수봉에만 묶어놓고
그저 자기만 바라보라고 아양을 떠는
문수봉에서
나는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 많고 많은 문수봉의 너덜에서
나도 하나의 돌멩이가 되고 싶었다.
소문수봉을 오르기 전에
당골로 내려선다.
시골의 아낙같은 수더분한 길을 따라 내려서다가
문득 앞을 막아서는 주목(朱木)을 만난다.
시골의 아낙들도
가꾸기만 하면 이렇게 아름답고 고운 자태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당길 수 있는
본질적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다.
당골로 내려서면서
비를 맞는다.
나뭇잎 사이를 헤집고 떨어지는 빗줄기는
숲 속의 고요를 한 번에 깨뜨리기도 하지만
잘 들어보면
잘 만들어진 하나의 협주곡이다.
서두를 것도 없이
빗방울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없이
부드러운 길을 따라 걷는다.
정말 끝없이 걷고 싶은 마음이 이어진다.
이것이 태백의 마음인가.
이것이 여름산의 매력인가.
당골 매표소가 보일 즈음에
석탄박물관으로 들어서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태백은
네 시간이 넘게 나를 안고 있던 손을 살며시 풀어 놓는다.
유일사 매표소 대형 주차장
도립공원이라고 입장료 2,000원을 받는다.
매표소를 따라 임도를 오르다가 만난 이정표. 이곳에서 숲으로 들어서도 유일사 쉼터로 오르게 된다.
유일사 쉼터로 오르는 임도
길가에서 만난 초롱꽃.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다보니 초점이 맞지 않았다.
오늘 산행에서 많은 주목을 만났는데 이 친구가 가장 크고 곧게 자랐다.
유일사 쉼터.
태백산의 자랑인 주목
박새 꽃
산행하는 내내 갈림길마다 이렇게 이정표가 있어서 초행이라도 산행에 어려움은 없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 고사목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곳이 한 겨울에는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던 곳으로 태백이 겨울산으로 각인되게 되었다.
박새 꽃
산길을 걷다보면 꼭 이런 느낌을 만난다. 산길을 가득 메우고 이어지던 산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갑자기 찾아온 고요. 나는 이런 기분을 좋아한다. 그래서 대체로 혼자서 산길을 걸으려고 한다. 여럿이 걷게되면 산행내내 나를 온새미로 느끼지 못하고 마는 까닭이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마음에 담아두는 시간들이 너무나 비옥한 까닭이다.
장군봉.
태백산에는 세 곳에 제단이 있다. 장군봉, 천제단, 그리고 천제단 아래에 있는 하단이다. 이곳 장군봉이 천제단보다 7미터가 높지만 주봉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너른 마당이 없기 때문이다. 천제단은 발 아래 너른 마당을 펼쳐 놓아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아량을 담고 있기에 당당히 태백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그가 올라선 자리보다 그가 담고 있는 마음에 따라 훗날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태백산 최고봉이라고 써놓아도 사람들이 눈길을 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자기가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내세워도 국민들로 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 무엇하겠는가. 29만원밖에 없는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장군봉에서 본 천제단
천제단에서 본 장군봉
천제단에 세워진 이정표
태백산 천제단. 비가 내리기에 비옷을 입었는데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온화한 느낌이 들었다. 태백산은 여름이 아니었다.
문수봉으로 가다가 만난 나비
문수봉으로 가다가 만난 주목. 죽었으되 죽지 않았다.
속을 비우고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주목.
돌멩이들로 가득한 문수봉, 천제단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날씨가 좋았다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천제단의 모습과 그 아래 망경사가 참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다.
당골 내림길에 만난 정말 대단한 주목. 속이 다 드러났어도 당당한 자태를 보이고 있다.
석탄박물관 입구. 처음이라면 한 번 들어가봐야 한다.
블랙야크 40 명산을 가장 먼저 오른 이용갑 형. 나는 이제 30봉우리를 올랐는데 형은 벌써 마쳤다. 그렇게 건강하던 형이 느닷없이 혈액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굳센 마음으로 당당히 맞서 많이 호전된 상태이다. 형의 강한 마음으로 병마를 떨치고 일어서리라고 믿는다.
여름 태백도 좋아하게 된 힘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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